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랍스터'와 '경계선' - 나와 타자의 교집합 [영화]

완벽한 관계라는 환상이 무너지는 순간
글 입력 2020.07.0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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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채널A의 예능 프로그램 <하트시그널>이 다시 유행을 끌고 있다. 한 시즌이 끝날 때마다 출연자들과 리얼리티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SNS를 보면 이번 시즌 역시 반응이 뜨거운 듯하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한 집에 입주한 남녀 8명은 이름, 직업을 소개하고 점차 서로의 취향을 알아간다. 그들에게는 마음에 드는 이성을 선택해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진다. ‘커플 탄생’이라는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멜로드라마 또는 리얼리티에서 출연자들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공통점을 찾는다.

 

하트시그널을 보며 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더 랍스터>(2015)와 <경계선>(2018). 사랑에 대한 영화는 무수히 많고, 두 편의 영화 모두 ‘사랑’ 말고도 할 말이 많은 영화지만, 이 글에서는 두 영화가 보여주는 나와 타자의 ‘교집합’, 그리고 그 환상이 무너지는 순간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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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의 주인공 티나(에바 멜란데르)는 남들과 다른 외모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극도로 발달하여 다른 사람은 감지할 수 없는 것을 감지해내는 후각이 그것인데, 티나는 그 능력을 활용해 공항 세관에서 검문하는 공무원으로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한 남자 보레(에로 밀로노프)를 만나고,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그를 검문하던 중 그가 여성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성기를 가지고 있는 자신을 기형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티나에게 자신과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남자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평범한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면서도 결코 ‘정상’이라는 범주에 들 수 없었던 그녀에게, 자신의 반쪽 같은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보레를 통해 자신이 인간이 아닌 트롤이라는 것을 자각한 티나는 보레와 점점 더 가까워진다. 울창한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자연에서 티나와 보레는 사랑을 나누고,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인다. 그녀는 여전히 ‘정상’이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과 똑 닮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심지어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가 숨기고 있던 사실 – 그녀의 진짜 부모는 인간에 실험에 이용되었다는 것 – 을 알게 되며 더욱 혼란스러워진 그녀에게 보레의 존재는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나와 같은 존재가 있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안도감과 안정감. 그러나 이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보레가 인간 아이를 납치하여 밀매하는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티나는 다시 갈등하게 된다. 보레를 향한 배신감과 양심, 그리고 그동안 쌓아온 유대감과 사랑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그녀는 결국 윤리적으로 옳은 일을 택한다. 티나는 보레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 경찰과 함께하지만, 보레는 바닷물에 몸을 던져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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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제목인 <경계선>이 티나와 인간들 사이의 경게선을 의미한다는 것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어울려 살아가면서도 그녀는 그 경계선을 절대 넘어갈 수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보레는 자신과 함께 경계선 너머에 머무르는 존재였고, 그 사실에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꼈을 것이다. 북유럽의 트롤이라는 판타지적인 설정은 이들의 교집합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영화는 티나와 보레 사이의 경계선을 조금씩 드러낸다.
 
서로가 완벽한 짝인 줄 알았지만 그들이 인간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너무나 달랐다. 가족, 친구, 애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티나와 인간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가지고 살아온 보레 각자의 삶의 방식이 그들 사이에 경계선을 만들었고, 그 선이 뚜렷해진 순간 운명의 짝이라는 환상은 사라지고 만 것이다.
 
<경계선>에서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더 랍스터>에서 데이비드(콜린 퍼렐)와 끝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는 여자(레이첼 바이스)의 사랑도 숲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경계선>에서 숲이 티나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은신처의 기능을 했던 것과 다르게 <더 랍스터>에서의 숲은 바깥세상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규율에 종속된 공간이다.
 
<더 랍스터> 속의 세상은 커플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다. 파트너가 없는 사람은 커플 메이킹 호텔로 이송되고, 45일 안에 호텔에서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체제를 거부하는 이들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며 이 영화에서는 호텔도 도시도 아닌 울창한 숲이 그들의 아지트가 된다. 주인공 데이비드 역시 호텔을 탈출해 숲으로 숨어들지만, 호텔을 탈출했다고 해서 그가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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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이 되기를 거부하는 이 공동체에는 ‘절대 커플이 되면 안 된다’는 엄격한 규율이 있다. 스킨십을 나누다 적발되면 잔인한 벌을 받고, 춤을 출 땐 각자 귀에 이어폰을 꽂고 춤을 추며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이 이 공동체의 규율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데이비드는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사랑에 빠진 이유는 간단하다. 데이비드와 여자 둘 다 근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들의 눈을 피해 은밀한 만남을 이어가던 그들은 둘만의 신호를 주고받으며 도시로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존의 체제에서 도망친 그들이 다시 체제로 편입되기를 소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둘의 계획은 적발되고 여자는 규칙을 어긴 대가로 시력을 잃는다. 그녀에게 하필이면 시력을 앗아가는 벌이 내려진 것은 우연이 아닐 테다.
 
영화의 결말에서 두 사람은 결국 도시로 도망친다. 성공적으로 숲을 빠져나온 뒤 식당에서 여자와 마주 앉은 데이비드는 여자를 따라서 자신의 시력을 포기하겠다고 다짐한다. 잃어버린 교집합을 다시 만들기 위해 스스로 눈을 찌르겠다고 결심하는 데이비드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극단적이고, 비효율적이다. 영화는 데이비드가 눈을 찌르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끝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관객에게는 두 사람의 앞날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데이비드는 눈을 찔렀을까? 눈을 찔렀다면 그들은 행복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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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시그널을 보며 이 두 편의 영화가 떠오른 것은, 이 프로그램이 <더 랍스터>의 호텔처럼 커플 메이킹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트시그널 – 또는 여타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완벽한 관계’의 이면을 두 영화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운명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잘 맞는 사람은 당연히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개별적인 존재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 나이, 직업, 취향을 알아가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만 그 ‘교집합’은 자의 혹은 타의로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불안정한 영역이며, 나와 상대 사이의 경계선은 언제든지 드러날 수 있다는 것. <경계선>과 <더 랍스터> 두 편의 영화는 완벽한 관계라는 환상이 무너지는 순간을 아름답고 잔인하게 보여준다.

 

 

[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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