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눈사람] 우리 가족은 비정상이 아닙니다

두 번째 눈사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상처 입은 그대
글 입력 2020.01.15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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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집안 애들은 어딜 가도 욕먹어."


좋아하던 사람의 가족에게 들은 말이었다. 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던 순간이었다. 그런가? 나는 어딜 가도 욕을 먹는 그런 사람일까. 살면서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난 욕 먹는 게 당연한 사람이니, 그렇게 늘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걸까?


그들의 정의에 의하면 나는 '비정상가족'에서 성장한 '비정상' 인간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둘이 살았다. 나에게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 빈자리 역시 없다. 나는 나의 가정에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고, 그로 인한 부족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나의 엄마는 누구보다 멋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녀를 존경했다. 그녀 덕에 잘 성장한 나는, 저 말을 듣기 전까지 단 한 번도 가정환경에 의한 손가락질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굳이 숨겨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내 환경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나였고, 엄마는 엄마였다. 나는 그녀의 선택을 이해했다. 아무것도 잘못된 것은 없었다. 모든 가족이 세상이 정의 내린 '정상가족'의 형태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살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다양한 형태의 가정에서 자랐고, 누구도 '비정상'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몰랐다. 내가 '비정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사회가 정의한 '정상가족'이란, 엄마, 아빠, 그리고 정상 자녀로 구성된 전형적인 핵가족 형태의 가족이다. '정상가족'은 이러한 통일된 형태의 가족만을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하기 위해 고안된 말로, 그 외의 가족 형태를 '비정상'으로 본다는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무자녀 가족, 한부모 가족, 다문화 가족, 조손 가족, 무자녀 가족, 동성 결혼 등은 전부 '비정상'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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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광범위하다. '정상가족'에 분류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도적 한계, 사회적 시선에 맞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비정상'의 프레임이 쓰인 후, 그 가정에 속한 사람들은 다양한 차별을 마주하게 된다. 사회는 당연하다는 듯, '정상가족'을 기준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운 배제는 사소하지만, 절대 사소하지 않은 폭력을 생성한다.


'정상'과 '비정상', 그 정의조차 불분명하다. 비판을 위해 고안된 이 용어는, 가족 형태에 가해지는 편견에 대해 매우 강한 태도를 취한다. 실제 사회는 특정 형태의 가족이 아니라면, '비정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 측면이 해소된다고 해도, 아직 한국 사회는 강한 가족주의를 기반에 두고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마주해야 할 여러 문제들이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상' 가족에 속하는 순간, 그 낙인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모두에게 '가족'이란 관계가 너무도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전혀 사소하지 않은 폭력



너무도 자연스럽게 박혀 있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전혀 사소하지 않은 폭력을 전혀 대수롭지 않게 행하는 사회를 만든다. 가령 "결혼하셨어요?", "어머니는 뭐 하시니?", "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니?" 등의 질문은, 질문자 본인에게 당연하기에 편히 건넬 수 있는 말이겠지만, 대상자에게는 차마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될 수 있다. 악의가 없다 해도 질문에 답을 하는 순간 찍히게 될 '비정상'이란 낙인이 두려워 순간적으로 감정적 동요를 겪을 수 있다.

 

사소함이 도를 넘어서는 순간, 혐오는 시작된다. 나는 나에게 "너 같은 집안 애는 어딜 가도 욕먹어."라는 말을 한 사람에게 "그런 애"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그런 애 말고 제대로 된 애"를 만나라는 말을 한 그 사람은, 본인의 말에 의해 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애"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일반화를 해서 모두가 나를 "그런 애"로 보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이 사회 내의 어딘가에서는 "그런 애"로 정의되고, 그로 인해 내가 무얼 하든 "그런 애"이기 때문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란 사실이 두려워졌다. 나를 정의 내린 그 사람들에 의해, 나는 순식간에 '비정상'의 범주에 든다는 확정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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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 가족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더는 통계적으로 소수자가 아닐지언정, 사회적으로는 소수자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에서 자식의 실수는 부모의 교육 탓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정상가족'이 아닐 경우, 그 시선은 더욱 직접적인 폭력성을 갖게 된다. "가정환경이 그러니 애가 저 모양이지", "부모가 없으니 저러지", "여자가 애를 혼자 키우니" 등의 말들은 상당히 강한 혐오 표현에 해당한다. 그 말로 인해 대상자는 본인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 모두를 부정당하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반복적인 '비정상'의 분류는,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신에게 그런 말을 던지는 사회에 맞서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가정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는 순간, 모든 분노가 자신의 가족에게 향할 수 있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가족이란 존재로 인해 자신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세상 어디에도 '정상가족'도, '비정상가족'도 없다는 사실이다. 가족을 중요시하는 마음과, '정상가족'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누구도 함부로 '비정상'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정상/비정상 아닌, '따스한 가족'



정상적인 가족의 기능은, 가족 구성원의 정상성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모든 '정상가족'이 건강한 가정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정상가족'에 대한 강압적 요구는, 가정 내 폭력이나 여성의 희생을 정당화하고, 더 악화한 가족 형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데도 자신을 '정상'의 범주에 넣기 위해 타인을 '비정상'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자신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야기한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결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변화하면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완화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이 생기고 있지만, 가족 형태의 변화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인한 폭력에 시달리고, 자존감을 잃고 있는 많은 사람이 있다. 가족에 의한 낙인은, 스스로 끊어낼 수 없다. 자신의 잘못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변화해야 할 것은 사회적 시선이고,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그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이다.


'비정상'이라는 낙인이 주는 강한 공포감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철저한 소수자가 되어, '가족'이란 개념 자체를 마주하기가 두렵고, 누군가 내 가족관계를 물을까 겁내는 일은, 본인이 되어보지 않으면 절대 공감할 수 없다. 가족은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더욱 큰 고통을 만들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에 더욱 큰 좌절감을 느낀다. 그리고 내 잘못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화가 나고, 반드시 세상이 변해야 함을 느낀다.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비정상'이란 경계선 앞에 눈물 흘리고 있을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힘주어 말하고 싶다. 더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누구의 울타리도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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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도, 사회도, 개인도 모두 변화해야 할 문제이다. 가족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가족 내의 소속감과 안정감, 그리고 구성원과의 사랑에 있는 것이지, 절대 정상부모와 정상자식이라는 허울에 있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상가족'이 아닌, 따스한 가족이고, 대안 가족을 향한 포용력 있는 사회이다.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이란 폭력적인 개념을 굳이 가져올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타인을 안아줄 수 있는 감수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


나는 '비정상'이 아니다. 나의 가족은 '비정상' 가족이 아니다. 그리고 누구든, 어떤 형태의 가족이든 그것이 자신을 녹아내릴 것 같이 만든다면, 무엇도 잘못된 것이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은 폭력이다. 그 외의 것들은, 우리 모두의 과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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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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