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연함'이라는 폭력 -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글 입력 2020.02.1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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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쉬운 물음표



지난 프리뷰에 보도자료를 보면서 생긴 질문을 메모해두었다. 연극의 인권의식의 한계에 대한 경계였다. 작품 취지가 취지이니만큼 어려운 길을 가더라도 그 부분의 숭고함을 잃지 않았으면 했다. 메모해 둔 질문은 다음과 같다.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5).jpg



1) 이 연극은 여성용 레오타드를 준호가 입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가? 그러니까 남성이라고 사회적으로 판단되어지는 사람이 여성용 레오타드를 입는 것을 비정상으로 보는가? 만약 그렇다면 '선긋기'에 대한 이 연극과 함축된 비정상성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2) 따돌림을 당하는 희주가 준호의 허락을 받지 않고 사진을 올린 것에 대해 연극은 어떻게 생각하고 다룰 것인가?


3) 준호는 자신의 최대 약점이라고 볼 수 있는 '레오타드 입기'를 희주에 의해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준호는 이에 대해 여러가지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될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 때문에 희주와 함께 체육 수행평가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상황과 감정을 연극은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연극은 이 질문에 대해 아쉬운 물음표를 남긴다. 마치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듯 필요한 질문은 없고 당연하다는 듯이 극을 진행시켜나간다. 그리고 대부분 그래왔듯이, 당연함은 폭력이 된다.

 


 

2. 도구적 이상 (異常) - 1)에 대한 답변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1).jpg

 


갈등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일상의 균열의 원인이 필요하다. 여성용 레오타드에 대한 준호의 취미는 독특한 일상의 균열이다. 조금 다루기 힘든 소재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수많은 매체에서 '여성의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는 남성'이라는 현상에 특정한 프레임을 이미 씌워두었기 때문이다.

 

'호모'는 프레임의 대표주자다. 이 프레임은 굉장히 편견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일단 소수자를 타자가 이름붙여 장난스럽게 부르는 것은 모욕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모든 남성 동성애자가 여성의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모든 남자가 여성의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여성'이라는 젠더의 것으로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 편견적 개념을 전복하지 않은 채 연극은 편안하게 진행된다. 극 중 준호는 대부분의 정상성 속에 들어간다. 겉으로 봤을 때에 준호는 여자친구가 있는 이성애자 남성이고 질병이나 장애가 없으며 집안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로 나온다. 극은 그에게 레오타드에 대한 선호를 안겨줌으로써 이상성을 취득하게 한다.

 

이에 대한 극중 묘사는 폭력적이다. 극 속 사람들은 레오타드에 대한 선호를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극 끝까지 인식한다. '내가 봐도 그건 좀.. '이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극 속 사람들은 끝까지 레오타드에 대해 비선호를 가지고 있다. 중간에 준호가 스스로 왜 레오타드를 선호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장면이 있다. 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희주의 태도는 결국 연극의 태도가 된다.


희주의 태도는 뜨뜻미지근하다. 이는 레오타드에 대한 선호를 끝까지 '이상한 것'이라고 보도록 둔다. 레오타드에 대한 선호라는 독특한 일상의 균열은 기존 도덕의 극복이 되지 못한 채 그저 서사의 도구로만 쓰인다. 프레임에 대한 고민은 편안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준호가 드랙퀸의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전학'이라는 비참하면서도 순응적인 결말보다는 자퇴와 드랙퀸의 결말이었으면 했다.

 


 

3. 약함과 선함은 같지 않다. - 2)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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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주는 따돌림을 당한다. 희주는 여성이다. 희주는 가난하다. 희주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힘든 상황이다. 준호는 그 '반대'다. 그렇다고 해서 희주가 허락을 받지 않고 준호의 사진을 학교 게시판에 올려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이 행동은 희주의 원죄가 된다. 약자는 사회적으로 타자를 용서하기는 쉽지만 타자로부터 용서받기는 어렵다. 그래서 무해함을 어필하기 위해 약자들은 다른 약자의 특징을 따라하곤 한다. 예를 들어 여성의 유아기적 퇴행이 있다. 무해함은 선과 비슷해보이고 약자가 취득하기 쉽고 취득하면 편한 속성이다.


희주라는 캐릭터는 무해함을 취득하기 위해 여러 약자성을 덕지덕지 붙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원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편한 길보다는 다른 길을 갔어야 했다. 약자성이 정당성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4. 스톡홀름 증후군 - 3)에 대한 답변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2).jpg

 

 

오래 같이 있으면 정이 든다. 이 때 주의해야 할 점은 관계의 권력이 누구에게, 어떻게 있는가이다. 희주는 나쁜 방법으로 준호와의 관계에서 권력을 잡는다. 극 중 체육선생님은 같은 목적을 향해 함께 나아가다 보면 서로 다 이해하고 친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른으로서 가장 무책임한 말 중 하나이다. 서로 호의를 배풀면서 살면 좋겠지만, 먼저 뒷통수를 쳐서 권력을 잡은 상대방에게 호의를 배풀라 함은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희주와 준호, 이 둘은 친해진다. 어리니까 다 그런 것인가? 이 일들은 준호에게 트라우마가 될 것이다.


마치 어린시절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을 괴롭혔을 때 남자아이들은 그 것이 학창시절의 추억이 되었지만 여자아이들은 굴복과 순응에 대한 학습의 기억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시절, 우리가 경험했던 '네가 좋아서 그래'의 추억, 스톡홀름 증후군의 추억이다. 희주의 매달리기 기록에 대한 준호의 마지막 응원이 희망차지 않고 씁쓸하게 들릴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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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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