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짝사랑 연대기] 1장 : 짝사랑의 시작 그리고 길었던 입덕 부정기

짝사랑은 어릴 때부터했지만 입덕 부정기는 길었다.
글 입력 2020.04.2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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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의 동화적 상상은 현실이 된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유치원 원장님을 하셨다. 원장님의 딸인 나는 자연스럽게 밤늦게까지 유치원에 남아서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친구들은 다 하원 했고, 선생님들도 다 퇴근한 텅 빈 유치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유치원엔 아주 큰 책장에 온갖 종류의 이야기들이 담긴 책들이 빽빽이 꽂혀있었다. 나는 동화책들을 한 권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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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의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책을 덮은 후에도 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책에서 다루지 않는 그 뒤의 여정을 상상으로 이어나가는 걸 즐겼다. 그래서 어릴 때의 나에게 이야기를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읽은 이야기에 내가 들어간다면? 하고 상상만 하면 되는 일이었기에 그건 그저 하나의 놀이가 되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걸 놀이처럼 즐겼다는 증거 중 하나가 바로 그림이다. 어릴 때의 나는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왕자와 공주가 뽀뽀를 하는 그림을 유독 많이 그렸다. 우리 아빠는 그걸 보면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얘는 뭘 보길래, 이런 그림만 그려? 이런 거 말고 어떤 풍경을 그려 봐봐.’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나는 아빠의 말씀대로 어떤 완성된 일러스트(풍경화 같은)을 그린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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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주와 왕자님이 결혼하기도 하고, 모험도 떠나기도 하는 이야기를 매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림은 그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내 그림에 공주와 왕자가 뽀뽀를 하는 장면이 많았던 이유가 있었다. 일종의 이야기 삽화로서, 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 장면이었으니 꼭 그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다. 난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글을 쓰던 기원을 더듬다 보니 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마저도 결국은 이야기를 만드는 걸 위해서라는 걸 이제 깨달았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나에게 떼놓을 수 없는 놀잇거리였다. 엄마께서 동생을 임신하셨을 때, 나는 산부인과에서 오래 대기해야 할 때가 많았다. 어린 나는 그럴 때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 그 장면을 표현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들께 자랑하면,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정말 놀라워 해주시고 칭찬해주셨던 게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와 꼬마 작가님이네!”

“작가해야겠네!”

 

십 년이 지나도 기억이 날 정도로 친절했던 간호사 선생님께 지금도 감사드린다. 아마 그때의 내가 정말 큰 자부심을 느낀 경험이었을 것이다. 저 말은 아이의 작은 가슴에 쿡, 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누가 꿈을 물어보면 작가! 라고 해맑게 웃으며 큰 목소리로 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꿈은 내가 진로를 본격적으로 정해야 할 나이가 된 중학생이 되어서 변하기 시작했다.

 

 

 

작가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니?


 

중학생이 되고 아빠는 나에게 진로를 진지하게 묻기 시작하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늘 대답하던 대로 작가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아빠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빠는 나에게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길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아주 오랜 시간 날 붙들고 토로하셨다.


아빠의 말씀대로라면 작가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일 정도로 유식하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쓰면 백과사전의 두께만큼은 나와야 하는 사람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말을 듣고 지레 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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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말을 듣고 그때의 나는

작가가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깝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저렇게 될 자신이 없었던 나는 작가라는 꿈을 그때 포기하게 되었다. 그 뒤로 한동안 사람들이 꿈이 뭐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아빠께서 그 어렸던 애를 붙들고 그렇게까지-물론 그 말씀이 토씨 하나 틀린 게 없다는 데엔 동의한다- 말씀하셔야했나 싶다.

 

하지만 또 마찬가지로 아빠가 왜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말씀하셨는지는 지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작가로 돈을 벌기는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 아빠는 아마 딸의 장래가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작가라는 꿈을 버리고 나서도 문학소녀였다. 문학책을 읽는 걸 좋아했고 국어 교과서를 받자마자 거기에 수록된 소설을 싹 다 읽지 않으면 못 배겼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는 국어 선생님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글을 선물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어서


 

그런데 내가 글을 다시 쓰게 되는 계기는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일어났다. 나는 열아홉 살이던 해에 단편 소설을 네 편을 쓰게 되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소중한 인연들이라 살 수 있는 물건을 주기보다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정성스러운 것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낸 것은 바로 글이었다. 글은 나의 마음을 가장 진실하게 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첫 번째로 단편 소설을 써서 선물을 주게 된 계기는 영어 선생님이었다. 이 영어 선생님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1학기까지만 담임선생님을 맡으시고 중간에 영국으로 유학을 가신 선생님이었다. 1학기만 담임선생님을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아이들이 2학기 내내 선생님을 열렬히 그리워할 정도로 좋은 분이셨다.


나는 그분이 주신, 잊을 수 없는 사랑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선생님께서 복직하셨다. 나는 그 기념으로 내가 그동안 선생님을 얼마나 그리워했고, 내가 받은 사랑이 어떤 것인지 메시지를 담아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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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정성스럽고 좋은 걸로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게 글이었다.

 


선생님이 된 미래의 내가 선생님을 찾아뵌다는 내용이었다. 중간중간 교차 장면으로 고등학생 때의 과거(작가인 나에게는 현재)에 선생님께 받은 사랑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썼다. 그 소설을 읽으시고 선생님은 나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시며 당신이 우셨다고 고백하셨다. 내가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께서 우실 정도로 내 마음을 전달했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무엇보다 이때 경험으로 내가 소설을 어느 정도는 쓴다는 자신감을 스스로 갖게 되었다. 이 자신감이 얼마나 중요했냐면, 그해에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소설을 써서 선물하는 것을 과감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썼던 소설은 내가 짝사랑하던 선생님께 마음을 돌려서 표현하기 위해 드렸다. (이 이야기는 지금도 생각하면 이불을 뻥뻥 찰 정도로 정말 너무 부끄럽기 때문에 더 쓰지는 않겠다.) 세 번째 소설은 내가 응원하고 싶은 친구를 위해서 썼다. 그 친구는 실연을 당해 너무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하지 않아도 될 자책을 했고, 큰 슬픔에 빠져 있었다. 그걸 보고 나는 그 친구를 복돋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크게 상심해 있는 친구에게 내 위로는 그저 공기 중에 흩어지는 말처럼 공허하고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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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겨울에 실연의 아픔을 겪게 되고 봄이 온 줄 모를 때까지 집 안에 갇혀 있는 여자의 이야기를 썼다. 결말은 그 주인공이 창을 열어 봄이 온 것을 깨닫고 봄을 만끽하다가 새로운 인연도 맺게 된다는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였다. 그 친구에게 지금 마음에 닥친 겨울이 끝이 아니며 언젠간 봄이 온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 친구는 생일 선물로 그 소설을 받고선 편지를 써왔다. 그 편지에 쓰인 말 중에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친구는 내 소설이 아마 미래까지 포함한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선물일 거라고 했다.


 

마지막 네 번째 소설은 특수교사가 되는 게 꿈인 친구의 것이었다. 난 평상시에 그 친구를 대단하다고 여기고, 진정으로 아꼈다. 그 친구의 꿈을 응원해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 친구는 분명 좋은 선생님이 될 거라는 확신이 나에게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가 만나는 학생들은 분명 그 친구로부터 위로와 응원을 받으리라 생각했다.


이때의 나는 국어교육학과의 수시는 다 떨어진 상태였다. 정시로 교육학과를 넣기엔 어려운 성적이어서, 나는 국어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은 포기한 상태였다. 친구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학과에 당당히 합격한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내 꿈을 친구가 이루어 줄 것이라는 그런 희망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미래의 선생님이 된 그 친구가 한 학생과 교감하는 내용의 소설을 선물했다.

 

이렇게 열아홉 살 내내 네 편의 소설을 완성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면서 나는 알았던 것 같다. 내가 글을 쓰는 걸 정말 좋아한다는 걸 말이다. 물론 하나의 단편소설을 완성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막상 시작하면 그 고통을 뛰어넘어 즐기는 나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었다.


 

 

주변사람들이 심어준 글에 대한 확신


 

그래서 나는 정시 성적에 맞춰, 넣어야 하는 과를 선택해야 했을 때 ‘문예창작학과’라는 단어를 보고 마음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옆에서 상담해주시는 선생님이 ‘너 자신 있겠니?’라고 물으셨던 게 지금도 선하다. 그런데 나는 그 물음에 그리 오래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끼는 사람들에게 네 편의 소설을 써주고, 그들의 반응을 보면서 나는 내 글에 대한 어떤 믿음을 지니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문예창작과에 합격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내가 정말 존경했던 국어 선생님을 찾아갔다. 입시 결과를 묻는 그분께 내가 입학한 대학과 학과를 말하자 선생님은 놀란 얼굴을 하셨다. 그분은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뒤지시더니 책 한 권을 뽑으셨다. 선생님은 당신이 정말 좋게 읽고 있는 시의 시인이 그 학교의 교수라고 하셨다. 국어 선생님이 나를 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국어 선생님이 꿈이었던 건 알고 있었지만, 작가도 너에게 정말 잘 어울려. 거기 가서 넌 분명 잘할 거야.


 

그 말은 그 당시 불안에 떨고 있던 나의 마음을 녹이는 아주 따뜻한 말이었다. 나에 대한 확신을 가져주시는 선생님의 말씀이 나에게 용기가 안 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마음에 품고 입학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가가 되는 것이 지금 나의 꿈이다.


 

 

글을 통해 찾은, 글에 대한 짝사랑의 시작


 

<글짝사랑 연대기>를 쓰기로 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주제는, 내가 글쓰기를 사랑했던 건 언제부터였나를 찾는 것이었다. 문예창작과에 입학하고 나서? 열아홉 살에 네 편의 소설을 쓰면서? 이렇게 생각의 꼬리를 물고 내려가다 보니 그 끝엔 크레파스를 쥐고 이야기를 그려내는 어린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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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그림을 들고 이 그림에 담긴 이야기가 뭔지 어른들에게 설명해주며, 스스로 뿌듯해하던 어린 내가. 어른들이 꿈을 묻는 나이쯤이 되었을 때, 망설임 없이 작가라고 답하던 어린 내가. 나는 이 긴 짝사랑의 시작을 이번에도 글을 씀으로써,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긴 입덕 부정기(?)를 거쳐 문예창작과에 들어간 나는 글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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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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