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흐릿함'을 그린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 [시각예술]

글 입력 2020.05.1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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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와 사진의 경계는 도대체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사진은 반드시 선명해야 할까? 반대로, 회화는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생생함만을 담아내야 할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기술문명의 발달과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 각기 다를 것이다.

 

예술가들은 오래전부터 장르의 본질적인 개념과 역할에 대해 주목하고 연구하며 나름의 답을 규정해왔다. 그렇게 규정되어 나타난 게 반드시 정답이라고 확답할 순 없지만, 그러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예술의 정체성에 접근할 수 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회화작가 중 굉장히 중요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그가 바로 앞서 말한 장르의 본질성을 끊임없이 추적하고 추구해온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동시대 미술의 거장이며, 현대회화의 가능성이나 회화의 개념들을 철학적인 방법으로 성찰하고 그러한 고민을 작품의 실체로써 표현해왔다.

 

리히터의 작품을 보면 꽤 난해하고 모호한 감정이 드는 건 분명할 듯하다. 사실, 그러한 감정은 장르를 불문하고 여느 동시대 미술에서나 한 번쯤은 느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림을 통해 말하고자 한, 즉 깊은 통찰의 흔적이 담긴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을 때 비로소 리히터의 회화사적인 위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동시대 미술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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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독일 드레스덴에서 출생한 독일의 대표작가이자, 1960년대 이후 세계 현대미술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화가이다. 그는 1960년대 이래 포토 리얼리즘 작업을 추진해나가면서, 회화의 본질을 깊이 탐구했다. 그러한 탐구 정신이 깃든 독특한 작품은 예술계에 대단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결과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성을 입증해 보였다.

 

그가 살았던 당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활발하던 때였고, 그러한 이유로 독일 역시 혼란스러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런데도 리히터는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직전, 서독으로 이주하여 회화 공부를 계속해나갔다. 그곳에서 그는 플럭서스 운동 및 팝아트의 영향을 받았고, 소비문화에 대한 저항으로 '자본주의 사실주의'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에서 선풍을 일으킨 팝아트를 변형시켜 독일적으로 해석한 산물이었고, 이를 계기로 그는 독일의 팝아티스트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리히터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계속 발전시켜 추상 작업과 사진을 활용한 회화작업 등 다양한 활동을 꾸준하게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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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진을 회화로 재해석하며 본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간 리히터는, 1960년대 중반부터 유화를 사용해 사진과 같은 사실적인 이미지를 제작했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바로 '흐릿함'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흐릿함의 원천이 된 매체는 무엇이었을까?

 

리히터는 회화작업을 할 때, 사진을 참고하여 보고 그렸다. 그는 사진 이미지를 보고 그리기 위해 본인의 사진을 포함했을 뿐만 아니라 잡지, 신문, 책 등에서 여러 이미지를 스크랩하기도 했다. 그러한 작업방식에 있어 그는 사진 매체의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선명한 리얼리티를 배제한 채, 흐릿하게 화면을 뭉개버리거나 흘려버리는 스타일을 창안해냈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유일무이한 새로운 회화 양식을 선보인 것이다.


 

 

흐릿한 사진? 흐릿한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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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Portraits series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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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valéry, 1971-72 from 48 Portraits series oil on canvas


 

위 작품은 <48개의 초상화>라는 제목을 가진 리히터의 회화 작업이다. 이는 1972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독일 국가관에 전시되면서 대중에게 공개되었는데, 역사상 존재했던 48명의 인사들을 나타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폴 발레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오스카 와일드 등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 사이에 활동한 남성 위인들이다.

 

이처럼 초상화에 나타난 48명의 사람들은, 리히터가 20세기 인명사전에서 선발해 그린 인물들이다. 그중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의 초상화를 대표적으로 꼽아 리히터의 전반적인 회화적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작가가 사진을 마주하면서 관찰한 것을 그대로 유화에 옮겼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떠한 특징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작품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작품은 흑백으로 나타나고, 사진의 선명함도 딱히 드러나지 않은 모습이다. 마치 흐릿한 흑백사진을 확대해놓은 듯한 것이다. 작품을 처음 마주하게 되면, 희미하고 흐릿한 느낌이 강해서 사진이라 단정 짓기에도 애매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 같다고 하기에는 꽤 사실적인 표현이 담겨있다.

 

'회화 작가'라는 리히터의 명칭에 맞게, 이 작품 역시 작가가 직접 그린 것이다. 사실적이지만 선명함이 나타나지 않는 그의 그림, 그러한 형식적인 측면만 바라본 채 단순하게 작가의 역량 부족이라 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48개의 초상화>는 바로 그러한 의문점들을 단순명쾌하게 풀어낸다. 이렇게 희미하고 흐릿하게 그린 건, 그가 참고한 '인명사전'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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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인명 사진에 담긴 그들의 사진은 꽤 오래전 촬영한 사진인데다가, 사전에 실려있었으니 큰 사이즈로 인쇄돼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이미지는 선명하게 나타나기 힘들었을 거고, 리히터는 그러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옮긴 것이다. 본래의 사진 크기도 작았을뿐더러 희미했기에, 그가 최선을 다해 극사실적으로 그려낸 결과물 또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원래 사진과 비교했을 때, 위 작품은 극도로 사실적인 차원에서 표현된 것이다.

 

짐작하건대, 화가의 능력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이것보다도 정교하고 선명하게 <48개의 초상화>를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리히터는 본인의 회화적 관심사와 결부된 작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바가 분명히 있었기에, 이러한 그림을 그려낸 것이다.

 

그는 '사실성'의 정의에 대해 반문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진과 회화에 대한 개념을 생각해보았을 때, 사진은 인간의 눈이 포착하는 것 이상의 기계적인 정확성을 보여주면서 보다 현실적이고 생생하게 드러내 주는 분야라 생각한다. 반면, 회화에 있어서는 화가의 주관적인 표현방식이나 의도가 개입될 여지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변혁이 있기 쉬운 장르라 생각한다.

 

하지만 리히터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보편적인 개념이 뒤바뀌어 나타난다. 오히려 사진이 회화보다 덜 선명하고, 회화가 사진의 한계성을 보완해 최대한의 하이퍼 리얼함을 담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사진과 회화의 본질적인 개념은 사실상 뒤바꾸어질 수 있다는 걸 리히터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각하게 하고자 했다. 예술에 대한 '일반화의 오류'를 바로잡고자 한 것이다.


 

 

영화 '작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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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가 미상>의 한 장면

 


2018년 개봉한 <작가 미상>은 베니스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과 독일분단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며 그중에서도 쿠르트라는 예술가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은 무얼 말하려는지 아마 짐작했을 듯하다. 그렇다. <작가 미상>의 주인공 쿠르트는 바로 본 오피니언에서 다루고 있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이다.

 

영화는 화가가 실제 겪었던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독일 상황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삶에서 드러난 사랑, 전쟁, 꿈과 희망의 스토리를 모두 담았다. 전쟁의 폐허 속 온 나라가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한 공포에 휩싸였던 상황 속 사회주의 이념의 동독에서 미술학도가 된 리히터,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자율성을 잃은 채 사회주의 리얼리즘 화풍의 그림만을 그리며 이념 선전을 위한 프로파간다로 전락해버린 그의 삶을 찬찬히 추적해나간다.

 

그러나 전쟁의 혹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거나 본인의 꿈을 이루어나가는 쿠르트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리히터의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을 투영해볼 수 있다. 이처럼 사회주의 리얼리즘 안에 갇혀 억압받는 예술을 해왔던 주인공 쿠르트는, 마침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예술세계를 표현하기 시작한다.

 

<작가 미상>에서 전반적으로 드러났던 쿠르트의 모습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예술성과 인간적인 면모를 모두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 모습은 동시대 예술가의 거장으로 불리는 데에 있어 한 치의 의심 또는 여지도 없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에 맞는 충분한 자질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눈길 돌리지 마, 쿠르트.

진실한 건 모두 아름다워."


- <작가 미상> 엘리자베스 메이의 대사 중

 

 

 

흐릿함은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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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강요하는 그림에서 벗어나, 보다 가치 있고 본인을 위한 회화 양식을 구축해간 리히터의 발자취는 그 자체로 빛난다. 그는 현대 실험미술의 열풍 속에서도 자신만의 감각과 방식을 통해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기존에 얽매이지 않는 작품을 제작해나갔다. 리히터는 현재에도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며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이 시대의 본받을만한 예술가다. 한편, 리히터는 예술가의 지위에서 더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삶에 관한 메시지를 건네준다. 그가 걸어온 예술적 발자취를 볼 때, 우리는 마냥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개발해나가는 것에 대한 가치를 다시금 깨닫고 실감하게 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적 경향은 흐릿한 이미지로 다가왔지만, 그가 선사해준 삶의 가치는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고 확실한 형태로 드러난다. 인생이 지치고 힘들 때, 그의 작품을 마주해보는 건 어떨까? 흐릿함 속에서 우리는 보다 더 선명한 메시지를 얻게 될 것이다.

 

 

"나는 어떤 목표도, 어떤 체계도, 어떤 경향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강령도, 어떤 양식도, 어떤 방향도 갖고 있지 않다. 나는 무규정적인 것을, 무제약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끝없는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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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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