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넷플릭스 시대, 영화의 과도기를 지나는 우리 [문화 전반]

영화 플랫폼 지각변동을 통해 보는 ‘콘텐츠’의 의미
글 입력 2020.07.13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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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극장에서 처음 영화를 본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나의 경우는 이러하다. 나의 외삼촌은 어린 나를 극장에 데려갔고, 외삼촌의 손에 이끌려 처음 마주한 영화관의 분위기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캄캄한 실내에서 커다란 스크린만이 유일하게 빛을 내었고 사람들은 숨죽여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때 내가 봤던 영화는 당시 유행했던 <조폭 마누라>.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삼촌 취향의 영화를 어린애에게 보여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지만 내용에 상관없이 극장에 대한 첫 기억은 내게 신비로운 체험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그런 걸까. 꽤 오랫동안 나에게 영화란 ‘극장예술’의 고정관념으로 박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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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꼭 영화관에서만 영화를 보진 않는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발전 이전부터 사람들은 VOD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소비해왔다.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극장에서 먼저 상영이 되고 이후 VOD 시장으로 넘어오는 구조. 나 역시 오래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놓친 영화들을 즐겨보곤 했다.

 

하지만 갓 개봉한 영화의 ‘Fresh’함이 없는, 어쩐지 ‘철 지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묘한 아쉬움이 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영화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영화란 ‘극장 예술’이라는 편견이 조금씩 깨지고 있는 듯하다.

 

 

 

넷플릭스가 위협하는 영화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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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온라인 미디어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는 올해 코로나 사태 이후 1분기 신규 가입자가 16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당초 예상했던 신규 가입자 수의 약 2배에 해당하는 숫자로,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이 아닌 집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폭증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다. 한마디로 극장가는 울고 OTT 업체는 웃으며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인데, 사실 이러한 흐름은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있어왔다.

 

지난 2017년, 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옥자>는 극장과 온라인의 동시 개봉을 추진했지만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형 멀티플렉스들은 영화 생태계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옥자>의 극장 개봉을 보이콧했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플랫폼이 압도적 우위를 보인다면 향후 극장 자체가 사멸할 수 있다는 공포가 서려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후 <옥자>가 칸 국제영화제 출품으로 논란을 빚자 2018년부터 칸에서는 극장상영 영화만이 출품 가능하다는 제약을 세웠다. 칸 영화제 역시 영화 생태계의 지각변동을 직시하고 이에 대한 우려의 조치를 낸 것이다.

 

이처럼 전통 영화업계와 온라인 플랫폼의 갈등은 몇 년 전부터 이어져왔다. 전통적으로 영화는 극장 개봉을 거친 후 넷플릭스와 같은 VOD 시장으로 넘어오게 되어있다. 극장에 우선적으로 영화를 거는 이 기간을 ‘홀드백’이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이 ‘홀드백’기간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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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롤 : 월드투어>

 

 

<트롤 : 월드투어>는 유니버설이 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올해 4월 코로나 사태에 극장과 VOD에서 동시 개봉을 했다. 이는 그간 멀티플렉스의 눈치를 보던 영화업계가 코로나라는 불가피한 상황을 이유로 하나둘씩 극장과 온라인의 경계를 허무는 신호탄이 된 셈이다. 미국 최대 극장 체인 AMC는 <트롤 : 월드투어>의 개봉을 두고 유니버설 영화의 보이콧을 선언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영화계의 지각변동은 더욱 굳어지는 양상이 되었고 극장가와 온라인 플랫폼 사이의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는 무조건 극장 상영? - 영화예술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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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유튜브 생중계

 

 

개인적으로 나는 넷플릭스가 파괴하는 이 영화 생태계 흐름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연극이나 뮤지컬이 극장 예술이듯 영화 역시 극장 예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은 뮤지컬이나 발레도 유튜브 등을 통해 그 플랫폼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예술은 영상으로는 한계가 있고 극장을 통해서만 완전히 실현되며 영화 역시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영화계의 지각변동이 극장을 무너뜨리는 전초가 될까 우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급변하는 이 플랫폼 생태계 속에서 영화예술의 힘과 의미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온라인 플랫폼은 극장의 웅장한 사운드나 화면 크기를 따라갈 수 없고 분명 어느 정도의 질적 차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영화예술의 본질은 좋은 콘텐츠에 있으며 사운드나 영상의 크기 등은 이를 뒷받침해 주는 보조수단이다. 좋은 콘텐츠라면 플랫폼에 상관없이 높은 관객 수와 이용자수가 이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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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리시맨>

 

 

<기생충>과 함께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 <아이리시맨>은 할리우드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작품이다. 70년대 아메리칸 뉴시네마부터 현재까지, 영화 역사의 흐름에 있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넷플릭스 제작으로 이번 <아이리시맨>을 만들었다. 그는 “현재 영화계는 1927년 유성영화의 도래 이후 가장 큰 혁명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해보자‘ 했죠.”라며 새로운 시도의 심정을 밝혔다. 넷플릭스는 이 거장 감독을 통해 본인들의 콘텐츠 역시 정통 시네마의 구현임을 내보였고, 마틴 스콜세지는 그가 만든 영화가 플랫폼에 상관없이 시네마로써 기능하는 것을 확인하는 도전이었다.

 

우리가 무엇을 선호하든, 변화하는 패러다임은 바꿀 수는 없다. 4차 산업혁명이 막 도래했을 때를 생각해보라. 처음에는 많은 반감의 목소리,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많은 두려움과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흐름을 막지 못했고 현재는 AI가 있는 일상에 많이들 익숙해졌다. 가전은 AI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으며 음식점을 가면 무인계산기가 우리의 앞을 막아선다. 순순히 변화를 인정하고 적응해야 하는 시대다.

 

마찬가지로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통해 영화예술이 갖는 본질적인 힘이 콘텐츠에 있음을 확인했고 콘텐츠의 질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또 멀티플렉스가 독점하던 한국 영화시장의 경계가 조금씩 무너진다면 소비자들은 더욱 좋은 서비스와 영화들을 제공받을 수 있지 않을까. 보수적인 우리는 기본적으로 변화에 반감을 갖기 마련이지만 상황에 맞게 잘 적응하는 힘을 갖고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영화계에 찾아온 이 혁명의 흐름이 발전된 영화산업의 방향으로 이끌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참고

[미디어 플랫폼의 진화] 新 플랫폼의 등장, 영화계 지각변동 신호탄 될까, 이슈메이커

JTBC 방구석1열 : 마틴스콜세지편

 

 

[백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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