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네가 사이코여도 괜찮아, 우리 모두 사이코니까 [TV/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잊지 말고 이겨내
글 입력 2020.11.2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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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책에서 그런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어느 이름 모를 심리학자가 한 말이었는데, "세상의 모든 인간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정신병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우리 모두 결핍, 강박, 집착, 불안, 공포, 망상, 우울 등, 한두 가지 이상의 크고 작은 정신병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세상에 정상적인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애초에 정상인이 있긴 있는 걸까? 있다면 '정상인'의 기준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을 평균 내면 그게 정상일까? 누구는 화를 잘 내고 누구는 화를 잘 안 내는 데, 그러면 도대체 어느 정도 화를 내야 정상인 걸까? 그걸 수치화시켜서 일관된 기준으로 정할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정상인'이라는 말 자체가 누군가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이름 모를 심리학자의 저 말도, 분명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었을 것이다. 정상인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일 뿐이며, 각자 저마다의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고. 이러한 메시지를 아름답고 몽환적인 동화 속 이야기와 함께 풀어낸 것이,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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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이코여도 괜찮아, 우리 모두 사이코니까



드라마는 정신 병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로 인해 등장인물 중 대부분이 독특한 정신 질환을 가진 환자다.

 

그런데, 환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환자보다 더 환자 같은 사람도 있다. 단지 환자복을 입고 있지 않았을 뿐, 그 정도가 비교적 심하지 않을 뿐, 혹은 상태가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지 못할 뿐, 모든 인물에겐 한 가지 이상의 아픔이 있다. 그래서 드라마를 계속 보다 보면, 어느샌가 환자와 환자가 아닌 사람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어쩌면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정신병원이라는 배경을 통해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우리 모두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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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결코 일차원적이지 않다. 긍정적인 사람 부정적인 사람으로 정확하게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평소에 밝고 긍정적인 사람도 어느 때는 부정적이고 어둡게 바뀌기도 하고, 반대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람도 때때로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상대방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한다. 저 사람은 소극적인 사람이야, 저 사람은 활발한 사람이야, 저 사람은 성격이 굉장히 차가운 사람이야, 저 사람은 굉장히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야. 하지만 하나의 특징만으로 그 사람의 전부를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때로는 활발하고, 때로는 소극적이며, 때로는 누구보다 이기적이고, 때로는 마더 테레사보다 헌신적이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다. 이처럼 한 사람 안에도 다양한 특징과 입체적인 모습이 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모습 중에서, 가장 이상하고 '사이코' 같은 모습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구나 '사이코'가 될 수 있다. 또한,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마음에는 큰 아픔과 상처를 갖고 있을 수 있으며,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드라마는 바로 이러한 불완전하고 사이코 같은 모습들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인물의 아름답고 멋진 모습만을 비추지 않는다. 그들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못나고 추한 모습까지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고통스러운 기억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벌벌 떨며 울부짖는 문강태(김수현), 충격을 받고서 미친 사람처럼 하염없이 비를 맞으며 길을 걷는 고문영(서예지), 드라마는 인물이 가진 입체적인 모습들을 다채롭게 비춘다. 이러한 장면들이 우리가 가진 사이코 같은 모습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든다. 마치, "네가 사이코여도 괜찮아, 우리 모두 사이코 같은 면을 갖고 있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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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끝에 찾아오는 행복



가장 불행하고 외로웠던 두 사람, 문강태와 고문영은 끝내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아름다운 결말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드라마는 인물이 가진 아픔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도, 마냥 낙관적인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안일하게 힐링만을 외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문제를 두 눈으로 직시하고 극복하라고 말한다. 1화에서부터, 그 메시지는 동화책을 통해서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문강태(김수현)의 목소리로 잔잔하게 들려오는 동화 속 이야기에는 굉장히 깊은 울림이 있다.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 처절하게 후회했던 기억, 남을 상처주고 또 상처받았던 기억, 버림받고 돌아섰던 기억, 그런 기억들을 가슴 한구석에 품고 살아가는 자만이, 더 강해지고 뜨거워지고 더 유연해질 수가 있지. 행복은 바로 그런 자만이 쟁취하는 거야. 그러니 잊지 마. 잊지 말고 이겨내. 이겨내지 못하면, 너는 영혼이 자라지 않는 어린애일 뿐이야.

 

-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1화

 

 

드라마는 이 메시지를 1화부터 16화까지,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차갑게, 문강태와 고문영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힘들면 함께 부둥켜안고 펑펑 울자. 힘들고 지칠 땐 조금 쉬어도 괜찮아. 하지만 그 문제로부터,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어. 결국, 이겨내야만, 너는 더 행복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 과정은 쉽지 않겠지만, 우리 함께 극복해나가자.

 

그런 이야기를 주인공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담담하게 풀어낸다. 처절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를 위로하고, 용감하게 고통스러운 기억과 직면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한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나의 상처와 아픔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만화 주인공의 대사가 떠올랐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 만화, 베르세르크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때때로 우리는 행복에 관하여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어렵게 생각할 때가 있다. 내일은 생각하지 않고 당장 오늘을 위해 돈을 펑펑 쓰거나, 괴로운 현실을 잊기 위해 여행을 다니며 힐링하는 그 순간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엄청난 경제적 성공을 이루거나 높은 지위와 명예를 성취했을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런데 어쩌면 행복은 내가 가진 아픔과 괴로운 기억을 직면하는 용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조금 사이코같아도 괜찮다. 우리 모두 서로 다른 사람일 뿐이고, 각자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행복은 자신이 가진 문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마음의 상처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그것은 또 다른 이름으로, 성장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성장이 쌓이고 쌓여서, 우리의 영혼은 '어른'으로 나아간다. 드라마는 계속해서 우리들에게 말한다. 부드럽고 따뜻한 위로와 함께, 때로는 단호하게.

 

"사이코지만 괜찮아, 잊지 말고 이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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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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