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의 일기] 2020년은 당신에게 어떤 한 해였나요?

살아있는 생활에 대하여
글 입력 2020.12.0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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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2월이다. 진행하던 일들이 하나 둘 끝나는 시점에서 그때의 경험들은 나에게 어떤 의미와 태도를 남겼는지 계속해서 되돌아본다. 내 안에 차곡차곡 정리하여 쌓아두고 그를 발판으로 2021년에는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하고 싶은지 돌아본다. 아래의 질문에 답을 해나가며 2020년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Q. 지금 주변에는 뭐가 보이는가? 뭐가 들리는가? 지금 당신이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포근한 이불.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책과 종이 뭉치. 흐리게 보이는 바깥 풍경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 커튼으로 들어오는 빛. 벽에 비치는 빛. 끈에 달린 솔방울과 깃털.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어깨와 목이 이어지는 부분이 뻐근하다. 몸이 조금 긴장된 상태. 그렇지만 편하게 숨쉬기를 반복하고 있다. 의자가 불편하다. 계속 다리를 의자 위로 올리게 된다. 등받이에 있는 쿠션이 푹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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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요즘 제일 집중하고 있는 키워드는?

 

의식하기. '의식'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른다. 그러면서도 매 순간 의식하는 것이 나의 생활에서 '살아있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함을 느낀다. 의식하지 않으면 주변 환경에 휩쓸려 관성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내가 이 공부를 왜 하는지 모르겠는데 주변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까, 이 자격증을 따면 좋다고들 하니까, 이 길이 좋다고 하니까, 다들 위로 올라가니까, 다들 하니까. 매 순간 내가 여기서 무엇을 배우고 의식하고 있는지, 무슨 욕구를 가지고 있고 그 욕구는 이 공간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나갈 수 있을지를 되돌아보고 멀리서 관찰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감정도 마찬가지인데, 어느 순간 내가 관성적으로 이 느낌들을 불러오고 있구나 하고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 몇몇 있다. 예를 들어 이유 없이 화가 날 때. 그러다 문득 ‘내가 왜 화를 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자 화가 사그라졌다. 또 나는 자책이 심했다. 왜 이 정도도 해내지 못하느냐 자주 다그쳤고 자주 스스로를 미워했다.

 

이 생각들을 의식하면 내가 자책하는 이유가 없음을, 그저 습관처럼 또 다시 같은 경로의 생각들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지금의 자문자답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의식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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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배우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재밌는 것은?

 

비폭력대화 책을 읽고 있다. 삶에 적용시키려고 시도 중이다. 자신의 느낌을 인식하고 그 뒤에 어떤 욕구가 있는지 의식하는 과정을 통해 비폭력적으로 자신과 그리고 타인과 대화하는 내용에 대해 쓰여있다. 화가 나더라도 왜 화가 나는지 알아차리려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좀 더 홀가분해진 기분이다.

 

처음에는 비폭력대화라는 단어에서 화를 내지 않는 평화로운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얼마 전에 모임 자리에서 ‘평화란 마음에 화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화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상태 그 자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편안해졌다. 마음 한편에서는 화를 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정말로 화를 의식하고 인식하는 순간에 나는 평화를 느꼈다.

 

얼마 전에는 도자기 공방에서 주전자와 찻잔 세트를 만들었다. 만드는 내내 몰입이 너무 잘 됐다. 그 순간순간에 너무 재밌다, 너무 평화롭고 너무 좋다는 말을 연신 해대면서 작업했던 기억이 났다. 정말 깊은 기술까지 할 수 있게 계속해서 배우고 싶다. 더불어 차에도 관심이 생겼다.

 

주전자가 구워지면 그 안에 어떤 차를 우려내어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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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였던 해였는데, 이 많은 경험들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친구가 ‘나는 내가 코로나 시국에 이렇게 바쁠 줄 몰랐다.’라고 하면서 웃었는데 나도 정말 그랬다.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만들고 기획하고 공부하고 뛰어다녔던 해였다. 처음에 낯설던 일 체계도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그때부터는 하나의 문제도 다각도의 면에 대해서도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사실 내가 ‘대외활동’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하기 시작한 것은 ‘호기심, 하고 싶어서, 재밌어 보여서’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사실 ‘불안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남들 다 하니까’의 이유도 있었다. 이것을 자각하고 나니 깨달음으로 남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경험들을 무작정 쌓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 경험들이 나에게 얼마나 내재화되었느냐가 더 중요하다. 내가 어디까지 일을 맡았을 때 생활과의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감을 얻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재밌어하는 활동들을 이것저것 찾아서 많이 하는 중이다. 감을 얻었다고 해서 균형을 잘 잡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이것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지, 내 욕구와 이 단체의 욕구는 어떻게 맞춰갈 수 있을지 더 솔직하고 명확하게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변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마음이 정말로 동해서 맡은 일이 아니면 내내 ‘이 프로젝트를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정말로 일이 끝나버리는 순간에는 허망하고 허무하고 공허함만 남았다. 그래서 내부 동력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단체의 성과를 위해 내가 기능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내부 동력을 찾기가 정말 힘들었다. 활동 과정에서 계속 요구에 따른 수행만 하다 보니 기능적으로 소진되는 느낌이 강했다.

 

특히나 대학생 위주의 활동은 ‘대학생만의 통통 튀는’, ‘청춘의’ 느낌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의도로 하신 말씀이겠지만 이것이 절대 ‘너네의 아이디어를 우리에게 달라’는 식이 되면 안 될 것 같다. ‘우리가 너희에게 경험을 줄 테니 여기서 노동을 해’라는 방식 말고, 서로가 어떻게 협업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모두가 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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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에 가장 즐거웠던 일은?

 

가을에 친구가 있는 작은 섬에 갔다. 그 당시 나는 몰려드는 일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바빴다. 약속된 캠핑이었지만 내가 지금 가서 제대로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고 몸도 피곤했다. 몇 번을 고민하고 짐을 쌌다. 도착한 뒤에도 역시나 나는 업무 전화를 받아야 했다. 그 책임감과 압박이 너무 크게 다가와서 눈물이 나왔다. 친구들과 밥을 먹고 노래를 부르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한데 온전히 즐길 수 없다는 사실이 서러워서 더 눈물이 났다.

 

그 다음날 아침 눈을 반쯤 뜨고 물멍(물 보고 멍 때리기)를 하는데 마음이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평화로웠다. 순간 내가 이렇게 단순한 삶을 원하고 있었구나,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 감각이 마음을 차분하게 했고 돌아와서도 일을 더 편안한 상태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줬던 것 같다. 바쁜 소용돌이 속에서 감각했던 고요한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짧았지만 섬에 있는 동안 너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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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내가 이 세계와 삶에서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평화. 자각하는 삶. 살아있는 우리. 나와 내 주변 관계가 모두 편안했으면 좋겠다. 서로를 기꺼이 돌보고 우리의 공동체가 모두에게 안전했으면 좋겠다. 이러한 태도로 세상을 대하고 싶다. 각자가 저마다의 삶을 가꾸고 저마다의 중요 가치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싶다. 그곳에는 ‘더 좋은’ ‘덜 좋은’ ‘나쁜’ ‘나쁘지 않은’ 등의 판단이 없었으면 좋겠다.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니까.

 

가끔 내가 사회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멋지다’,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여서 부럽다’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향성으로 즐겁게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 내가 하는 일이 더 낫다거나 더 멋진 것이 아니다. 각자의 삶 속에서 애정을 가진 것들을 모여서 풀어놓고 나누고 연결되는 시간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모두가 그렇게 압박이 아닌 편안함 속에서 삶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요즘에는 ‘잘 한다’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일을 잘 한다는 건 결국 ‘능숙하다’는 것 아닐까? 그럼 결국 그건 시간과 경험이 쌓여가면서 쌓이는 것 아닐까? 저 사람은 일을 저렇게 잘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못 할까 자책할 필요가 없다. 재능? 그건 정말 다들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듯이, 다른 것이지 더 낫거나 더 좋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Q. 가장 재밌게 읽었던 책과 앞으로 읽으려고 벼르고 있는 책.

 

아트인사이트 PRESS로 활동하면서 읽었던 책이 다 좋았다. 폴리아모리 에세이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퀴어 소설 단편집 <언니밖에 없네>, 우울증 에세이 <나의 F코드 이야기> 그 속에 담긴 태도를 닮고 싶었다.

 

이번 달에는 <어린이라는 세계>,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를 읽고 싶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다. 친구에게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어린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받았는데 마음 한편이 뜨끔거렸었다. 책에서 또 어떤 태도를 들여다보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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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공동체와 공통감각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 그것을 나누는 자리를 많이 만들고 참여하고 싶다. 자신의 다양성을 발화하고 주체성과 자율성으로 함께 작당모의하는 친구들과 시간을 많이 마주치고 싶다. 교차성 페미니즘, 동물권, 권리와 다양성에 대한 공부도 당연히 더 깊게 이어나갈 것이다.

 

드럼, 난타, 사물놀이를 너무 배우고 싶다. 더불어 집에 방치된 보드 하나가 있는데 이를 함께 탈 친구들도 모으고 싶다. 지난달엔 태어나서 처음으로 뜨개질을 배우기도 했다.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뜨개질하는 게 그렇게 평화롭고 좋았다. 앞으로 양말과 손 토시, 모자를 뜨고 싶다. 마지막으로 불어 공부도 잊지 않고.

 

이 질문들에 또 다른 이들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하다. 잔뜩 풀어놓은 이야기를 읽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면 나도 기쁜 마음으로 그 생각들을 읽고 싶다.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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