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쥐같은 삶 [영화]

욕망의 본질은 박쥐의 성정과 같다.
글 입력 2020.08.1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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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는 아름다운 미장셴과 탄탄한 연출로 유명하다. 흥미로운 시나리오와 눈을 뗄 수 없는 미장셴, 뺄 수 없는 캐릭터, 이 모든 것에 힘을 실어주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배우 김옥빈이 맡은 ‘태주’ 역할이다.

 

어렸을 적 ‘강우’의 집에 버려져 무력하게 살아가는 태주에게 신부 ‘상현’의 존재는 피와 같은 강렬한 붉은 색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뱀파이어란 미지의 존재가 되어서야 인간의 세속적인 쾌락을 깨우칠 수 있었던 상현과 인간 이었음에도 자신의 욕망에 솔직할 수 없었던 태주의 모습은  우리가 말하는 욕망의 본질, 그 내면의 깊숙한 모순적인 의미를 보여준다.

 

신념과 욕망에서 갈등하던 상현에게 순수하게 빛나는 욕망의 태주는 마치 빛과 같은 존재였고 구속과 자유에서 갈등하던 태주에게 거리낄 것 없어 보이는 상현의 모습은 마치 신과 같은 구원의 존재였다.

 

이처럼 서로가 갖지 못했던 부분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것만 같던 사랑이 엇나가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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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의 순수함이 선과 악의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던 백지와 같은 존재였던걸 상현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만약 영화를 보는 내내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을 가져본 자의 탐욕은 단죄의 모습이 아닌 동정의 모습을 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태주의 살인에 같은 갈증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태주가 행하는 무차별적인 살인조차 그 솔직한 욕망 앞에선 도덕적 잣대가 무색해진다. 무력하게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던 모습과, 몽유병을 핑계로 매일 새벽 사람 없는 거리를 맨 발로 달려가던 모습에서 폭력의 대상이 타인이 되었을 때 도덕적인 평가 이전에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준다.

 

무력한 젊은 여인이 힘을 가졌을 때 보여주는 폭력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규탄 받아야 할 모습이 아닌 응원할 수 밖에 없는 어딘가 모를 절실함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자신에게 힘을 부여해준 상현과 동등한 존재가 됬을 때 태주의 모습이 상현의 어줍잖은 위선자의 모습보다 이질적이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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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영화에서 딱 한가지 아쉬웠던 점을 꼽자면 결말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완벽하게 순수한 존재에게 죽음이란 죽음 그 자체이다. 그 이후의 세계도, 과정의 복잡함도 신경쓸 것이 없다. 상현과는 다른 모습이다. 상현은 죽는 그 순간까지 지옥에서 보자며 태주를 안았고, 태주는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에게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한다.

 

이 완벽한 욕망의 존재가 ‘신부 상현’에 의해 창조되었다가 마무리된다는 결말은 태주의 욕망의 크기를 얕본 결말이 아니었나 싶다. 신부의 직함을 달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끝까지 이기적인 상현의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결말이다.

 

상현은 끝까지 온전히 스스로의 잘못으로 떠안지 않는다. 사랑과 대의란 이름으로 선택한 동반 자살은 상현의 비겁한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태주의 모습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본능에 충실했기 때문에 순수하기 그지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타오르는 햇빛 아래 한점 부끄럼 없는 삶은 아니지만, 저물어가는 해 아래서 시작하는 어두운 삶에도 사랑과 순수는 존재했다. 그리고 이를 완벽하게 보여준 캐릭터는 상현도, 강우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 태주야 말로 저물어가는 햇빛아래 가장 환하게 빛나는 어둠의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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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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