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엄마의 취미 [사람]

글 입력 2020.02.1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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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햄스터>는 엄마의 카카오톡 저장명이다. 나는 아르바이트 도중 엄마의 메세지를 받고 ‘오늘도..’라는 생각을 했다. TV조선의 예능 <미스터 트롯>이 방영을 시작한 저번 달부터, 나는 근 한 달간 저녁마다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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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귀가한 집 앞 현관 서부터 김호중의 경연 곡이 문틈 새로 흘러나왔다. 김호중은 미스터 트롯에 출연 중인 참가자 중 한 명으로, 우리 엄마의 원픽이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가니 현관에는 평소 나를 마중 나오는 강아지뿐만 아니라 엄마도 같이 있었다. 방에서 가방과 외투를 벗어두고 욕실로 가다가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스트리밍 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재촉이었다.

 

스트리밍은 음성 파일이나 동영상 파일 등을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기법을 의미한다. 동시에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곡을 음원 차트에 올리기 위한 응원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특정 노래를 검색해서 듣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차트 TOP 100>을 듣기 때문에 99위라도 차트에 오른다면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도 좋아하는 가수의 곡을 사람들에게 홍보할 수 있다.


스트리밍이라니! 지금은 아저씨가 되어버린 그 시절 오빠들의 노래를 무한 반복 재생하던 옛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엄마 옆에 앉아 멜론 회원가입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엄마는 침대 머리맡에 있던 수첩을 펼쳐서 새로 설정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꼼꼼히 메모했다. 회원가입을 마치니 엄마는 멜론에서 임의로 정해준 닉네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응원의 마음이 듬뿍 담긴 닉네임으로 바꾸었다. 프로필 사진 또한 김호중의 사진을 걸었다. 엄마는 항상 뭘로 바꾸어야 좋은 거냐고 나에게 물어보는데, 사실 너무 옛날의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나는 엄마 하고 싶은 것으로 하라고 대답하곤 한다. 10여 년 전쯤의 나도 누가 봐도 특정 가수의 팬으로 추측되는 닉네임과 프로필 사진을 사용 했나?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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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권 결제를 마치고 나는 내 방에 돌아왔다. 엄마는 1분밖에 못 듣던 노래를 이제는 다 들을 수 있다며 좋아했다. 예선에서 김호중이 진(眞)이 된 이후부터 엄마는 그가 최종 우승을 할 수 있도록 투표를 하자며 가족들에게 투표할 것을 독려했다. 그리고 김호중 팬카페에 가입해야 한다고 나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리하여 엄마의 휴대폰 메인 화면에는 ‘김호중 덕질’을 위한 어플이 사용하기 쉽게 나열되어 있다. 매주 투표를 위한 카카오스토리와 다음, 카카오톡이 맨 윗줄에 나란히 있고, 공식 채널에 올라온 김호중 영상의 조회 수를 올려줘야 한다며 유튜브와 네이버, TV조선 어플도 모아 두었다. 또한 실시간으로 김호중 관련 소식을 접하기 위해 네이버 카페와 밴드도 화면 구석에 보기 좋게 옮겨 두었다. 물론 몇 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나와 고군분투하며 설치한 것들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것저것 해달라고 재촉하는 엄마가 조금 귀찮았다. 투표할 수 있는 방법을 한 가지로 통일해 놓지 성가시게 왜 여러 개 만들어 놨는지 미스터 트롯 제작진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며칠 전 엄마가 지나가듯 한 말을 들은 이후로 생각을 고쳤다.

 

‘요즘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 사는 게 재미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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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김호중이 나오지 않은 회차가 있었다. 밤 10시에 시작해서 거진 새벽 1시까지 하는 미스터 트롯을 엄마는 순간순간 비춰주는 김호중의 얼굴을 놓칠까 채널 한번 돌리지 않고 TV 앞에 앉아 있었다. 혜정아 나와봐 김호중 무대한다!라는 엄마의 외침에 호응하기 위해 나는 거실로 나갔다. 전주가 흘러나오고, 마이크를 고쳐 잡은 김호중이 첫 소절을 뗀 순간 방송이 끊겼다. 그리고 광고가 시작됐다. 나는 벽걸이 시계를 흘깃 봤다. 시곗바늘은 1시를 향해 돌고 있었다.

 

“엄마 김호중 무대 안 보여줄 거 같은데.”

“설마… 엄마 이거 때문에 여태 봤어.”

 

광고가 끝나고 다시 시작된 방송은 김호중의 무대가 아닌 다음 주 예고를 보여주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눈치가 보였다. 엄마는 예고가 끝나고 다음 프로그램 안내가 나올 때까지 자리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려있는 안방에서 엄마의 푸념이 들려왔다. 김호중의 무대 때문에 일주일을 겨우 버텼는데 어떻게 또 일주일을 기다리냐, TV조선 나쁘다는 내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에게 미스터 트롯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엄마의 푸념을 듣고 조금 놀랐다.

 

생각해보면 나는 평소 엄마가 무얼 하면서 여가를 보내는지 모른다. 2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 엄마는 매달 근무 시간이 달랐다. 쉬는 날도 규칙적이지 않기 때문에 어느 화요일은 아침에 출근해서 내가 일어났을 때는 집에 없었고, 어느 화요일은 저녁에 출근을 했다. 휴일은 보통 하루 종일 좋아하는 드라마를 돌려보기도, 아빠와 근교로 드라이브를 가기도 했다. 볼 드라마가 없거나, 아빠와 시간이 맞지 않는 날에는? 문득 엄마가 여태껏 심심한 시간을 보내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팬클럽의 일원으로서 가족 이외의 새로운 소속감을 느끼고 있고, 김호중이 팬카페에 자주 남기는 팬들을 향한 안부 글을 나에게 보여주며 엄마가 지지하는 가수의 됨됨이를 자랑하기도 한다. 이제는 능숙하게 사용하는 어플도 많아져서 혼자 척척 투표 인증 샷을 팬카페에 올린다.

 

 

송가인 씨를 좋아한 뒤로 일상이 달라졌을 법한데요.

 
종현 맞아요. 정말 즐거워요. 더욱 행복하게 살게 됐다고 해야 할까요.

 
바라기 저희 사무실 직원들이 어떻게 이런 열정을 가질 수 있느냐면서 부럽대요. 제가 가수님 얘기할 때 행복한 게 너무 보이나 봐요. 얼굴빛이 가수님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뉜대요.

 
산바람아 그전에는 핸드폰으로 보는 게 스포츠 위주였는데 지금은 가장 많은 하는 게 인스타그램, 네이버 카페, 트위터 이런 것들이에요. 젊어진 것 같아요.(웃음)

 
바라기 제 차에도 어게인 마크가 붙어 있어요. 교통 법규를 더 잘 지켜야 하는 이유예요. 저 때문에 우리 가수님을 욕보이게 하면 안 되잖아요. 마크를 붙인 순간부터 책임감이 커졌으니 좋은 점이죠.

 
- 송가인 팬덤 어게인(Again) 여성 조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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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여전히 2교대 근무를 한다. 하지만 두 달 새 엄마의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 밤을 새워서 피곤하다고 항상 누워있던 휴일은 사라지고 없다. 일단 항상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큰 차이점이 있다. 무슨 행동을 하든 항상 김호중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하도 자주 들어서 나도 이제 한 소절만 들어도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건지 알 정도이다. 딸에게 김호중 노래를 그만 들으라고 잔소리를 들었다는 다른 회원의 게시글을 나에게 읽어주며 엄마 같은 사람이 많은가 보다며 깔깔 웃기도 한다.

 

미스터 트롯 3차 방청 모집에 또 떨어졌다. 1차 때부터 꾸준히 신청 글을 올리고 있는데 번번이 떨어진다. 엄마는 3차 방청 신청 글을 작성하며 나와 김칫국을 마셨다. 녹화 장소가 인천이라는데 당첨되면 연차를 써야겠다… 엄마 길 헤맬 것 같으니 나도 따라가주겠다… 이 나이 먹고 무슨 방청이냐… 한살이라도 젊을 때 가서 봐야 한다….

 

당첨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엄마와 같이 신청 글을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취미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엄마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거움을 얻고 있다. 엄마의 일상에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준 이 취미를 나는 환영한다.

 

 



[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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