[Opinion] 완벽한 행복의 레시피 - 줄리 앤 줄리아 (2009) [영화]

인생에는 시행착오가 필요해
글 입력 2021.02.0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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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로 저번 주에 기고한 글에서 다짐했던 것처럼 나는 나의 마음 편한 휴식시간에 약간의 시간과 마음을 더 분배하기로 했고, 그래서 다시 영화를 보기로 결심했었다.

 

이번 주에 본 영화는 줄리 앤 줄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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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관련 영화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는 도중 배가 고파질 게 분명하여 우선 점심을 만들어 놓기로 했다. 오늘의 메뉴는 알리오 올리오! 다들 비슷하겠지만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고, 그래서 줄서는 유명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직접 새로운 요리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요리를 즐기는 이유는 먹는 순간 뿐 아니라 요리하는 순간에도 있다. 오로지 나를 대접하는 일은 묘한 성취감이 있다. 같이 먹는 사람까지 있다면 그 선물하는  기분이 배가 되기도 한다. 주어진 레시피를 잘 따라만 한다면 결과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다는 점도 좋다. 어쨌든 그대로만 따라하면 80프로 정도의 맛은 낼 수 있다.


사실 내가 요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딱히 잘하는 편은 아닌데다가 입맛도 까다로워서, 처음 오일 파스타를 만들 때에는 망친 적이 여러 번이었다. 바로 위에 쓴 것처럼 주어진 레시피를 따라만하면 뚝딱 하고 만들어지는 게 음식이라지만, 오일파스타는 들어가는 재료도 적고 맛도 꽤 섬세해 유독 어려웠다.

 

처음에는 많은 레시피를 옮겨가며 요리했고, 매 순간 핸드폰에 적어둔 레시피를 확인했다. 수많은 시도 끝에 이제는 나름의 레시피가 생겨서 칭찬도 자주 받곤 한다. 글을 읽는 여러분이 궁금할까 싶어 내 입맛에 완벽하게 만들어진 나의 레시피를 잠시 소개한다.


요리의 기본은 재료 손질이다. 요리 초보일 때 가장 많이 실수를 했던 게 요리 도중 재료를 손질했던 거다. 특히 그럴 때 나 같은 초보 요리사의 마음은 한없이 다급해지고, 음식은 오버쿡이 되기 쉬웠다. 그래서 초보자라면 웬만한 재료는 손질해 놓고 불을 켜는 것을 추천한다. 일단 마늘은 칼등으로 가볍게 으깨주고 명란은 껍질을 벗겨둔다. 올리브는 씨를 빼 반으로 자르고 방울토마토가 있다면 살짝 칼집을 내면 좋다. 그 외에도 베이컨, 모시조개, 새우 등 좋아하는 재료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아무것도 안 넣는 것도 가능하다.

 

준비가 됐다면 스텐 팬에 불을 약하게 켠 다음 올리브유, 손질한 마늘, 그리고 냉장고 안의 다진 마늘 약간과 부순 페퍼론치노를 넣고 기름을 낸다. 향이 올라오고 마늘이 적당히 노릇해졌다면 부재료를 넣어줄 시간이다. 오래 익혀도 괜찮거나 육수를 내야하는 재료라면 지금 넣어주고, 아니면 조금 기다리자. 부재료가 잘 볶아졌으면 물 한 컵과 소금을 약간 넣고 끓여주다, 끓어오르면 면을 넣고 8분 정도 익힌다. 중간에 물이 모자라다면 한 컵씩 추가해 주면 된다. 이때도 약불이 좋은데, 면수에 기름이 녹아 점성이 생기는 과정이다. 면이 다 익었을 때 쯤 나머지 부재료를 넣고 후추, 소금, 치킨스톡 약간으로 간을 한 다음 바질을 뿌려주면 완성이다.

 

나의 시행착오 레시피가 가득 담긴 오일 파스타를 그릇에 담아 물을 한 컵 떠 식탁에 앉았다. 영화는 이미 준비해 뒀다. 그전에 한입.

 

*


영화는 줄리와 줄리아, 사랑스러운 두 여자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참고로 영화는 둘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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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줄리아 차일드. 1900년대, 줄리아는 프랑스에 있다. 그녀는 지금 일을 그만두고 외교관 남편과 함께 파리에 사는 중이다. 누구도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줄리아는 언제나 유쾌하고 발랄하다. 하지만 고향이 아닌 곳에서 억지로 모자 만들기 같은 취미 수업을 듣는 건 그녀에게도 참 재미없는 일이다.

 

미식가인 줄리아는 아무리 생각해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래서 줄리아는 남편의 제안에 힘입어 명문 요리학교 르꼬르동 블루에서 정식으로 요리를 배우기로 했다. 남자 군인들만 있는 상급반이었지만, 특유의 열정과 승부욕으로 우등생이 되는 건 금방이었다.


그래서 줄리아는 이제 프랑스 요리의 달인이다.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줄리아는 원래 요리를 가르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파리에서 만난 두 지인들의 영향으로 갑작스럽게 그들과 함께 프랑스 요리에 대한 책을 내기로 한다. 삼총사의 목표는 ‘하인 없는 미국인들을 위한 프랑스 요리책’ 만들기! 수없이 번역해서 계량을 바꾸고 테스트 하며 그들이 책에 바친 시간은 무려 몇 년이 넘었다. 지금 몇 년을 담아낸 그 책은 출판되어 세상에 나왔고, 줄리아 차일드는 전설적인 프렌치 요리 연구가가 됐다.

 

실제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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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줄리다. 줄리 포웰은 2000년대, 뉴욕에 산다. 줄리는 911테러 관련 콜 센터에서 말단 공무원으로 일하는 중이었다. 사실 이게 여태껏 줄리가 꿈꿔오던 일은 아니다. 줄리의 바람은 명확하게도 늘 작가였다. 서른이면 분명 괜찮은 작가가 되어있겠다고 예상했었지만, 지금까지 쓴 글이라고는 출판되지도 못한 소설이 전부다.

 

알바를 전전하다 겨우 들어간 줄리의 직장은 원하던 일과는 거리가 멀고, 콜 센터답게 스트레스를 던져주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엄마는 매 전화마다 잔소리뿐이고, 친구들은 모두 잘나가는 서른이다. 한 때 그들만큼 반짝이던 줄리는 이제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친구에게 속아 ‘뉴욕 서른의 현실’과 같은 비관적인 제목의 기사 주인공이 될 뿐이다.


그러던 줄리가 다시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꼭 출판하지 않아도 어쨌든 버튼만 누르면 세상에 글을 내보일 수 있는 블로그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줄리는 원래 일이 지칠 때면 항상 요리를 한다. 회사 일은 항상 종잡을 수가 없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해서 생기지만, 요리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필요한 재료를 넣고 레시피대로 조리하면 마법처럼 완벽한 결과물이 짠 하고 나오기 때문에, 줄리는 엉망진창인 것처럼 느껴지는 삶에서 요리로 자신을 위로하는 작은 행복을 가지고 있었다.

 

블로그가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창구가 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그녀는 글의 소재도 요리로 정했다. 그중에서도 줄리아 차일드의 오랜 팬으로서, 줄리아 요리책에 담긴 524개의 요리를 365일만에 마무리 해보겠다는 다소 벅찬 프로젝트를 결심한다. 일명 줄리 앤 줄리아 프로젝트!


그런데 줄리의 프로젝트가 쉽지가 않다. 요리와 글쓰기는 항상 줄리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었으나, 프로젝트는 예상외로 줄리를 지치게 했다. 그녀는 항상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줄리에게 이 프로젝트는 답답한 인생의 한줄기 동아줄이었고, 줄리아는 그녀에게 동아줄을 건넨 마치 신과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줄리 앤 줄리안 프로젝트가 내심 인생을 마법처럼 바꿔주기를, 그래서 자신을 작가로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이제 줄리는 완벽한 줄리아를 동경하는 데에 신경을 쏟아낸다. 자신을 한없이 보채다 예민해진 줄리와 남편은 자주 부딪혔고, 그녀는 자주 ‘울컥’했다.


줄리는 아직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자신이 원하던 꿈의 상태에 있는 줄리아는 굉장히 완벽해 보인다. 비교는 항상 건강하지 못하고 불안함은 여유를 앗아간다. 줄리는 줄리아와 자신을 비교하며 왜 그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는지에 대해 자신을 공격한다. 그러나 당연히 줄리가 줄리아 보다는 나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줄리 눈에 담긴 줄리아는 이미 그보다 더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완벽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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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리고 영화에서 줄리가 얘기한 초콜릿 케이크 이야기처럼 누군가의 완벽한 레시피를 따른다면 그 음식에게는 웬만하면 예측된 미래가 보장된다. 이는 시도 때도 없이 새로운 일들이 생기는 회사생활과,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과는 다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행복하고 성공한 이들의 완벽한 레시피를 카피함으로써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수없이 많은 자기 계발서가 말하는 그들의 레시피는 전부 완벽해 보이지만, 우리 모두는 애초에 가지고 있는 재료가 같지 않다. 사람도, 주변 환경도, 행복에 대한 기준까지도 그렇다.

 

영화는 자주 삶의 목적에 대해 얘기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지속적인 삶의 의미를 찾음으로써 행복감을 느끼고, 그것이 사라졌을 때 큰 상실감을 느낀다. 영화가 말하는 삶의 의미는 결국 각자의 레시피에 달려있다. 자신에게 온전하게 행복감을 줄 수 있는 것은 나의 레시피 뿐이다.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이다. 줄리는 남편과의 사이도 회복했고, 줄리 앤 줄리아 프로젝트를 성공시켰고, 인기 블로거가 됐고, 출판사와의 계약도 따냈다. 줄리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는 이제 그녀에게 덜 중요하다. 어쨌든 줄리아와 요리하고 그녀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줄리는 자기만의 완벽한 행복의 레시피 한 접시를 찾아냈으니.

 

 

[신지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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