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오.오! 빠져드는 도트 만화의 세계 [시각예술]

글 입력 2020.04.3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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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로’라는 단어가 우리의 머릿속의 사전에 자연스럽게 등재된 지도 오래다. 많은 사람이 편리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대신 서울의 중고 LP 매장 이곳저곳으로 발품을 팔아 바이닐을 구매하고, 무선 이어폰 대신 헤드폰을 사용해 좋아하는 음악을 즐긴다. TV 앞에서 본방 사수를 하는 대신 종영된 옛날 예능과 시트콤의 클립 영상을 시청하며 웃는다.


레트로를 각색한 ‘뉴트로’에서 이제는 진정성을 찾지 못한 채 그 너머의 ‘찐트로’를 추구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양보하지 못하는 하나가 있다. 바로 카메라 화소다. 물론 필름 카메라에 매료된 사람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 이유는 적은 화소가 아니라, 빛을 포착하는 필름 카메라 특유의 방식에 있다. 2000년대 중후반에 사용되던 디지털 메라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게 그 증거다. 모 스마트폰의 새 시리즈가 출시되었는데 글쎄 카메라 렌즈가 1억 화소에 달한다는 광고가 줄기차게 나오는 요즘이다.


카메라의 화소가 얼마만큼 발전해야 사람들의 묘사 욕구를 충족시킬까 생각하던 중 기꺼이 도트를 도구로 삼은 작가를 발견했다. ooo, 정세원 작가다.

  

 

 

@ooo


 

조소과를 졸업한 뒤, 일러스트 포트폴리오를 쌓고자 하루에 하나라도 그림을 그려서 올리는 계정을 만든 게 시작이었다. 인스타 플랫폼에 맞는 정방형 구조 안에 차곡차곡 들어찬 4컷 만화가 트위터를 포함한 여타 SNS 계정에서 회자되고,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독보적인 그의 만화는 입소문을 탔다. 수많은 인스타 피드를 무의식적으로 넘기다가도 눈길을 끄는 매력적인 4컷 만화의 포인트를 두 가지 꼽아보자면 도트와 허를 찌르는 웃음 포인트였다.

 

전통적인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를 벗어난 만화의 스토리는 주로 말장난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만화이기에 가능한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말장난을 더 재미있게 연출한다. 현실에서는 피식 웃으며 짧게 끝나고 쉽게 잊어버리는 말장난을, 일상에서보다 비교적 오래 곱씹다 보면 떠오르고 기억되는 웃음의 형태는 달라진다.


작가의 계정에 업로드된 만화를 단숨에 몽땅 읽어버렸을 만큼 흡인력을 지니는 이유는 일상의 웃음과 만화적 웃음 사이의 경계를 묘하게 모두 아우르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독자들과 같은 마음을 공유했던 것인지 2016년부터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계정을 통해 꾸준히 연재된 만화들과 미공개 만화를 모아 출판한 『무슨 만화』(유어마인드, 2018)는 작년 예스24의 교양만화/비평/작법 베스트셀러에서 1위에 오른 적이 있으며 현재는 7쇄를 찍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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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oo

 

 

도트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어딘가 정겹고, 길이가 짧은 터라 한 번 읽으면 다시는 볼 일 없는 일회용 만화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픽셀로만 이루어진 추억의 윈도우 98을 보여주던 브라운관 모니터의 무게만큼 웃음 뒤 단단한 의문을 던지는 서늘한 만화 역시 존재한다. 이것이 도트만큼이나 ooo 만화를 자꾸 찾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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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oo

 


이 서늘함을 보다 오래 맛볼 수 있는 것이 네이버에 연재된 인디 웹툰 단편집 <한국만화 또 다른 시선>의 첫 번째 작품, '지구 멸망의 날'이다. 독립만화계를 벗어난 거대 플랫폼에서, 처음으로 긴 호흡의 만화를 만날 수 있었다.

 

 

 

한국만화 또 다른 시선, '지구 멸망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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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oo

 

 

한 인터뷰에서 평소 작업과 비교해 구구절절 설명하는 느낌이라 적성과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무언가를 지운다는(무료이니 만화를 직접 보길 바란다) 일종의 수미상관 스토리 안에서 많은 독자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본 듯하다.


단순히 레트로 웹툰이 신선하다는 반응과 '진짜 작가 이름이 ooo냐'는 단출한 물음에서부터 “환경 보호의 높은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체제라는 전통적 환상 아래 스스로 해결점을 토론과 토의를 통해 해결하는 과정에 있다고 믿고 있지만 정작 합의점도 찾지 못하는 소위 '달인'과 무시 받는 전문가, 그리고 끝내 해결점은 선의의 독재자의 강력한 권한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개돼지성”(출처: ‘지구 멸망의 날’ 베스트 댓글)이라는 일갈까지.

 

작가의 본명이 ‘세원’이기 때문에 지어진 ooo라는 이름이었지만 우리는 그 동그란 세 공간을 가벼운 호기심, 말장난과 실소로 가벼이 채울 수도 있었고, 묵직한 씁쓸함과 문제의식을 담을 수도 있었다. 사람에 따라 ooo는 '이응 이응 이응'으로 읽히거나, '오오오' 혹은 '쓰리 오', '영영영' 심지어는 '땡땡땡'으로 읽히듯이. 이처럼 익명으로 가려진 ooo의 만화 세계는 ‘경(輕)’과 ‘중(重)’을 넘나드는 유연한 스펙트럼 속에 있다. 

 

*


4년 전 출시된 스마트폰 카메라에도 가끔 깜짝 놀라는 나로서는 변화무쌍하게 발전하는 기술의 세계에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나는 그대로인 것만 같은데 세상은 참을성 없이 흘러가니 말이다.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떠올리며 서글퍼지는 동안에도 시간은 부지런히 가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아날로그 문화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옛것을 소비하면서 울적한 기분에만 사로잡히지만은 않다. 그것을 소비하며 과거를 반추하고 새로운 웃음을 포착하는 나는 과거에서 조금씩 변형된 생각과 취향을 갖는 ‘현재의 나’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가 다시 소비하는 아날로그 문화는 진보로부터의 도태,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속간편’ 대신 여유를 선택할 수 있는 우리의 자유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날로 작아지는 화소 속에서 사각형이 훤히 보이는 도트를 이용한 다양한 예술 작품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CCTV와 블랙박스의 시대에서 다회용 재미와 유연함을 포착하고 싶은 당신에게 도트의 세계에 빠져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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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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