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틀 속에 있는 나

글 입력 2020.01.0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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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이민정

 


‘나’에게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 허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역동성에 눈뜨게 된다. 그때 지금 이 순간 속에서 열심히 놀이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다른 놀이로 옮겨 간다.

 

‘나’의 품사는 흐르는 강처럼 순간순간 변화하는 동사이다. 나는 나의 지난 이야기가 아니라 이 순간의 있음이다. 만약 내가 시인이라는 호칭을 존재의 고정된 틀로 지니고 다닌다면 그것은 죽은 명사가 된다. 죽음만이 유일하게 동사가 될 수 없는 고정 명사이다. 내가 시인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 오히려 나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오직 모름과 모름일 때 존재와 존재로 마주하는 일이 가능하다. 순수한 있음과 있음으로.

 

류시화 -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中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을 만나는 게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되었다.


안 그러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프레임을 씌우고 그들이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에 맞춰 행동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에서도 말한다. 나 자신이 실제로 누구인가는 감추거나 꾸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마냥 자유롭지 못했던 건, 어쩌면 내가 나를 ‘틀 속에 있는 나’로만 바라봤기 때문이 아닐까.


나 자신이 먼저 나는 고정된 틀이 없고 순간순간 달라지는 동사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조금 더 자유로움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마다 달라지는 나 자신을 어색하게 여기지 말고 역동적인 생명체로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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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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