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돌보는 일상의 르포르타주 -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

글 입력 2020.11.2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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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반 년이 다 되어간다. 치매를 오래 앓으셨다. 할아버지가 천천히 스러져가는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병원비와 간병의 문제. 몇 년 동안 누가 할아버지를 돌볼 것인지, 얼마나 성의껏 돌볼 것인지를 두고 온갖 고충과 갈등을 겪은 덕분에 아버지도 폭삭 늙었다. 옆에서 그 과정을 계속 지켜보다 보면 늙음과 질병, 돌봄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기대 수명은 빠르게 늘어났지만 복지 제도는 미비하고, 제도적 시스템의 부재 아래 늙고 병든 사람들을 돌볼 의무는 혈연 가족과 여성에게 과도하게 떠넘겨진다. 할머니에게서 며느리로, 딸로. 여성으로 산다는 건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돌봄 노동은 대표적인 무급 노동이다. 여성의 일은 가치가 없기 때문에, 합당한 경제적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인식도 없다. 애초에 돌봄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노동자로서의 권위나 발언권도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처음에 신간 목록에서 이 책을 봤을 땐 가벼운 에세이일 거라 생각했다. 표지에는 푸른 밭에서 인자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할머니가 있다. 색감과 분위기가 따듯하고 정겹다. 제목은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 이십대의 손녀가 아흔의 치매 할머니의 마지막 2년을 기록했다는 책 소개가 흥미롭다. 책은 가볍고 글씨 크기도 커서 술술 넘어간다. 하지만 이 간편함만큼이나 내용의 깊이가 놀랍고 담백하다.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이 "돌보는 일상의 자책과 성찰을 (...)따뜻한 문체로 담아낸 생생한 르포르타주"라고 쓴 추천사가 책의 장점을 제대로 짚어냈다. 돌보는 일상의 기록. 작가 윤이재의 문체는 간결하고 담담하지만 문맥 사이사이에 담긴 성찰과 문제 의식은 맑고 투명하게 가슴에 와 담긴다.

 

 

2020년을 사는 나와 1928년에 태어난 나의 할머니. (...) 나는 할머니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라져가는 할머니를 위해 그리고 어쩌면 나를 위해 쓰는 글이다. 이 글은 나의 할머니가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며, 한 세기를 용감하게 살아낸 한 여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9p

 

 

 

1. 할머니, 나 누구게?


 

2017년 말, 대학교 졸업을 마치고 저자는 부모님과 할머니가 사는 시골집으로 돌아간다. 취준생이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던 그녀는 "집에 있으니 할머니 밥 챙겨드리고, 좀 봐드"리는 일, 주 5일 무급의 간병인이 된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와 함께 있으면서 그녀는 계속 할머니가 자기를 기억하는지 물어본다. "할머니, 나 누구게?" 할머니는 손녀딸을 기억하거나, 못 알아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자는 할머니 옆을 지킨다.

 

할머니는 밥 먹은 걸 잊고, 손주가 군대간 걸 잊고, 손녀 사위의 존재를 잊는다. 새로운 기억은 잊지만 오래된 몸의 기억은 남는다. 할머니는 계속 밭에 나가 일하고, 옛집을 찾고, 예전에 죽은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 할머니가 살아온 삶의 내력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할머니 안에 남아 있다. 아무도 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저자와 가족들은 그런 할머니를 먹이고, 입히고, 씻긴다. 정말 힘든 일이다. 이런 돌봄은 돌려 받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주고 주고 또 줘야 하는 일이다. 정성과 성의, 애정 같은 것들을. 출퇴근 시간도 없이, 대가 없이, 감정과 체력을 계속 소모하다보면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쌓인다. 저자는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가족들에게 미친 듯이 화를 쏟아내고 만다. 스트레스와 책임감과 할머니에 대한 애정 사이에서 치매는 점점 심해진다. 치매 노인 간병을 옆에서 지켜본 입장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아래 문단이었다. 기억을 잃었을 뿐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손녀딸한테는 짜증도 안 내고 화도 안 낸대요. 딸이랑 손녀딸이랑 또 다른가 봐요." 섭섭함이 가득 묻은 목소리였다. 그러자 의사가 말했다.

 

"손녀딸이 잘해주나 보죠. 치매 환자분들은 이성이 퇴화하기 때문에 애들이랑 똑같아요. 본능적인 것, 특히 감정이 굉장히 예민해져요. 힘드셔도 소리 지르지 마세요. 진짜 큰일 납니다."

 

치매 걸린 노인을 돌본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 보호자가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면 그 상황이 치매에 걸린 할머니에게는 더욱 극대화되어 느껴진다고 한다. '화내도 기억 못 하시겠지." 하는 생각은 위험하다. 기억은 사라져도 스트레스는 누적된다.

 

- 138p

 

 

 

2. 부려먹기에는 딸이 낫다


 

치매만큼이나 책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는 여성으로서 할머니가 감당해야 했던 삶이다. 동시에 할머니 주변의 여성들이 겪은 차별, 겪고 있는 차별이다. 학교에 가지 못한 할머니. 고모는 여자였기 때문에 대학에 합격했으면서도 등록하지 못했다. "아들도 가지 않은 대학을 딸이 뭐하러 가느냐"는 이유였다. 남동생은 명절 제사에 빠져선 안되는 인물이지만, 언니와 저자는 음식 준비나 하는 부수적 노동력이다. 저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할머니에게서 "밥값도 못한다"는 말을 듣고 평생 서운함을 지우지 못한다.

 

시어머니는 곁에 모시면서 병수발을 하면서도 친정 엄마와는 마지막 여행도 가지 못하고 떠나보낸 엄마의 슬픔.  삼 대를 거친 여성들의 이야기는 왜 다들 비슷하면서도 차별과 억압, 풀지 못할 응어리가 알알이 맺혀 있는가. 가부장제의 통념과 관습 아래서 딸과 어머니와 며느리는 그런 관습에 고통받고 동시에 서로에게 관습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모순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런 억압은 결국 할머니가 늙고 쇠약해져 무조건적인 희생 정신과 돌봄을 필요로 할 때, 사랑을 가로막는 옹이들이다.

 

돌봄 노동이 여성들에게 전가되는 동안 그들의 내면에는 분노와 자책, 답답함, 억울함, 괴로움이 수시로 뒤섞인다. 할머니에게 아들은 '없으면 안되는 자식'이고 딸은 '부려먹기에 좋은' 자식이다. 모질지만 더없이 정확한 이 표현. 지난 역사 내내 여성이 가정 내에서, 사회에서 차지했던 위치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걸 알 때, 그럼에도 계속 정당한 대가 없이 '부려먹'어 질 때 어떻게 정성과 성의로 누군가를 돌볼 수 있을까? 저자는 이 복잡하고 불합리한 역학 관계의 가운데서 자신의 삶과 주변 여성들의 삶을 바라본다.

 

 

할머니를 기록하며 할머니의 며느리가 보였고, 할머니의 딸들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보였다. 나의 세상이 어떤 희생으로 만들어졌는지 직면하게 되었다. 나는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90년대 중반에 태어나 자란 여성이다. 가부장제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삼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의 따뜻한 온기와, 사회가 인정한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안정감을 충분히 느끼며 자란 수혜자이기도 하다. 그 가정의 화목을 만들어내기 위해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애써 외면하며 살았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고 믿었다. 그 희생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상처를 낳았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있는데 상처를 주는 사람은 없다.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자만 있다.

 

- 252p

 

 

 

3. 완장과 머리 리본


 

2019년, 할머니가 돌아가신다. 취업을 하고, 각자의 일을 하고 있던 저자는 장례식이라는 의례의 기이함을 직시하게 된다. 그녀가 정성껏 돌보았고 애정을 쏟은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식. 하지만 이름은 명단에는 남동생 이름이 먼저 쓰이고 그녀와 언니는 나중이었다. 저자는 이런 관습을 감내하지 않는다. 담당자에게 가서 요구한다. 남녀에 구분없이 나이 순으로 명단을 작성하기를. 남녀에 관계없이 완장을 주기를. 장례식 담당자들은 반대한다. 이 상황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그녀가 오래 이어진 전통의 중대함을 무시하고, 침범한다고 느낀다.

 

내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언니와 나는 머리에 리본을 차고 뒤에 있었다. 완장을 찬 아빠 옆에 있다가도 조문객이 오면 자리를 피했다. 여자는 일은 하되 보이지 않게 있기. 언니가 옆에서 "아빠가 죽으면 완장은 꼭 내가 찰 거야"라고 말했다. 정당한 일이지만, 막상 그렇게 했을때 언니와 내가 감내해야 할 피로감의 무게가 벌써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저자가 그려낸 할머니의 장례식 풍경이 내가 보았던 내 할아버지의 장례식과 겹쳐지면서 당시 내가 느꼈던 불만과 혼란, 소외감이 되살아났다. 왜 누구는 절을 하고 누구는 뒤에 숨어야 할까? 하지만 이 책은 나보다 더 용기 있다. 작은 시작일지라도, 하나씩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손주들 이름 순서를 바꾸고, 완장을 차기로 결심하는 저자의 행동에서 나는 할머니라는 여성에 대한 그녀의 깊은 사랑과 책임감을 느꼈다. 더 이상 참고 넘어갈 수는 없다는 용기. 돌봄과 책임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 책을 읽고 용기와 성찰을 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듯이.

 

 

여전히 장례 문화는 남성 친족 중심이며, 너무나 보수적이고 변화가 더디다. 유족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장례식장의 관리자, 장례지도사 등 그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성차별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례식은 불시에 일어나며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선택을 갑자기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유가족들은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워진다. 그럴 때 "원래 그래."라는 말은 마법처럼 여성들을 조용히 지운다.

 

전통적인 장례식의 대안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 오던 것들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부작용'이라는 말로 입을 막을 게 아니라 잘못된 것을 인지하고, 하나씩 바꾸기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변화의 시작일테니.

 

- 245p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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