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병원, 복도, 미로의 닮은 점들 [영화]

영화 <킬링 디어>의 공간에 대해
글 입력 2019.12.1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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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가 주는 이야기

 

복도의 사전적 의미는 ‘방과 방을 잇는 일정한 폭을 가진 건물 내 통로. 또는 건물 간을 잇는 통로’라는 뜻으로, 기본적으로 직사각형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높이나 폭에 따라 내부에 있는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상이한 결과를 도출해낸다. 이뿐만 아니라 복도의 길이와 분절은 인물의 움직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다른 공간으로의 연결로 나아가기에 공간의 구성에서 중요하다.

 

이러한 복도라는 공간은 기본적으로 매개의 속성을 지니며, 이는 건축 공간에서 그 자체로 독립할 수 없는 불완전한 특성을 띤다.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일시적으로 마주하는 공간이기에 허용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 역시 급격히 줄어들어 부동의 행위는 허용되지 않으며, 이동만이 가능하다.

 

복도의 확장된 형태를 띠고 있는 거리를 예시로 생각해볼 때 거리에서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행위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처럼 복도는 인간을 계속 떠돌아다니게 만들며, 복도의 반복이자 하나의 큰 복도 공간인 미로의 형상과 연결된다.

 

영화 <킬링 디어>는 이 공간을 병원과 연결하여 영화 공간과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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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 공간 '병원'


 

영화 <킬링 디어>는 흉부외과 전문의 스티븐이 주인공으로 안과의사 부인, 두 자녀와 함께 완벽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그러다 스티븐이 술에 취해 진행했던 심장 수술을 받고 죽은 환자의 아들 마틴이 찾아온다.
 
마틴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으니 스티븐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죽어야 균형이 맞기에 셋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이는 평범한 복수극 같지만, 영화는 초현실적 영역으로 넘어간다. 마틴은 그저 ‘첫 단계는 사지가 마비되고, 두 번째는 거식증에 걸리고, 세 번째는 눈에서 피가 나게 되며 결국엔 죽게 될 것’이라는 말만 내뱉는다.
 
저명한 의사 스티븐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마틴의 말을 무시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들에게 차례로 증상이 나타난다. 마취과, 안과, 심리과 등으로 찾아가 각종 검사를 받아 보지만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
 
병원의 공간 구조는 흉부외과, 신경외과, 안과 등 신체 장기의 분류에 따라 구성되어있다. 병원이라는 하나의 큰 건축물은 인간의 신체로 볼 수 있으며, 그곳에서 자신의 증상에 맞는 세부 분류로 찾아가야 한다. 결국 병원의 치료는 병에 해당하는 세부 신체 기관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과정을 포함한다.
 
미로는 도착지를 찾기 위해 유랑하는 공간이라면 병원은 질병의 원인을 찾고 치료하기 위해 복도를 유랑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두 공간은 탈출을 목표로 하며, 찾고자 하는 것을 찾지 못하면 계속 복도를 방황해야 하는 것이 공통적이다.
 
스티븐 역시 가족에게서 나타난 증상의 원인을 알아내고자 병원의 복도를 끊임없이 걷는다. 광각렌즈로 촬영되어 넓은 프레임 속에서 왜소한 등장인물이 걸어가는 복도는 좁고 깊어 답답함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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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복도, 미로

 

결국 영화 속 병원이라는 공간은 초현실적 비극을 내린 마틴, 신적 존재의 시점이 담겨있다. 동시에 원인을 규명할 수 없는 병을 찾아다니는, 초현실적인 비극에 닥친 그들의 서사가 담겨있다.
 
카메라는 매개의 공간인 복도를 유랑하지만, 복도를 통해 다른 공간으로 진입하는 장면은 편집되어 스티븐의 가족은 명확한 병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며, 비극을 피해 가지 못할 것이라는 결말을 내비치기도 한다.

 

질병의 상징인 병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고통 또는 죽음을 의미하기에 복도, 미로와 더불어 부동의 행위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특징을 지닌다. 결국 병원을 배경으로 복도를 주 무대로 설정하여 공간을 커다란 미로로 작용하게 만든 영화 <킬링 디어>는 등장인물과 관객이 끊임없이 탈출을 갈망하게 한다.
 
이때 공간은 몇 마디의 말만으로 한 가족을 비극으로 몰아세운 마틴이라는 인물, 초현실적·신적 존재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안루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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