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 온 뒤 맑음 그리고 개구리 - 매그놀리아 [영화]

글 입력 2020.05.27 20:3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매그놀리아 Magnolia


 

131.jpg


 

영화는 우연히 일어난 황당한 사건들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그린베리 힐에서 일어난 강도 살인 사건의 범인이 '그린, '베리', '힐'이라든지, 화재가 일어났는데 스쿠버 다이버가 나무에 걸려서 죽어있고 그를 물에서 끌고 간 헬기 조종사는 알고 보니 전날 카지노에서 만나 서로 싸웠던 사이여서 죄책감에 자살했다든지,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아들을 부부싸움 중이던 부모가 총으로 쏴서 아들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감옥에 갔다든지 하는 그런 사건들이다.


 

MV5BZWU4Yzk0N2QtMDIzOC00MmYyLWFhYTgtYzliYWJkYjY3NWY3XkEyXkFqcGdeQXVyOTc5MDI5NjE@._V1_.jpg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33년 동안 방영한 장수 퀴즈쇼 'What Do Kids Know?'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퀴즈쇼의 진행자 지미 게이터(필립 베이커 홀)는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 지미는 딸 클라우디아(멜로라 월터스)를 강간했고, 10년 전 집을 나간 클라우디아는 마약에 빠져 살고 있다. 음악을 크게 키운 뒤 마약을 하던 그의 집에 소음 신고를 받고 경찰관 짐(존 C. 라일리)이 도착한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죽어가는 아버지가 있다. 얼 파트리지(제이슨 로바즈)는 지미의 퀴즈쇼를 후원하는 프로덕션의 CEO다. 오래전 어린 아들과 암 투병 중인 아내를 버리고 떠나 새 아내 린다(줄리안 무어)와 살고 있다. 죽어 가는 얼의 옆을 지키는 것은 간병인인 필(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다. 얼은 필에게 헤어진 아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얼의 아들 프랭크TJ 맥키(톰 크루즈)는 '여자 꼬시는 법'에 대해 쓴 '유혹과 파괴'라는 책으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지미의 퀴즈쇼에서 퀴즈 왕으로 활약했던 도니(윌리엄 H 머시)는 과거의 영광에 얽매인 채 살고 있다. 영업을 못해 해고 통보를 받았고, 좋아하는 남자와 가까워지기 위해 필요 없는 교정치료까지 받으려 한다. 현재 지미의 퀴즈쇼에서 연승을 이어가고 있는 아이는 스탠리(제레미 블랙맨)다. 스탠리는 호기심도 많고, 모든 종류의 책을 읽으며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 그의 아빠는 배우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보러 다니며 스탠리가 상금을 쓸어오기를 바라고 있다.


 

 

욕망과 사랑


 

프랭크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동물적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여자와 잘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그의 강의는 결국 여성에게 사랑받고 싶은 뭇 남성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프랭크 맥키라는 이름도가짜, 학벌도 가짜 모든 것을 꾸며낸 그의 과장된 모습도 진정한 자신을 가리는 가면에 불과하다. 누군가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강한 이미지로 자신을 꾸며내고,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자 한다.


그렇기에 진짜 부모님의 이야기를 인터뷰어가 꺼냈을 때 흔들리고 동요한 모습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여리고 약한 면이기 때문이다. 프랭크는 자신을 버린 죽어가는 아버지 앞에서 결국 눈물을 쏟는다. 사랑과 미움이 섞인 오묘한 감정의 폭발을 톰 크루즈는 섬세한 연기로 표현해냈다.


 

MV5BY2NhOGVjMmItNDI2My00NTliLWE5MWItNDExMDgwMDFmZDQxXkEyXkFqcGdeQXVyODczMDI0MDU@._V1_.jpg

 


클라우디아 역시 마약에 의존해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인물이다. 짐과의 데이트에서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싫어할까 봐 도망치고 만다. 시종일관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클라우디아는 짐의 진심 어린 고백에 마침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기만과 거짓말로 점철된 부정직한 아빠인 지미로부터 벗어나 솔직함과 정직함을 추구하는 짐의 세계로 향하게 된 것이다. 클라우디아에게는 정직과 진솔함이 곧 사랑이다.

 

생방송 도중 바지에 소변을 본 스탠리, 직장에서도 술집에서도 무시당하는 도니, 아빠에게 강간당한 클라우디아, 아빠에게 버려진 프랭크, 죽어 가는 두 명의 남자, 죽어가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 린다 등 모든 인물은 그들의 존엄성을 잃는다. 타인 혹은 자신의 욕망 때문에. 이들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다.


 

MV5BMzg1ZDQ3OTktNTg2MC00NDk1LWE5OGItOWU3OGQ2YjEzNTgzXkEyXkFqcGdeQXVyOTc5MDI5NjE@._V1_.jpg

 


죽어 가는 두 명의 아버지는 자신의 욕망을 고집하며 자식을 버렸고 동시에 자식에게도 버려졌다. 두 인물 모두 끝까지 자식과 화해하지 못한 채 죽어 간다. 스탠리의 아빠 역시 상금을 위해 아이를 수단으로 이용한다. 욕망의 수단으로 아이를 취하거나 버린 나이 든 남성들은 욕망을 실현하지 못한다.

 

 

"난 정말 줄 사랑이 많은데

누구에게 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자신의 넘치는 사랑을 어쩌지 못해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넘겨 주는 것을 옳지 않다. 사랑이 아프면 욕망이 된다. 욕망은 자신이 아끼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는 아물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용서와 후회


 

엉망진창으로 복잡하게 얽힌 사건들 사이에 내동댕이 처진 인물들을 감독은 용서와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의 시선은 간병인 필과 경찰관 짐으로 대변된다. 필은 얼과 프랭크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한다. 얼과 린다 그리고 프랭크까지 모두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는 인물이다.


필이 사랑의 캐릭터라면 용서의 캐릭터는 짐이다. 짐은 클라우디아의 소음 신고를 문제 삼지 않았고, 도니의 범행을 알게 되지만 연행해 가지 않는다. 그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사랑을 얻는다.

 

얼의 몸에 생긴 암은 그동안 그가 자신의 몸에 축적해 온 것이며, 그의 후회 역시 마찬가지다. 암세포들의 화면을 앞세워 후회를 말하는 얼의 음성을 통해 그의 몸을 죽어가게 하는 것은 암과 후회임을 알 수 있다.

 

린다는 물질적 욕망을 품고 얼과 결혼했지만, 마침내 사랑을 깨닫는다. 하지만 얼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는 곧 죽을 것이다. 자신의 욕망에서 벗어나 얼에 대한 마음을 깨달은 린다는 자신이 저질렀던 배신에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을 단죄하는 마음으로 약을 먹어 자살을 시도한다. 린다의 후회와 용서를 구하는 마음은 개구리가 내린 뒤에도 그를 살려 낸다.

 

한바탕 개구리가 내린 뒤 어떤 인물들은 죽음을 맞이하고, 어떤 이들은 새로운 만남과 힘을 얻는다. 어떤 결말을 예상하고 기대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 개구리가 왜 내리는지, 어디서 왔는지조차 모른다. 중요한 건 결국 그 일이 일어났다는 거다. 그렇기에 지금이 바로 후회하고, 용서를 구하고, 사랑할 때이다.

 

*

 

세상에는 내가 믿기 어려운 신기한 일들이 항상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 언제나 이유를 붙이고 이야기를 만들어 이해하려고 한다. 수많은 신화 역시 그렇게 탄생했다. 천둥과 벼락이 치는 이유가 하늘이 노해서가 아니듯 인간이 갖다 붙인 이유가 항상 들어맞지는 않는다. 인간은 모든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에 단순한 우연은 없다.



MV5BMjhhYjcwYzktNzhiNC00OWVmLThiNjEtNTc3YTVjNzhkMTg1XkEyXkFqcGdeQXVyNDAxOTExNTM@._V1_.jpg

 


이상한 일은 언제든 일어난다.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누구를 사랑할지, 용서할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ART INSIGHT_김채영.jpg


 

[김채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