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너진 정신과 밀려오는 허망함 – 연극 '마터'

최후의 심판을 받았던 사람은 누구인가
글 입력 2020.02.10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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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롯 유다의 배신

 

 

소제목을 붙이기 전에 간단한 소회를 밝히긴 오랜만이다. 나는 연극에서 유다를 만났다. 벤야민은 하나님을 팔아 타인을 기만하며 협박하고, 교만이 가득한 상황에서 자기 자신과 타인 사이에 우열을 설정하려 든다. 그리고 그 소년을 소년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다가 소년이라는 이유로 추켜세우는 이중성을 보았다. 소년이 그토록 순결했더라면 기꺼이 심판을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소년은 심판을 받지 않았다. 심판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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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관의 개입


 

여러모로 버거운 작품이었다. 광기로 물든 인물들이 저마다의 집념을 분출했다. 그들의 사고방식에 이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더라도 자신의 세계관을 관철시키기 위한 표면적인 도구로 존재하기만 한다. 작품이 버거웠던 결정적인 원인은 인물 각자의 주관이 연극이 상영되는 내내 폭주해서다. 내가 옳다는, 스스로의 신념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잘못된 믿음이 불거지기에 후반부로 갈수록 대부분의 인물이 파멸한다. 그 중에서 가장 비참하게 파멸하는 사람은 게오르그다. 그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묻는다면 잔인한 광신도를 마음껏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한편 로트 선생은 분노를 느끼게 할 정도로 어처구니 없게 파멸한다. 정작 제명되어야 할 인간은 따로 있는 와중에 그녀에게 모든 화살이 돌려졌다. 그 와중에 벤야민의 광기 어린 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다. 그래서 더욱 가증스럽다.

 

이번 연극에서는 인물을 향한 가증스러움, 분노, 연민, 안타까움, 답답함 등 악몽을 꾸게 할 만한 감정을 단 두 시간 동안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대단한 일이다. 연극은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와중에 얄밉게도 플롯의 개연성과 극적 구도, 긴장성은 거의 완벽에 가깝게 설계되어 있어서 차마 작품성을 비난할 순 없게 만든다. 그래서 기획, 연출, 극작가가 더욱이 원망스러워진다. 서사적으로 짜임새 있는 플롯을 구현해버린 관계로 나는 연극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고 위에서 언급한 절망적인 감정을 폭탄 맞듯 직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굉장하다. 기승전결이 완벽하고 인물에게 부여된 캐릭터성,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들, 작은 무대와 화려하지 않은 소품을 공간적으로 적절하게 활용하는 디테일. 다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목도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왜 인물들은 스스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저렇게 한 발 나아가는지, 도대체 왜 로트가 자신의 발에 못을 박는 등의 가학적인 결말을 맞이해야만 하는지 등 온갖 괴로움에 빠지게 만들어서 문제였던 거다. 만약 기획진들이 이런 그로테스크한 감정선을 의도적으로 연출해낸 것이라면 정말 지독하면서도 뛰어난 사람들이라 인정하겠다.

 

벤야민은 하나님을 등에 지고 주변인을 배반한다. 선생 로트는 벤야민의 그릇된 사고방식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직접 성경을 공부하기까지 하며 벤야민을 포기하지 않는다. 연인인 체육 교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로트가 되려 종교쟁이가 되었다며 비난한다. 교장은 로트가 “여자다운”, “정상적인” 방법으로 교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길 바란다. 그에게 벤야민과 같은 문제아는 애초에 진지하게 고려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그저 아이의 몸부림을 적당히 받아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오르그는 벤야민에 복종하며, 벤야민을 사랑한다. 불구인 자신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손을 내밀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한다. 자랄 리가 없는 자신의 한 쪽 다리에 비과학적인 주문을 내뱉는 벤야민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실제로 자신의 다리가 변화하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광신도처럼 구는 벤야민이 제 아비처럼 제정신이 아니라며 비난하던 어머니는, 최후의 순간 자신의 아들이 궁지에 몰린 것처럼 보였을 때 그 누구보다도 벤야민의 종교 정신을 옹호한다. 종교를 믿는 우리 아이에게 내재하는 순결함, 결백함이 아이를 구원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말과 함께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어찌 보면 벤야민과 게오르그를 희롱하는 여학생이 가장 건전한 사고방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하는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저렇게들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밀어 붙이려는 모습을 보며 차라리 기존에 만연했던 편견과 조롱, 이에 다소 나쁜 성질이 가미되어 등장했던 여학생이 극 전체를 통틀어 가장 현실적인 인물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작품의 인물들은 나같이 이만한 광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마음껏 흔들어 놓고, 혼란스럽게 만들고, 최후에 이르러서는 치를 떨게 만든다.

 

그들은 모두 객관으로 위장한 주관을 휘두른다. 객관은 그들에게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 타인을 학대하고 자신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과정이 내내 반복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실제로 로트 선생을 기분 나쁜, 죄 많은 유대인이라 음해하며 게오르그를 통해 그녀를 죽일 생각이었던 벤야민의 모습이 가장 공포스러웠다. 나는 종교인에 대한 그릇된 일반화를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빗물질, 정신 분야 중에서 종교를 무기로 타인을 겁박하며 자신의 인격을 보호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려고 발버둥 치던 벤야민이 가증스러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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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후의 심판을 받았던 사람은 누구인가


 

벤야민은 기꺼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로 그는 성경을 손에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에 대한 존경과 무한한 애정과 헌신을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최후의 심판을 받았던 사람은 벤야민이 아닌 로트였다. 벤야민은 처음부터 심판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자신의 무고함과 순결함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냈다. 벤야민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추악한 유대인이라며 손가락질 했던 로트는 성경의 비과학성을 주장하며 벤야민의 사상을 올바른 과학과 객관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최후의 순간에 자신의 발에 못을 박으며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자신이 미친 게 아님을 증명하려고 한다. 자기 자신이 똑바로 서 있음을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주변인들은 그녀를 제자에게 성적인 학대를 시도하려고 한, 올바른 길로 인도하겠다는 핑계로 제자를 겁박하며 성적 노리개로 객체화한 파렴치한으로 생각한다. 로트 선생은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여선생”답지 않은, 이상한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는, 학생에게 올바른 것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미치광이가 되어 버렸다. 하나님을 기만하며 유다가 되어버린 인물은 어느새 이 세상에서 가장 건전하고 순결한 청소년이 되어 있었다.


로트가 스스로 심판 받길 자처하며 발에 못을 박는 순간 겉으로든 속으로든 탄식을 내뱉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됐을까. 선생 죽이기 프로젝트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다며 머리에 돌이 내려쳐진 게오르그를 보며, 숨이 다 멎어가던 순간에 선생의 무고함을 밝히려고 하지만 벤야민에 의해 무력하게 제지당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타들어갈 듯한 답답함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연극은 이처럼 기만과 이중성, 비겁, 교만, 타락과 같이 죄악으로 규정된 모든 사건을 조우하게 한다.

 

죄인은 심판을 피해갔다. 하지만 그가 심판을 피해가도록 판을 벌인 사람들은 그의 주변인들이다. 체육 교사, 교장, 벤야민의 어머니, 심지어는 게오르그와 로트까지 모두가 벤야민의 유다화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어머니는 벤야민을 미치광이 아들로, 게오르그는 그를 전지전능한 신으로 생각했다. 교장은 철없이 날뛰는 그 나이 대 학생 중 한 명으로 벤야민을 대했다. 체육 교사는 아예 일찌감치 벤야민을 내치며 그와 상종하지 않으려 했고, 여학생은 치기 어린 희롱으로 그를 괴롭혔다. 로트는 이해라는 명목으로 벤야민을 무리하게 가르치려고 했다.

 

이 모든 행동들이 벤야민의 엽기적인 면모와 광기를 심화시켰다. 그리고 엉뚱한 사람들이 파멸하는 결말을 낳았다. 그렇지만 아무도 이 사태를 책임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못을 들고 기꺼이 심판을 받고자 파멸에 이르렀던 로트와 달리 남아 있는 이들에겐 일말의 용기도, 끔찍한 상황에 대한 책임감도 존재하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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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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