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윤동주의 시, 참회록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자. [문학]

겁없이 멋대로 읽어보는 윤동주의 시
글 입력 2021.01.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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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말모이의 실제인물, 이극로 박사는 ‘말은 민족의 정신’이라고 했다. 언어는 민족의 많은 것, 예컨대 가치관, 사상, 이데올로기, 선호, 문화 따위를 드러낸다. ‘국문학’이란 단어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 또한 많은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국문학’은 프랑스어문학, 러시아어문학과는 다른 위상에 존재한다. 갑작스러운 세계정세의 변화 속에 ‘근대성’이 이제까지의 가치를, 지식을 전부 뒤흔들며, 국문학은 그야말로 시대의 흐름에 부응해 탄생한 단어다.


‘국가는 하나의 민족이여야 한다’, ‘국가의 학문은 민족의 학문이여야 한다’는 19세기 후반의 근대주의를 반영하여 만들어진 단어인 것이다. 탄생부터가 그러했으니 국문학은 언제나 민족의 단일성을 전제로 하며, 단일 민족을 강조한다. 태생부터가 평등, 자유, 개인보다는 민족주의를 환기시킬 수밖에 없는 학문인 ‘국문학’은, 그렇게 ‘독립운동가 윤동주’를 만들어냈다.


성주연은 자신의 논문을 통해, ‘교과서는 지나치게 역사주의적으로 윤동주를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참회록을 쓴지 닷새 만에 창씨개명을 했다는 사실을 학습활동 전에 제시해, 학습자로 하여금 작품의 해석을 역사주의적으로 편향시킬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이다. 이건 교과서를 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주의 학문인 ‘국문학’, 의무교육이 갖는 본질적 목적-국가에 적합한 사람으로 교육하기 위해-, ‘애국주의 프로파간다’를 필요로 했던 한국사회의 문제이다. 윤동주를 ‘일제강점기의 현실에 대한 고민을 노래하였다’고 표현한 교과서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린 그것을 비판적으로, 최소한 중립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교과서는 분명 뛰어난 지식인들이 합의를 통해 내놓은, 이제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확실과 진리에 가까운 정보는 맞지만, 그것을 경전처럼 떠받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교과서, 학교, 선생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계승만 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기존의 패러다임을 대신하며 세상은 나아간다는 사실을 믿는다. 고정된 미학은 의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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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참회록을 분석해보겠다. 우선, 윤동주의 시는 윤동주 사후에 지인들이 출판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조심스레, 출판, 인쇄자본, 시장, 상품으로써의 문학과는 연관되지 않았다는 전제를 해보겠다. 그만큼 그는 독자층을, 시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적어 내렸을 것이다.


참회록은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 이다지도 욕될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한다. 거울에 녹이 꼈다면 표면은 거칠어졌고, 제대로 반사되지 않을 것임이 뻔하다. ‘나’는 실제로는 비치지 않는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얼굴이 거울에 남아있으며, 왕조의 유물이고, 욕되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다. 다른 사람들은 녹이 슨 거울에서 화자의 얼굴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화자는 어떠한 이유로 자신을 혐오하며 반감을 가진다.


2연에서 화자는 ‘참회’를 적으며,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라고 한다. 여기서 화자는 자신의 과거를 전부 부정한다. 자신이 제대로 걸어오지 못했음을, 지나온 삶을 전부 반성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3연에서 곧바로, 2연에서의 참회를 ‘부끄러운 고백’이라 일컫는다. 미래에 다가올 ‘그 어느 즐거운 날’에, ‘그때 그 젊은 나이에 /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하고 참회한다고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재 화자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을 욕되고, 효력을 잃어 쓸모가 없어졌다-즉, 유물이다-고 생각하며, 지나온 시간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화자는, 시간이 지난 후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는 지금의 감정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나온 삶을 전부 부정하는 것은 ‘부끄런 고백’일 뿐이었다고 말이다.


이제 4연에서 화자는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고 한다. 녹슨 거울이 겨우 손으로 닦는다고 깨끗하게 닦일 리 없다. 녹이 슨 것은 산화작용이며, 녹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어떤 화학적 물질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화자가 하고 싶은 것은 실질적인 녹 제거가 아닐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자신의 마음을 닦고, 자아 성찰을 하는 것을 거울을 닦는 행위를 통해 나타낸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그렇게 한다면 ‘거울 속’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처음에 거울에 비쳤던 것은 부정적인 것으로 형상화된 내 얼굴이다. 하지만 거울을, 즉 마음을 닦은 후에는 단지 고난을 겪을 뿐인 ‘슬픈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단지 그때 나는 힘든 시간을 겪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때 화자는 비로소 과거의 자신을 안아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 2연에서 현재의 나는 절망적인 사건을 겪고,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내가 살아왔던 삶을 모조리 참회하고 부정한다. 하지만 3연에서는 1, 2연에서 한 자기부정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4연에서 자아 성찰을 했기 때문이다. 매일 자신을 되돌아보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을 한다면, 1, 2연처럼 자신을 꾸중하며 반감을 가지는 대신, 5연처럼 힘들었던 나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국민시, 저항시의 관점에서 본다면 참회록의 주제는 ‘치욕스러운 망국의 현실에서 무기력하게 살아온 화자의 삶에 대한 성찰과 현실극복의지’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스스로를 욕하고 혼내지만 말고, 성찰을 통해 불쌍했던 나를 보듬어주자’라고도 해석이 될 수 있다. 물론, 내가 해 본 자의적인 해석이 진리이고 옳으며, 교과서를 집필하는 뛰어난 학자들보다 낫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적어도, 우린 해석의 자유를 열어놔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하나의 의무다.


시를, 윤동주를, 한국의 문학을 배우는 학습자들은, 적어도 다양한 관점과 가치관으로 작품을 대해야 할 권리가 있다. 적어도 우린 한용운의 임을 ‘조국, 민족, 연인, 부처, 진리’ 등으로 배워왔다. 윤동주를 해석하는 방법도, 딱 그만큼이라도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윤동주의 시가, 윤동주의 시를 해석하는 우리의 시각이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안우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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