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칼럼] 인간만 모르는 그들의 언어, '콧바람'편

글 입력 2020.05.29 20:2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히이잉- 웨엥- 훅훅(콧바람 소리)’

 

 

어느 종 언어인지 아시는 분?! 역시, 아무도 모르는군요. 제가 발음이 안 좋은 건가요? 사실 이 종의 언어는 같은 뜻이라도 10가지 방식으로 얘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무척 어려운 언어죠! 아무튼, 이쯤에서 대망의 첫 번째 출연자를 모셔보겠습니다!

 

*

 

Q. 안녕하세요, 코뿔소님. 저는 통역과 진행을 맡은 인간 ‘나봄’이라고 합니다.

 

A. ...


 

Q. 하하,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가 보네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편의상, 반말을 사용하셔도 괜찮습니다.


A. 난 살 만큼 살았어. 그래서 대표로 나오게 됐지. 맞아, 난 인간이 싫어. 싫다기보단 무섭다는 말이 가깝겠지. 아주 예전엔 하늘이 제일 무서웠어. 근데 하늘보다 인간이 더 무서운 존재더라고.


아무래도 오래 살다 보니, 이것저것 많이 겪었어. 그래도 아직 살아는 있으니 직접 겪은 것보단 본 게 더 많은 셈이지. 어떤 애들은 사는 게 중요하니까 내가 운이 좋은 거라고들 하는데, 글쎄. 난 잘 모르겠어. 진짜 내가 운이 좋은 걸까? 내 뿔을 봐. 그리고 내 몸을 봐. 자, 다음 질문 이어받지.

 

 

Q. 아.. 뿔이 거의 다 잘려 나가서 남아있는 부분이 거의 없네요... 근데 뿔이 잘려도 죽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왜 코뿔소님 친구들 수가 많이 준 건가요?


A. 하하! 농담이 정도가 지나치네! 내 친한 친구 얘기를 해주지. 한 친구는 세상을 떴어. 총 든 놈들한테 당했지. 그놈들은 뿔을 원하는 게 아냐. 정확히는 ‘뿔 전체’를 원하는 거지. 그래서 내 친구는 코가 잘렸어. 코까지 잘라야 뿔 전체를 온전히 가져갈 수 있거든.


우리는 눈이 잘 안 보여. 그래서 후각이 뛰어나지. 뿔은 우리에게 있어서 최고의 칼이자 창이야. 위험하다 싶으면 이 뿔로 공격하거나 보호하거든. 그래서 총 든 놈들은 우리를 살육하고 뿔을 가져가는 경우가 허다해. 내 친구들 대부분은 이렇게 죽었어.

 

다른 친구는 살아있어. 아마 이 세상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몇 없는 혈통을 가진 코뿔소일 거야. 걔는 코끼리 피부를 이식받았어. 원래 피부는 총 든 놈들 때문에 도망 다니느라 다 쓸리고, 상처투성이였지.


근데 어디선가 또 다른 인간들이 오더니, 톱으로 그 친구의 뿔을 자르더군. 그 뒤로 그 친구는 밀렵꾼들에게 쫓기지 않게 됐지만, 자긴 아직도 의문이라고 하더라고. 총 든 놈들과 톱 든 놈들의 차이점을 모르겠대.

 


611211110011902527_4.jpg



Q. 네?! 이건 너무나도 다른 부류인데 어떻게 차이를 모를 수가 있죠? 밀렵꾼들은 나쁜 놈이고 피부 이식과 뿔 자르기를 해준 인간들은 도움을 주려는 착한 자들이잖아요!


A. 너희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몰랐네. 난 도와주는 거라는 것도 몰랐어. 나중에 그 친구를 만나게 되면 꼭 말해줄게.

 

우리는 말야, 뿔이 꼭 필요해. 근데 이것 때문에 우리가 죽는다고 해서 이걸 너희들 맘대로 자른다? 뭔가 모순이지 않아? 뿔이 없어도 죽는 건 마찬가지야. 뿔이 잘린 우리는 야생에서 최약체니까. 오늘 죽나, 내일 죽나 이 차이일 뿐이야.


그리고 나라도 잘 모를 것 같긴 해. 인간을 볼 때마다 친구들이 죽어 나갔는데 어느 날 또 인간을 봤어. 그럼 도망치겠지. 그러다 잡혔어. 근데 죽이진 않고 뿔만 잘라가네? 그러면서 총 든 인간들처럼 웃으면서 떠나. 서서히 죽는 걸 보겠다는 심산인가 싶었는데, 도와주는 거였구나.

 

우리는 그냥 살던 대로 살고 있었을 뿐인데, 너희 멋대로 와서 우릴 죽이고는 또 너희 멋대로 와서 우릴 도와주는구나. 애초에 너희가 없었으면 그만인 것을. 그걸 모르고 너희 방식대로 우릴 도와줘 놓고 자기만족과 심리적 보상을 얻으며 우리한테 생색내고 있었던 거였네?

 

 

Q. 생색이라뇨. 우선, 진정하시고. 그런 건 아닙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코뿔소님과 친구분들이 최대한 전처럼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러려고 만든 자리니까요. 그럼 반대로 혹시 저희에게 질문하고 싶은 게 있으신지요?


A.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너희 인간들 입장에선 내가 냉소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 근데, 오죽 많이 당했으면 이렇게 생각할지 너희도 좀 처지 바꿔서 생각해 봤으면 좋겠네.

 

질문이라. 질문보단 말하고 싶은 게 있어. 그, 왜, 우리 뿔 말이야. 이거 그냥 인간들 손톱이랑 똑같은 거 알지? 너희들 우리 뿔 가지고 인테리어 삼거나, 장신구로 만들잖아. 근데 이상한건 이 뿔을 먹기도 하더라? 그것도 엄청 비싼 것 같던데? 정력이나 숙취 해소에 좋다는 얘기도 있고, 한약재로도 많이 쓰인다고 하고. 아! 나봄 인간네 나라에서도 유명하다던데?

 

 

Q. 동의보감에 나왔던 서각(犀角)을 얘기하는 것 같네요. 주로 혈(血)에 열이 많아서 겉에 발진이나 황달이 생기거나, 피를 토하거나, 하혈하거나, 뇌에서 출혈이 일어났거나 했을 때 많이 썼고, 심신을 안정시켜 주거나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효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불법이기에 쓰지 않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A. 내가 아는 친구는 최근에 한국 한약재로 불법 밀렵당해서 죽었어. 다들 불법인 건 알지만 암암리에 알고 있지 않아? 뒤에서 거래한다는 거?


나랑 말이 통하는 다른 인간 한 명이 그러던데. 최근 몸이 좋지 않아서 한약방에 가서 한약을 지어 먹었는데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비싸서 재료가 뭐가 들어가냐고 물어봤더니 온갖 비싼 불법 약재들이 다 있더래. 거기에 물론 서각(犀角)도 있었고. 우리의 뿔을 가루로 만들어서 한약재로 쓴다나? 근데 불법이라서 다른 동물의 뿔을 쓰거나 어렵게 구해와 비싼 값에 팔고 있다고 말했대.

 

아! 나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어. 우리가 계속 죽어서 사라지면, 우리 뿔은 어떻게 구하려고? 이렇게 가다간 우리가 다 사라질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럼 아예 구하지 못할 텐데,

 

(묵음 처리, 자막 중단)

 

어, 네! 이상으로 코뿔소님의 실시간 인터뷰를 마칩니다. 코뿔소님,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은 다음번 초대 때... 아, 네, 오늘이 첫 방송이라 마무리가 엉망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광고 보고 오겠습니다!

 



 


p.s. 나봄 인터뷰 스텝 알바 후기 썰

 

너무 웃긴 게, 코뿔소가 거의 무표정에 일관된 톤으로 대답했거든? 난 뭔 소리지 모르니까 그냥 지루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코뿔소가 이상한 울음소리도 내고, ‘슉슉? 훅훅?’이런 바람 소리를 막 내면서 점점 톤이 높아지는 거야. 그래서 난 ‘이제야 말이 터졌구나! 시청률 좀 오르겠다!!’ 이러고 있었는데 웬걸?


갑자기 진행자가 당황하더니 광고 틀고 나 포함 다른 알바 애들이랑 코뿔소 끌어내느라 진 빠졌다니까? 이 알바가 괜찮긴 한데 생각보다 힘이 많이 필요함. 세상에 그렇게 무거운 건 처음 들어봄. 덩칫값 하더라. 아, 그리고 그 최근에 불법 한약재 먹었다는 거, 그거 진짜야. 내 지인이 먹었거든. 내 지인이 방송 나온 코뿔소랑 아는 사이.

 

참고로, 방송에 통역 안 나간 부분 가져왔음.



아! 나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어. 우리가 계속 죽어서 사라지면, 우리 뿔은 어떻게 구하려고? 이렇게 가다간 우리가 다 사라질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럼 아예 구하지 못할 텐데,



무슨 배짱으로 생각 없이 죽이고 다니는 거야? 우리 이후를 이을 다른 종이라도 생각해 놓은 건가? 아, 혹시 이 이유 때문에 우리 멸종될까 봐 톱 든 놈들이 구해준답시고 우리 종을 늘리려는 계획인 거야? 어? 갑자기 궁금한 게 막 생기네! 그 한약재 관련한 것도 궁금한 거 있는데, 잠시만!!


 


 


cf. 네, 한약방은 사실을 기반으로 작성한 이야기입니다.

 




[홍서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07857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