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을 위한 죽음 : 뉴필로소퍼 VOL.9 [도서]

글 입력 2020.02.05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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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였다. 지금이나 그때나 여전히 생각이 많았던 나는 꽤 높은 빈도로 불면증을 겪었다. 2시간 동안 눈만 감고 있는가 하면, 잠이 들었다 생각할 즈음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 그렇게 해결 방법을 찾던 중 몸에 힘을 빼고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가만히 누워있으면 쉽게 잠에 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렇게 나는 가만히 누워있었고, 내가 관 속의 시체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였다.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우리 그리고 나는 어떻게 죽게 될지부터 시작해서 아주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상상했다. 순식간에 눈물이 흘러내렸고 베갯잇을 다 적셔버렸다. 그 후로 거의 매일 밤 자려고 누워서 눈을 감으면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해보려 애썼지만 그 끝은 사람의 인생처럼 죽음이었다.

 

나는 모든 이들이 당연히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줄 알았다. 경험하지 못한, 혹은 경험이라고 할 수 없이 그저 끝일 지도 모르는, 그 죽음이라는 것은 경험하고 있는 삶만큼이나 나에게 큰 존재였다. 그럼에도 쉬이 말할 수 없었던 이유는 죽음이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단어와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미디어에서는 죽음을 끝없이 다루고 있다. 물론 그것이 죽음을 가볍게 만든다는 것은 아니다.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죽음에도 뉴스에서 사망이라는 단어는 우리 생각보다 쉽게 볼 수 있으며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그리고 게임에서까지도 죽음이라는 것은 그리 비일상적인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죽음은 삶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죽은 자들을 놓아주어야 한다.

더불어 모두가 죽어가고 있다는

현실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15p

 

 

'죽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정말 힘이 들 때 '아 죽고 싶다', '진짜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실없이 한 말은 아니었다. 정말 다 끝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부끄럽지만 그렇게 나는 습관적으로 점점 죽음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솝우화>의 노인과 죽음이 기억에 남는다. 나뭇짐을 이고 가던 힘없고 가난한 노인은 힘이 들어 나뭇짐에 깔리고 만다. 그렇게 죽음을 부르며 괴로움을 덜어달라고 하자 죽음이 찾아왔다. 노인은 죽음의 모습에 겁을 먹고서는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기 위해 불렀다고 말한다.

 

우리는 죽음을 이리도 쉽게 말한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죽음을 부른다. 그리고 죽음의 형상을 보았을 때에 우리는 겁을 먹는다. 그토록 목놓아 불렀던 죽음이 다가오면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죽음은 늘 곁에 있음에도 아주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이가 그렇다고 할 수 없겠지만, 우리가 죽고 싶어 하는 이유는 정말로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것은 죽음이 아닌 다른 삶의 모습을 바란다는 외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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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죽음 혹은 죽음을 위한 삶. 어느 것도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역설적일 수도 있으나 삶을 위한 죽음 후에 죽음을 위한 삶이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무한한 것보다는 유한한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여겨진다. 유한할 때 그것은 더 희소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는 이유도 그렇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이유와 더불어 우리는 영생을 살 수 없으므로 주어진 삶을 더욱 가치 있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가치 있다는 것은 꼭 더 많은 성과를 이루어내고 더 많은 돈을 번다는 것이 아니다.

 

나의 존재로 나의 삶을 사는 것. 오늘을 살고 지금을 사는 것. 이미 죽음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삶을 한차례 가치 있게 만들었으니 이에 의미를 부여하고 더욱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다. 언제 맞닥뜨릴지 모르는 죽음을 위해 지금도 흘러가고 있는 바로 지금과 오늘을 사는 것이야말로 삶과 죽음을 더 그들답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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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 바뀌는 것은 없다. 내가 죽은 후에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다.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장례식에는 몇 명이 올지, 장례는 누가 치러줄 것인지 나는 차가운 땅속에 묻힐 것인지 혹은 가루가 되어 바다가 될 것인지, 다음 세대를 위한 연구 대상이 될 것인지 등 죽음이라는 것은 참 생각하면 할수록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왜 누군가 죽었을 때 슬퍼하는 것일까. 내가 영혼의 존재를 전제로 시작하는 심리를 흥미 있어 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사후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죽은 이는 더 이상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며 더 이상 고뇌하고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누군가를 죽음으로 떠나보낸 뒤 흘리는 눈물은 어쩌면 죽은 이를 위한 것이 아닌 살아 있는 자신을 위한 눈물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에서 비롯한 공허함과 다시 볼 수 없다는 그 확실함이 주는 강렬한 상실감으로 우리는 죽은 이를 쉬이 떠나보낼 수 없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사랑한 만큼 슬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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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 그것 또한 우리가 반드시 죽는 존재이기에, 유한한 삶을 사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가지는 하나의 권리이다. 죽음이 우리에게 부여한 삶은 우리의 것이며 그 삶의 모든 선택 또한 우리의 것이다.

 

나에게 철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더 나은 삶이자 죽음이다. 자살, 안락사 등 죽음의 선택은 아주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부분임에도 언급하고자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 또한 수많은 죽음의 형태 중 하나이며 더 많은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앞선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미디어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선택을 가볍게 만드는 말들 혹은 죽음의 선택에 대한 비난이 그쳤으면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죽음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그 대화를 하고 싶어도 결코 할 수 없는 순간이

언젠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22p

 

 

이 책은 죽음 덩어리다. 이리도 죽음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 책이 있을까. 수많은 철학자들이 눈 바로 앞까지 죽음을 가져와서 보여주는 기분이었다. 눈이 나쁜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름 죽음과 가깝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이 책은 더 많은 죽음에 대한 것들을 보여준다.

 

다른 문화의 죽음에 대한 전통부터 수치화된 죽음, 유물론과 관념론, 안락사, 많은 이들의 유언, 시대의 멸종 등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을 보여주며 끝없이 죽음을 상기시킨다. 이를 읽는 동안 생각지 못했던 생각을 하느라 자연히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로써 나는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필요성을, 죽음을 위한 철학의 필요성(죽음에 대한 준비)을 절실히 느낀다. 또 기회가 된다면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누구든 알고 있지만 쉽게 망각하는 사실은 죽음은 삶의 그림자처럼 늘 곁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의 일부이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의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갑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며

만일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의 영지가 그리되어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전체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렸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그 종은 당신을 위해 울리고 있다.

 

존 던(John Danne),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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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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