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의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서 - 아버지의 사과 편지

글 입력 2020.09.2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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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과 편지’의 소개 글을 읽고 난 그 순간, 나는 이 책을 끝내기가 몹시 힘들 것임을 직감했다. 이 책이 나를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을지 나는 반쯤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겁이 난 게 사실이다. 내가 그의 고백을 읽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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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로 유명한 저자 ‘이브 엔슬러’는 다섯 살 때부터 가해자인 친아버지에 의한 성폭력을 경험했고, 이후 유년기 내내 그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비롯한 정신적, 신체적 학대에 시달렸다. 이 책의 화자이기도 한 그의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며, 살아생전 자신의 행위에 대해 이브에게 단 한 번도 사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브는 아버지의 입을 빌려 스스로에게 진정한 사과를 건네기로 한다.

 

어린 이브의 자아를 짓밟고, 가족이라는 개념을 파괴했던 심각한 범죄 행위를 가해자의 입으로 뱉어내려는 시도는 “마침내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려는” 피해자의 노력이다. 이브는 아버지의 입을 통해 그 잔혹함에 어떠한 정당함도 서사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뒤틀린 남성성과 폭력만이 실재했을 뿐임을 낱낱이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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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 번 눈물을 삼켜야 했다. 가끔은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을 수 없어 책을 덮고 잠시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믿을 수 없이 끔찍했다. 그 모든 일이 작고 어린 혈육을 향한 사랑의 감정에서 시작되었노라고, 내면의 나약함과 부드러움을 거세당한 채 자랄 수밖에 없었던 가정환경 때문이라고 고백하는 화자의 언어를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책 속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계속되는 폭력과 무자비함 앞에서 끝없는 죽음만을 상상했을 이브의 모습에 자신을 겹쳐 보일 이들이 우리가 사는 이곳에 이미 셀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왜 가해자들은 쉽게 죽어버리는 걸까? 비겁하게 세상을 떠남으로써 또 한 번 피해자를 상처 입히고, 그것이 유발할 죄의식을 통해 피해자를 자신에게 종속시키려는 시도를 우리는 너무 자주 목격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도망친 그곳에 남겨진 채 싸워야만 한다. 자신을 불신하고 깎아내리게끔 만드는 무참한 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말이다.

 

이 싸움이 피해자만의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성폭력 피해자를 다루는 미디어의 시선이 여전히 범죄 행위 그 자체와 그것이 피해자에게 준 상처의 깊이를 다루는 데만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 안타까울 뿐이다, 저 쓰레기 같은 범죄자를 당장 거세해야 한다고 모두가 말하지만, 피해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게 무엇일지 고려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나마 이런 반응들이 피해자를 탓하지는 않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내면의 회복을 위해 피해자에게 필요한 것은 당연하게도 사과이다. 저지른 행위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동시에 그것이 끼친 피해를 빠짐없이 밝힘으로써 책임을 지는 것, 즉 피해사실에 대해 진정성 있게 사과하는 것만이 피해자가 자유를 되찾도록 도울 수 있다. 사과에 대해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 행동과 혹독한 태도가 너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너를 어떻게 파괴했는지 똑바로 대면했다…나로 하여금 그런 일을 저지르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 노력함으로써 내 행동에 책임을 지고 싶어.’ -p.31
 

 

가해자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었고, 어디에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세세히 곱씹어야만 한다. 자신이 저지른 모든 행위를 시인하고, 그 행위의 기원이 되는 내면의 근원적 결핍을 드러내야만 한다.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그러한 폭력을 행사하여 피해자에게 상처를 입힌 스스로가 얼마나 잔혹하고 무지하며 탐욕스러운 인물이었는지를 깨달아야만 한다. 피해자의 치유를 도울 수 있는 진정한 사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회한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사과’를 건넬 수 있는 가해자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피해자의 아픔에 진심으로 기꺼이 공감할 가해자가 존재하기는 할까? 절망은 여기에 뿌리내린다. 피해자에게 고통을 준 당사자로서 가해자는 마땅히 사죄의 주체가 되어야 하지만, 피해자가 가해자의 입을 통해 진심 어린 ‘사과’의 언어를 들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기는 우리가 도망칠 수 없는 절망의 토양이다.

 

그래서 상처를 소독하고 봉합하는 일은 피해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우리가 모두 하찮은 남성성이 지배하는 고루한 세계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의 논리는 가해자가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수도 없이 만들어내며, 사과가 불필요한 패배임을 가해자에게 끊임없이 주입한다.

 

 

‘이 모든 일을 인정하는 것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결정된 피의 맹세를 거역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란다. 사과를 행하는 자는 최상위 명령을 어기는 반역자이지. 얼마나 많은 남자가, 얼마나 많은 아버지가 자신의 실패나 공격을 인정했을 것 같니? 이 행위 자체가 기본 강령을 배신하는 일이야.’ -p.141

 

 

같은 장에서 이브는 ‘침묵이 우리의 연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마치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쓰인 것처럼 시의에 정확히 맞아 들어가는 표현이다. 남성연대의 침묵이란 늘 무기로서 사용되었으나,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만큼 큰 영향력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피해자의 순수성과 숨겨진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질문들, 남성폭력에 서사를 부여하려는 시도들은 모두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되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저열한 전략의 일부이다.

 

그 앞에 선 우리는 견고한 구조를 부수기 위해, 그리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우리의 의무는 죽음이라는 보편적 비극이 피해자의 발언과 호소를 가리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피해자의 편에 서서 사회가 은폐해온 폭력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조에 대한 가장 강력한 공격은 결국,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그 전쟁터에서 벗어날 때 일어난다. 가해자가 영혼에 새기고자 했던 상처로부터 피해자가 해방될 때, 그리고 감정을 쥐고 흔들려 했던 모든 끈질긴 시도에서 빠져나올 때, 피해자들은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피해자의 해방은 가해자를 무력화할 것이고, 끝내는 이 오랜 구조에 균열을 낼 것이다.

 

상처를 마주보기조차 두려워하고 있는 모든 피해자들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이브가 편지를 통해 진정한 사과를 상상하고 치유와 회복을 그릴 수 있었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변화를 상상할 능력이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려는 당신의 모든 시도와 몸부림을 온 마음으로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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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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