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아름다움 - 툴루즈 로트렉 展

툴루즈 로트렉 展
글 입력 2020.07.2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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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파블로 피카소, 에드가 드가, 오귀스트 로댕 등. 프랑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시대로 불리는 ‘벨 에포크’의 예술가들이다. 지겹게도 들어온 이름이다. 하지만, 이들과 동시대에 활동했다는 ‘툴루즈 로트렉’은 내게 낯설었다.

 

전시 소식을 듣고,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들을 찾아봤다. 후기 인상파에 속한다더니, 그의 작품은 내게 익숙한 ‘인상파’와는 느낌이 달랐다. 특히 포스터 작품들은 현대에 그려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플하고 독특했다.

 

툴루즈 로트렉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전시 내용들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운 좋게 도슨트와 함께 전시를 관람했다. (도슨트는 월요일 휴관 제외, 매일 11시, 1시, 3시, 5시에 진행된다.) 전시는 연필 드로잉, 뮤즈, 몽마르트 카페, 여자, 잡지와 출판, 말과 승마, 현대 포스터의 일곱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드로잉, 리소그라피, 포스터, 스케치 등 진품 150여점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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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으로 첫 발을 내딛으면 빨간 풍차가 보인다. 1899년, 몽마르트에 오픈한 댄스홀 ‘물랑루즈’다. 본격적으로 로트렉의 작품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당시의 파리로 걸어 들어온 것 같아 낯선 설렘을 느꼈다. 물랑루즈 무대 왼편에는 거대한 로트렉의 사진이 걸려있다. 생전에는 그의 키가 작아 사람들을 올려다봐야 했지만, 지금은 관객들이 로트렉을 올려다봐야 하는 재미있는 연출이었다.

 

로트렉의 거대한 사진은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일게 했다. 그의 키가 작았다고는 하지만, 사진 속 눈빛은 단단했고, 외관은 화려했고, 존재감은 거대했다.

 

 

 

화가, 툴루즈 로트렉


 

로트렉은 프랑스에서 유서 깊은 가문의 백작 아들이다. 하지만 가문의 계속되는 근친혼의 영향으로 유전 질환을 갖고 태어난다. 또한 10대 때의 사고로 인해 더 이상 다리가 자라지 않게 된다. 로트렉은 작은 키에 하반신이 과도하게 짧은 모습으로 평생 지팡이에 의지한 채 살아야 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평생을 그림에 집중했고, 37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유화 737점, 수채화 275점, 판화와 포스터 369점, 드로잉 4784점이라는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남겼다.

 

로트렉이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건, 18세기가 되던 해 1882년 파리로 이주하면서부터다. 아카데미 화가인 레옹 보나의 화실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학문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얼마 후 보나가 화실을 닫자, 역시 아카데미 화가인 페르낭 코르몽의 화실에 들어간다.

 

1884년, 로트렉은 몽마르트 언덕으로 작업실을 옮긴다. 로트렉은 이곳을 근거지 삼아 화랑과 미술관을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토론하고, 작업실과 모델을 함께 쓰는 등 세기말 파리의 분위기를 받아들이고 즐겼다.

 

그리고 1889년, 물랑루즈가 오픈한다. 이는 로트렉의 작품세계가 큰 변혁을 맞는 계기가 된다. 로트렉에게 이 물랑루즈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자 아뜰리에였고 그곳에서 펼쳐진 공연들과 사람들은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로트렉은 매일 밤 물랑루즈를 드나들면서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그림에 담았다. 그의 작품 중 <물랭 루즈에서(At the Moulin Rouge)>를 보면 로트렉이 물랑루즈의 무대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까지 시선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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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가을, 로트렉이 제작한 포스터 <물랭 루즈, 라 굴뤼(Moulin Rouge, La Goulue)>는 로트렉을 파리의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작품이었다. 로트렉은 석판화 기법을 이용한 많은 포스터와 판화들을 탄생시켰고, 벨 에포크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로트렉은 보다 창의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포스터를 대량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사회, 문화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을 작품의 소재로 하였을 뿐만 아니라, 댄스홀, 카페, 극장 등 번창하는 파리 ‘벨 에포크’의 활기찬 매력을 포스터에 담아냈다. 일본의 우키요에에서 영향을 받은 로트렉의 포스터는 매우 단순하고 추상적인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로트렉의 미술은 당시 화가들의 고전적인 회화 기법을 훨씬 뛰어넘는 솔직함과 담백함을 보여준다. 당시의 수집가들은 벽에 붙은 로트렉의 포스터를 떼어 가지려고 혈안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로트렉의 포스터는 미술작품이 대중 소비를 위해 제작되고 활용되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으며, 그의 포스터에서 발견되는 예술 감각, 논리와 관행은 오늘날 현대 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인간, 툴루즈 로트렉


 

 
언제 어디서나 추함은 또한 아름다운 면을 지니고 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곳에서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짜릿하다.
 

 

일부 동물 그림을 제외하고, 로트렉이 온전히 집중한 대상은 인물이다. 그림의 모델은 모두 그가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로트렉의 모든 작품이 그와 삶을 같이 한 사람들의 초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카바레의 댄서와 가수, 매춘부와 서커스 단원의 모습 뒤에 가려진 인간적 비애를 그만의 미적 감각으로 포착하고 있다.

 

로트렉은 프랑스 귀족 가문에서 신체적 결함을 갖고 태어나, 상류층의 편견과 위선을 마주한다. 그의 시선은 항상 사회의 소외계층으로 향했고, 그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았다. 물랑루즈 또한 '밤문화'의 일부지만, 로트렉은 이를 에로틱하고 퇴폐적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오히려, 화려하고 유쾌하다.

 

 

[크기변환]Elles.jpg

 

 

로트렉은 1892년에서 1895년까지 3년 동안, 몽마르트의 유곽에서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그는 여자들이 쉬고 있거나, 카드놀이를 하거나, 화장하는 모습을 몇 시간이고 지켜보았다. 로트렉은 이들을 아무런 과장이나 미화 없이 보이는 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더 진지하게 그려냈다.

 

로트렉은 가수나 여배우 등 연예인들의 강요된 관능과 유혹 아래에 감춰진 억눌린 열정, 외로움 그리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그려냈다. 보편적 아름다움을 그려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소외계층에게서 보았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특히, 전시를 관람하며 놀랐던 부분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동성애다. 당시 동성애는 범죄였지만, 로트렉은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포스터 섹션에서 당시 유명했던 여가수 ‘메이 벨포트’와 공개적인 동성 여인이었던 ‘메이 밀튼’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인상적인 건, 두 포스터가 마주 보고 있다. 전시회에서라도 연인이 함께하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배치했다고 한다. 로트렉의 삶을 이해하고, 또 사소한 디테일까지 신경 써 전시를 구성한 기획자의 센스가 돋보였다.

 

 

 

툴루즈 로트렉


 

사회가 부도덕하고 추하다고 규정하는 것들의 이면을 보고, '낮은 곳'으로 명명되는 곳으로 직접 가서 함께 어울리고, 그들의 삶을 예술로 풀어냈던 툴루즈 로트렉.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다소 솔직하고 직설적인 모습들이 담긴 그의 작품에 낯섦과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름답다.

 

우리는 언제나 대상의 외면이 아닌 내면을 봐야 한다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지만, 쉽지 않다. 당장 나부터 내 외면을 부풀리기에 여념 없는데, 다른 사람의 내면을 보라고?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로트렉은 했다.

 

이번 <툴루즈 로트렉 展>은 낯설기만 했던 로트렉에 대해 배워가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가 가졌던 예술관과 그 시선을 보며 나를 반성하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물론, 툴루즈 로트렉의 인생사를 살펴보면, 이에 대한 평가는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의 작품 속에 느껴지는 낯선 아름다움이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곳, 추함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

 

 

*

 

툴루즈 로트렉展

- Henri de Toulouse-Lautrec -



일자 : 2020.06.06 ~ 2020.09.13


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6시)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1,2전시실


티켓가격

성인 : 15,000원

청소년 : 12,000원

어린이 : 10,000원

 

주관: 메이드인뷰, 한솔BBK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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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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