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 속 '스포츠', 뜨거운 열기를 노래하다 [공연예술]
-
스포츠 경기와 공연 문화는 오랫동안 인류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한번 생각해보자. 구석기 시대 이후 인간은 동물을 사냥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기술을 갖추었다. 이전보다 풍족한 식량을 얻은 인류는 단지 즐거움을 위한, 혹은 다른 사람과 겨루기 위한 사냥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는 스포츠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공연은 또 어떤가. 사냥감을 잡고자 노력했던 인간이 가족에게 돌아와 자신의 수고를 몸짓으로 표현했다면 그것 또한 공연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스포츠와 공연은 인류의 문화가 자리 잡을 때부터 매력적인 여가이자 놀이의 역할을 해왔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전쟁 상황에서도 인류는 스포츠와 공연 문화를 영위하며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에 비해 우리가 즐겨 보는 TV 드라마나 영화는 전기가 보급된 역사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오래된 문화예술은 아니다.
그러나 2020년, 우리는 ‘코로나 19’라는 유례없는 질병에 가로막혔다. 그동안 삶의 풍요로움을 누리고자 당연하게 향유했던 것들이 우리의 일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아마 많은 사람이 눈물을 삼키며 어렵게 구한 스포츠 경기 티켓이나 공연 티켓을 취소해야만 했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것들이 사라져가는 요즘,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우울함'이란 일상의 기저에 깔리는 감정이 되어간다.
그러던 중, 스포츠 경기를 소재로 한 ‘스포츠 뮤지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만남인 것 같았다. 그러나 둘 다 사람들에게 기쁨과 환희를 안겨주는 즐거운 문화이지 않은가. 운동선수를 코트 위의 배우로, 배우를 무대 위의 선수로 지칭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스포츠와 뮤지컬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게다가 이미 스포츠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나 드라마가 대중의 인기를 많이 끌었기에 ‘스포츠 뮤지컬’ 또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코로나 블루’로 인해 삶이 지치고 힘든 이들을 위해, 단조로운 일상 속 두근거림을 느끼고 싶은 이들을 위해 스포츠의 뜨거운 열기를 노래하는 뮤지컬 몇 편을 소개한다. 각 공연에서는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노래함과 동시에 직접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만약 당신의 마음에 드는 뮤지컬이 있다면, 가슴속에 품어두었다가 코로나가 종식된 후에 공연장에서 자유로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뷰티풀 게임
<뷰티풀 게임(Beautiful Game)>은 축구를 소재로 한 뮤지컬로, 2000년 영국에서 초연되었으며 1970년대 북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작곡가는 <캣츠>, <오페라의 유령>의 작곡가로 유명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다. 그는 <뷰티풀 게임>을 통해 사회적인 갈등과 그로 인해 발생한 희생자들을 드러내고 위로하고자 했으며 작사와 극작을 맡은 벤 엘턴과 함께 작업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에 공연을 올렸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1970년대의 아일랜드에서는 국가 간의 갈등 및 구교도와 신교도들 간의 반목이 발생하는 일이 잦았다. 이렇게 불안한 사회 환경 속에서 ‘오도넬 신부’가 운영하는 지역 축구팀의 젊은이들이 축구를 통해 서로의 화합을 다지고 꿈을 찾아가는 것이 <뷰티풀 게임>의 주요 배경이다.
무대에서는 배우들이 직접 볼트래핑 기술을 보여주거나 마임 등의 동작을 활용하여 축구 경기를 하는 장면을 극적으로 연출한다. 이렇게 협력하며 실력을 쌓은 축구팀은 지역 대회에 출전해 결승전에 올라 우승을 차지한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순탄하게 흘러갈 수는 없는 법이다. 축구팀에 속한 한 젊은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에 의해 죽게 되고, 슬픔에 빠진 친구들은 그를 애도하며 떠나보낸다. 이후 축구팀의 누군가는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누군가는 아일랜드의 독립을 외치기 위해 테러리스트가 되고 누군가는 미국으로의 망명을 결심하며 새로운 삶을 꿈꾼다. 한때 축구팀으로 뭉쳐서 서로를 의지했던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이다. 그들은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뷰티풀 게임>에서는 하나의 공을 골대에 넣기 위해 여러 명이 협력하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등장인물 간의 연대 의식을 나타낸다. 동시에 함께했던 친구들이 어두운 시대의 불행에 발목이 잡히는 다소 비극적인 전개를 보여줌으로써 서로 간의 연대가 부서지는 안타까운 상황을 연출한다. 신념과 종교, 가치관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본질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정치적 및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Measure your life in football seasons
Feel the passion and feel the heat.
Football is the only reason
God almighty gave us feet.
Goal!
전설의 리틀 농구단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모래시계> 등을 만든 박해림 작가와 황예슬 작곡가, 장우성 연출의 작품으로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실제로 몸을 부딪치며 농구 경기를 하는 독특한 뮤지컬이다.
2016년에 처음 상연되었던 한국 뮤지컬이기에,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극이 시작되면 등장하는 주인공 ‘수현’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남자 고등학생이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옥상에 올라가지만, 그의 자살 시도는 실패한다. 그러나 수현은 그 이후로부터 자신의 주위에 있는 유령들을 보게 된다.
유령들과 함께 살게 된 수현은 그들의 부탁으로 구청 농구부에 들어간다. 게다가 얼떨결에 들어간 농구부에서 대회까지 준비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농구부의 코치 ‘종우’는 학생들을 교육할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수현과 종우, 농구부 부원들이 함께 모여 극이 진행되면서 유령들의 과거와 코치 종우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물 간의 서사가 관객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 공연의 관객들은 여느 뮤지컬처럼 노래와 춤, 연기를 통해 극을 감상할 수 있지만, 나아가 청춘들의 땀방울이 담긴 농구 경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아슬아슬하게 무대를 오가는 공을 보고 있으면 농구를 열심히 연습했을 배우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각 장면을 구성하는 음악과 안무는 적절하게 어우러지며 배우들이 농구공을 튀기며 움직이는 동선과도 감각적인 조화를 이룬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이 단순하게 ‘청소년들의 꿈과 열정’만 담은 뮤지컬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두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신나는 음악과 함께 농구공을 튀기며 노래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각자의 아픈 과거를 따스하게 보듬으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 뮤지컬을 보면 웃길 때는 웃다가, 슬플 때는 울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웃음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함과 동시에 눈물을 흘리며 감정의 정화를 이루는 것이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공연이 관객에게 전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응축한 작품이다.
슛! 이 코트안의 땀방울
패스! 내 품에 안긴 주황색 공 하나
드리블! 너와 나의 숨소리
저 멀리 보이는 골대가 우리의 목표
너와 나, 이 공만 있다면
외로울 건 없지!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는 야구를 소재로 한 스포츠 뮤지컬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뮤지컬 육성사업의 우수 공연으로 선정되어 2014년 초연을 올렸다. 이 극에서는 실존 인물인 고(故) 김건덕 선수와 이승엽 선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들의 이름과 이야기를 그대로 사용하여 극을 진행한다.
1994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가 미국을 꺾고 우승한다. 대회에 출전했던 건덕과 승엽은 엄청난 스타가 된다. 특히 건덕은 한국 청소년대표팀 투수진의 중심으로서 대회의 MVP를 따내는 성과를 이뤘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한 구단에서는 “언젠가 빛의 속도로 공을 던질 동양인 투수가 나왔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건덕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건덕의 인생은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그는 프로 구단에 입단하는 것이 아닌 대학 진학을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인 승엽은 구단에 입단하여 승승장구하고, 건덕과 승엽이 걷는 길의 괴리는 점차 커진다. 이 과정에서 둘은 친구로서 경쟁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한다.
이 뮤지컬의 제목은 빛의 속도로 이동한다면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는 상상을 모티브로 한다. 젊은 시절, 야구 유망주였지만 꿈도 미래도 불투명한 길을 걷던 건덕이 빛의 속도로 이동해 자신의 빛나는 미래를 마주하고자 했던 소망을 담은 것이다. 동시에, ‘빛의 속도로 공을 던질 투수’라는 찬사를 들었던 그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토록 야구를 사랑했던 소년의 굴곡진 삶은 뮤지컬을 통해 더욱 극적으로 펼쳐진다.
실제 김건덕 선수는 2016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 세상 속에서 그의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무대 위의 빛나는 김건덕의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야구 선수’라는 직업을 가진 소년들의 고뇌와 성장을 무대 위에서 그려내기 위해 노력한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내며, 관객들의 마음속 그라운드에 남을 김건덕 선수를 추모한다. 더불어 뮤지컬을 통해 빛의 속도로 시간을 넘어 그의 일생을 돌아볼 수 있음에 감사함을 표한다.
그댄 나의 슈퍼스타
밤하늘 별들보다 빛나는
세상 누구보다 빛나는
그댄 나의 슈퍼스타
빌어먹을 양키스
<빌어먹을 양키스(Damn Yankees)>는 미국 뮤지컬의 황금기 시대에 상연되었던 뮤지컬이다. 이 뮤지컬은 ‘미국 극장가의 전설’로 불리었던 조지 애보트가 연출했으며, 뮤지컬 <시카고>의 안무가로 유명한 밥 포시가 안무를 맡은 작품이다. 1955년에 초연한 이 공연은 이전의 뮤지컬에서 다루지 않았던 독특한 소재와 줄거리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바로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프로야구라는 현대적인 소재를 버무린 것이다. ‘파우스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박사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이 뮤지컬에서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프로야구 팬의 이야기를 다룬다. 미국 프로야구는 ‘레드삭스’팀과 ‘양키스’팀의 대립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인공은 레드삭스팀의 팬으로서 양키스를 이기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이다.
줄거리를 살짝만 들어도 웃음이 피식 나오는 소재를 다룬 만큼, 전체 내용은 ‘뮤지컬 코미디(Musical Comedy)’의 문법을 따른 희극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인공이 ‘레드삭스’팀의 팬이라 그런 것인지 악마 또한 빨간 양말을 신고 등장하며, 악마의 하수인으로 나오는 ‘롤라’도 시종일관 코믹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렇듯 그저 유쾌하게 보이는 작품이지만 결말 부분에서는 주인공이 아내와의 사랑을 되새기며 악마와의 계약을 파기하는 것으로 가족 화합의 의미를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전형적인 미국 뮤지컬 황금기 시대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빌어먹을 양키스>는 미국 전역에서 1,000회 이상 공연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뮤지컬 영화로 리메이크되었다.
작품 속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는 ‘롤라의 소망(Whatever Lola Wants)’이라는 넘버다. 이 넘버를 부르는 장면에서 악마의 하수인인 여성 ‘롤라’는 주인공을 유혹해내기 위해 야한 춤을 춘다. 하지만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롤라의 모습은 관능적이기보다 우습게 보이며, 그녀 때문에 어쩔 줄 모르는 주인공의 모습이 겹쳐져 더 큰 웃음을 자아낸다.
Whatever Lola wants
Lola gets
And little man,
Little Lola wants you
*
스포츠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은 공을 차지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본다. 특정 공간에 공이 들어가면 수많은 관중이 환호한다. 때로는 선수들 간의 승패를 가르기 위해, 서로의 우월함을 측정하기 위해 정기적인 대회나 시합이 열린다. 스포츠 선수가 도전에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과 희열은 관객에게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무대 위의 공연은 어떤가. 사람들은 배우의 연기나 노래를 감상하기 위해 기꺼이 재화를 교환한다. 연기와 노래는 따지고 보면 허상이다. 배우가 죽는 연기를 한다고 해서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객은 이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가상의 세계에 자연스럽게 몰입하며 다채로운 감정을 느낀다.
그렇기에 스포츠와 공연이란 인류의 생육과 번성의 관점에서 볼 때는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활동일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이것들을 문화와 예술이라는 고귀한 이름으로 보존해왔고, 그것은 인류의 명맥을 이어오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스포츠 뮤지컬’은 인류가 무엇으로부터 살아가는 힘을 얻는지 보여준다. 스포츠를 다룬 뮤지컬의 줄거리는 보통 비슷한 맥락을 보인다. 대부분 운동을 통한 화합이나,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의 도전을 다룬다. 이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의미로 다가온다. 바이러스로 인해 느끼는 막막함은 결국 우리가 극복할 수 있는 벽이기에, 지금의 고난은 인류를 성장하게 만드는 힘이 될 수도 있다.
비록 온라인으로 전한 뮤지컬 소식이었지만, 무대 위 배우들이 전하는 에너지와 열정의 모습을 최대한 담으려 노력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에 지금의 열기는 더욱 소중한 법이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 누리고자 하는 것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 살아가자. 공연의 뜨거움이 당신의 일상에 닿길 바라며 만약 당신의 삶에 열정의 불씨가 꺼져있다면 이를 계기로 그 불씨를 되살리기를 바란다.
[이남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