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충돌, 충돌, 충돌! [미술/전시]

장 - 미셸 오토니엘과 제니 홀저의 작품을 감상하며 느낀 내면의 충돌과 그것이 이끄는 세계
글 입력 2021.02.0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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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마감을 앞둔 장 - 미셸 오토니엘과 제니 홀저의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국제갤러리에 방문했다. 두 작가 모두 현대 미술계의 굵직한 인물이며 그들의 작품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아서인지, 마지막 날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은 꽤 북적였다.


오토니엘은 유리로 만든 벽돌을 쌓은 'Precious Stonewall' 연작과 수채화 드로잉,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연구하며 루벤스의 작품 속 장미에 영감을 받아 만든 '루브르의 장미' 시리즈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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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위치한 계단 형태의 작품이 'Stairs to Paradise'다.

 

 

'Precious Stonewall'과 'Stairs to Paradise'는 속이 거울처럼 반사되는 유리로 만든 벽돌을 쌓은 작품이다.

 

깨지기 쉬운 유리의 물성과 인류 역사에서 집을 짓는데 주요한 재료로 사용된 견고한 벽돌의 형태는 대놓고 이질적이었으나, 그것이 꽤 대담한 아름다움으로 느껴졌다. 차곡히 쌓여 햇살에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유리 벽돌은 내부의 특수재질 때문인지 속에 금속을 품고 있는 듯 차가운 인상을 풍기기도했다.


Fragile, 즉 깨지기 쉬우므로 조심히 다뤄야 하는 유리가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로 쌓여 있는 모습은 꽤 견고해 보이고, 이 대담한 이질성이 시각적으로 굉장히 즐거웠다.

 

재료의 물성 때문에 숙련된 장인의 손길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더해지자, 마치 종교적 수행처럼 인간의 염원을 담은 유리 벽돌을 한 장씩 만들고 쌓아 올렸을 풍경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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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을 이동해 '루브르의 장미' 연작이 전시된 공간에 다다랐을 땐 형태의 변주와 반복, 물성과 색의 대비가 더욱 확실히 드러나 공간 속에 존재하는 작품의 아우라에 잠시 멈칫했다.

 

벽에 걸린 회화 작품의 장미 형태가 조각품에서도 반복되고 변형되어 리듬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한 편에는 투명한 유리에 분홍색을 입혀 형태를 투영하고 왜곡하는 작품이, 정 반대에는 모든 빛을 흡수하는 무광택의 검은색이 덧입혀진 작품이 무게를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없이 가벼운, 또 한없이 육중한 이 대비가 내겐 공간에 둥 둥 떠다니는 음표처럼, 혹은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파동처럼 보였다. 다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기쁨과 환희보다는 17세기 어느 가족의 초상화처럼 화려한 색채 위에 한 겹 어둠이 깔린 듯한 차분함에 가깝다고 느꼈다.


두 전시실의 작업 모두 이질적 물성과 개념이 충돌하며 자아내는 모호함이 독특했는데, 관람하며 느꼈던 이 모호함을 전시 설명에서 명료한 문장으로 표현한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작가는 “일상적, 보편적 재료인 벽돌을 오랫동안 사치품으로 여겨진 유리로 변형, 표현함으로써 강인함과 연약함의 충돌 및 대비를 극대화하고, 생명력의 상징인 붉은 장미를 검정색으로 코팅하여 본래의 속성에 변형을 가한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단순한 예술적 실험을 넘어 실재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일깨우며 잊고 있던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강인함과 연약함의 충돌, 생명력에 뜻밖의 변형을 가하는 것은 모두 이를 바라보는 내 안에서도 어떠한 충돌의 지점을 발견하게 하며 그 지점의 모호함이 이끄는 내면의 세계로 향하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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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 회화 시리즈 중 일부. 오른쪽의 수채화 작업은 '궁극의 죄악',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추문' 등 각기 대담한 제목이 돋보였다.

 

 

한편, 홀저의 작품들은 오토니엘의 작품과는 결이 사뭇 달랐다.

 

그녀는 미국 정보 공개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에 따라 공개된 정부 문서를 그녀만의 시각 언어로 캔버스에 옮기기도 했으며(검열 회화 시리즈), 육중한 대리석 벤치에 담백하고 힘 있는 문장을 새기거나 옆으로, 혹은 위아래로 길에 늘어뜨린 전광판에서 그녀가 수집한 경구들이 계속해서 상승하고 전진하며 스치듯 보여주기도 했다.


언어가 구성하는 문장의 힘을 유쾌하면서도 엄격하게 보여주는 그녀의 작업 중, 유독 대리석 벤치에 새긴 문장과 끊임없이 상승하는 LED 전광판의 문장에 계속 눈이 갔다.


넓고 두꺼운 상판과 그만큼 두꺼운 다리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각진 벤치와 다른 전시실에 위치한 전광판은 문장을 공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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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tude Is Enriching(고독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It Is In Your Self-interest To Find A Way To Be Very Tender(아주 유연해지는 방법은 당신의 자기 이익 속에 있다)”, “Protect Me From What I Want(내 욕망으로부터 나를 지켜줘)”와 같이 촌철살인이라는 표현이 매우 잘 어울리는 명료한 경구들이다.


전광판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경구들은 “과식은 죄악이다”와 같이 다소 뜨끔하게 하거나 “다른 이들이 나를 정말 어떻게 생각하는지 결코 알 수 없다”처럼 고개를 끄덕이게 하며, 계속해서 상승하고 때에 따라 빠르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런 문장의 이어달리기를 바라보는 것은 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오토니엘의 그것과는 다르게 제니 홀저의 작품은 직접 말을 건넨다. 아주 단호하고 날카로운 문장들이다. 다만 작가의 작품이 말을 건네는 방식이 오토니엘의 방식과 사뭇 비슷하다고 느꼈다.


문장은 어딘가에 쓰이거나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기 전까지 어떤 무게감을 가지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따라서 그런  문장이 육중한 대리석에 새겨져 있거나, 중력이 작용하는 반대 방향으로 끝없이 상승하고 있다면 이를 바라보는 이의 사고에 틈을 만들 것이다.

 

허공에 흩뿌려지는 문장에 물성을 부여하거나, 우리가 인지하는 중력의 시스템을 거부하듯 치솟게 만드는 행위는 가벼움과 육중함의 충돌을 통해 이질감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관람하는 우리의 내면에도 그 충돌로 인한 틈이 벌어져 이제까지 생각하고 사유했던 것의 익숙함에 오히려 낯선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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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판에서는 가쁜 호흡으로 문장이 계속 지나가고, 특히 세로로 늘어뜨린 LED 화면은 돌아가거나 번개가 치는 듯한 효과가 나타났다.

 


이런 작가의 대담한 방식이 이전 전시실에서 관람한 오토니엘의 작품과 사뭇 닮아있다는 걸 느끼고는 두 작가가 시도하는 변형과 충돌이 결국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나름의 고민으로 얻은 대답은 ‘공상’이었다. 이들의 작품 설명에도 꽤 빈번히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한데, 서로 다른 두 물성과 개념의 대비가 일으키는 충돌, 그리고 그 충돌이 열어젖히는 새로운 세계는 이를 바라보는 이마다 모두 다른 모습을 띠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질적 충돌이 이끄는 세계로 발 들이며 눈으로 목격한 것보다 더 생생한 자기만의 세계를 마주할 수 있다. 특히 작품이 놓인 공간에 홀로 우두커니 서서 작품들과 함께 공간 속에 존재하고 있는 직접적 경험은 그 감각에 생기를 더한다. 그리고 나는, 그 경험이 그저 즐거울 따름이었다.


결국 감각적 충돌이 이끄는 세계는 우리가 현실에서 겪어 내야 하는 재난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계속해서 생동하는 공상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다짐과도 같은 문장이 전시를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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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술적 지식이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전 지구적 재난에 의해 사람들이 모일 기회가 소멸하여가고 있다 하더라도 같은 공간을 방문해 그 공간에서 예술 작품을 마주하고 각자의 세계와 조우하는 경험은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이 확신은 장 - 미셸 오토니엘과 제니 홀저의 작품을 실제 공간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마주하는 경험으로 더욱 견고해졌다.


비록 어딘가에 간다는 것 자체가 마음의 부담이 되는 요즘이지만, 내가 전시를 관람하며 뜻밖의 즐거움을 느낀 것처럼 부디 몸과 마음을 지키며 오늘 당신에게 찾아올지도 모를 예술적 경험의 순간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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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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