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8월이 다 왔다. 2020년이 절반도 넘게 지나버렸다. 21세기의 어느 한 해, 하얀 쥐의 해, 20년대에 진입하는 첫 해. 모두들 이 특정한 연도에 대해 어떻게 떠올리는지가 궁금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유난히 통째로 뭉그러져 형체가 불분명한, 정체를 알 수 없어진 어떤 것 같은 느낌이다.
이에는 코로나가 크게 한 몫을 차지한다. 덕분에 상반기 내내 온라인 강의를 들어야 했고, 복학과 휴학의 경계에서 유쾌하지 않은 외줄타기를 해야 했으며, 더워서 땀이 송글송글 맺혀도 마스크를 벗을 수가 없었고, 피부도 예민해졌다. 그러나 이 모든 것 보다 숨이 막히는 건 그 끝에 기약이 없다는 것이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도대체 2020년을 난 어떻게 떠올려야 할까. 물론 의식주 활동을 빼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진 않았다. 시도도 해보고 고민도 해보고 또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럼에도 텅 빈 무(無)와 같은 기억의 감정은 코로나 때문인지 그저 나만의 것인지, 그도 아니면 마지막 학기를 앞에 둔 졸업반이라 그런 것인지. 참 아리송하고 어렵다.
어쨌거나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싶다. 매해가 그저 인생이란 강물에 흘러가버리진 않았으면 한다. 닳고 닳아도 되니 자그마한 조약돌 하나라도 되었으면 싶다. 시간이란 개념을 느끼고 기록하기 위해, 두 번째 취향일지이다.
1. 턴테이블
드디어, 정말 드디어 샀다. 꽤나 오래 전부터 나의 위시리스트 터줏대감으로 자리잡고 있던 턴테이블을 샀다. LP판은 있는데 재생할 턴테이블은 없던 오묘한 상황. 매번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왔었는데 불현듯 느낌이 왔다. 오늘 사야만 한다는 느낌이. 돈 먹는 3대 취미 중 하나가 음향기기라던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검소해질 수 밖에 없는 재정상황에 나름 가성비로 유명한 모델을 구매했다.
나의 음향생활 경력은 못해도 20년은 되었을 것이다. 음악을 듣고 즐기기 시작했으면 그런 것을 경력이라 불러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아무튼, 미취학아동 시절 나의 선택은 클래식이었다. 잠들기 전 클래식을 꼭 틀어놓고 잠들어야 기분이 좋았다. 또 아버지가 즐겨 듣던 올드팝을 흥얼거렸다. Beatles의 Yesterday 가사를 외우고 Kansas의 Dust in the wind를 들었다. 조그마한 손에는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꼭 쥐고 카세트를 신중히 골라 가지고 나가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조금 더 큰 후에는 카세트 테이프보다 CD를 듣기 시작했다. 훨씬 큰 용량에, 부피도 덜 차지했다. 아버지가 종류별로 구워주신 CD들은 자동차에 쌓여갔고 어딘가로 떠날 때 마다 골라가며 트는 일이 낙이었다. 그 후에는 mp3를 샀고 음원 사이트의 100곡 다운로드를 결제한 후 아주 신중하게 원하는 100곡을 선별하여 하나하나 다운받곤 했다.
그마저도 이젠 하지 않는다. 핸드폰에 음악 어플 하나면 언제 어디서든 스트리밍을 할 수 있다. 예전에 비하면 얼마나 편해졌는지 새삼 글을 쓰다 보니 실감이 난다. 더 이상 카세트를 사지도, CD를 굽지도, 음원을 다운 받아 옮기지 않아도 된다.
다만 어쩐지 나는 이런 편리함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있음에도 음악을 진정으로 ‘소장’한다는 기분과는 멀어져 있었다. 그래서 정말 소장하고 싶은 멜로디와 가사들은 다시 CD를 사 모았다. 그리고 더 좋은 음질로 즐기고 싶어 오디오를 샀다. 여기까지가 나의 음향생활의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LP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큼지막한 크기와 그 속의 작품 같은 아트워크는 점점 작아지고 간편해지던 흐름과 정반대에 위치했지만 그래서 매혹적이었다. LP를 재생하는 턴테이블은 불편하기 짝이 없어 보였지만 왜인지 그것을 감수하고 싶었다. 나름 카세트부터 스트리밍까지 모두 겪어보았지만 단 하나, 나의 시대 이전에 끝나버린 LP가 궁금했다. 그래서 샀다.
그렇게 사용중인 턴테이블과 LP는 작은 용량으로 인해 계속 바꿔줘야 하는 불편함과 다른 것들보다 조금은 까탈스런 보관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재미있다. 이 오래된 음악의 저장법이, 적어도 나에게는 새롭다. 아마 한동안은 뿌듯하게 바라볼 거리가 생긴 것이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LP 구입은 통장 잔고에 따라 조금은 자제해야 하겠지만.
2. 기록 노트
기록 노트라고 하니 무언가 거창해 보여 조금 민망해진다. 정확히 명명하자면, ‘떠오르는 것 아무거나 우겨 넣기’ 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원래 쓰던 일정정리용 다이어리가 있긴 했지만 글쎄, 생각보다 잘 쓰진 못했다.
나의 기록들은 핸드폰 달력과 기본 메모장, 메모 어플, 카톡 나와의 채팅 그리고 다이어리와 내 머리 속에 조각조각 흩어져 있었다. 생각났던 아이디어는 어디에 써놓았는지, 찾던 정보는 어디로 도망갔는지 늘 찾아 헤매었다. 또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많은 생각들을 적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핸드폰 메모에 적기는 했지만 직접 종이에 쓰는 느낌이 그리웠다면 핑계일까?
그래서 새로운 노트를 하나 샀다. 늘 가지고 다닐 수 있게 작고 가볍다. 채워 넣어야 할 공간이 작으니 부담감도 없다. 노트를 적을 때 지킬 단 하나의 규칙을 정했다. 바로 아무 규칙 없이 적기. 떠오르는 영감을 적었다가 일기장이 되기도 하고 일정 정리를 하기도 한다. 예쁘게 정리하는 건 이미 오래 전에 포기했기에 부담감도 없다. 벌써 한 권을 끝내고 새로운 노트를 개시하고 싶어진다.
3. 버터 보관 통
집에서 버터의 수요는 생각보다 많다. 특히 나는 아침에 샐러드와 계란에 부드러운 버터를 바른 토스트를 자주 곁들여 먹곤 한다. 이 때의 포인트는 바로 ‘부드러운’ 버터이다. 아침마다 냉장고에서 벽돌처럼 딱딱해져 있는 버터를 먹을 만큼 잘라낼 때면 빵에 고르게 발라지지 않을뿐더러 우선 너무 힘들다. 조금 미리 꺼내놓아도 겉 표면만 살짝 녹을 뿐 비슷하다. 먹을 때마다 벌이던 사투 끝에 나는 버터 보관 통을 발견했다.
이 생소한 물건의 용도는 버터를 상온에서 부드럽고 신선하게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우선 위의 빈 공간에 버터를 가득 채워놓는다. 그런 다음 밑부분의 통에 물을 살짝 채운다. 그 후 뚜껑을 닫으면 물이 차올라 버터가 그 속에 잠기게 되고 그로 인해 공기와의 접촉이 차단되어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물론 버터는 기름성분이기에 물에 섞이지 않는다. 덕분에 아침마다 아주 부드럽고 편안한 버터 라이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요즘의 취향 3가지를 나열해보았다. 당연하게도 나의 생활과 관심사와 밀접한 취향들이었다. 20년 뒤에도 나는 이 취향들을 이어가고 있을까? 그리고 2020년은 내가 이것들을 시작한 해라고 기억할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렇게 기억되기를. 시간의 흐름을 그렇게 기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