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언어만이 범람하는 세계 속으로 - ‘라 뮤지카(La Musica)’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언어의 홍수
글 입력 2019.11.1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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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원작이다.

꽤나 단순하고 고전적인 디자인이다.

 

 

 

1. 누보로망과 심리 소설의 계승자, 마르그리트 뒤라스


 

뒤라스는 누보로망 문학의 계승자다. 누보로망 문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반소설(反小說) 장르를 뜻한다. 정확히는 세계대전 발발 이전에 프랑스의 주류를 형성해왔던 근대소설을 비판하기 위한 전위적 형태의 소설작품들 일반을 가리킨다. 그래서 누보로망은 언어적인 실험이 가미된 텍스트 집필을 목표로 삼는다. 이때 작가는 굉장히 불친절해진다. 기승전결과 인과관계의 구조가 명확한 서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는 작가가 풀어놓은 언어의 홍수들 안에서 스스로 의미관계를 찾아 작품으로부터 온전히 자신만의 해석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어찌 보면 이 사조는 모더니즘에 가까운 성격을 보여준다. 그래서 초창기의 누보로망은 텍스트 실험에만 주안점을 둔 정치와 거리가 먼 문학 사상이었다. 하지만 당대 프랑스의 문학이론잡지 ‘텔켈’에서 활동했던 텔켈파들의 급진적인 창작 시도가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누보로망에도 “문학적 정치성”이 개입하기 시작한다. 텔켈파 이후로 누보로망 작가들은 대중을 위한 문학이 아니라 작가 자신을 위한, 말 그대로 소설적인 언어로만 구성된 문학을 창작하고자 했다. 이러한 급진적인 시도는 곧 전위 문학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몸과 정신의 언어만으로 러닝타임을 꽉 채운 <라 뮤지카>의 극본도 이러한 급진적인 시도의 일종이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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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베트남에서 태어나 만 17세에 프랑스로 되돌아갔고 소르본 대학에 진학하여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며 좌익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그녀는 꽤나 호전적인 사람이었다. 초기에는 네오리얼리즘이 반영된 소설을 많이 창작했지만 작가 활동 후반기로 접어들수록 <여름밤의 10시 반(1960)>, <연인(1984)>등 심리의 추상성을 묘사하는 소설을 주로 집필했다. 이러한 후기 작품들이 뒤라스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자리 잡았기에 오늘날 그녀는 심리 소설의 계승자, 누로보망 문학의 계승자로 회자된다.

 

<라 뮤지카>는 희곡 작품이다. 앞서 언급했던 후기 심리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사랑과 증오를 둘러싼 인간의 모순적인 감정 상태와, 무언가를 향한 갈망과 무언가로부터 비롯되는 결핍의 심리 등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내면의 순간들을 묘사하고자 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본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그녀가 연출하고 싶었던 연극적 미학성은 무엇이었을까. 추리의 열쇠는 “언어”에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만이 다는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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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언어의 범람, 어쩔 수 없는 ‘철학’적 미학성


 

언어만이 범람한다는 사실은 때때로 감정이 흘러넘친다는 뜻으로도 이어진다. 어떠한 행동도 사건도 일어나지 않은 채 언어만이 범람한다면. 이 상황이 무대로 구현된다면. 말과 긴장의 신체적, 정신적 언어만 난무하는 와중을 목도하면서 관객은 혼란에 빠질까? 서사도 없이 발화만 계속되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이게 도대체 돈을 주고 보라고 만든 무대가 맞냐며, 역정을 낼까? 아직 연극을 보지 않았으니 나로서는 예상하기 힘들다. 연극 상영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이번 주 토요일 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인터넷에 얼마 존재하지도 않은 마르그리트 뒤라스라는 작가의 필모그라피를 있는 힘껏 찾아보거나 작가가 집필한 작품들 중에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는 작품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뿐이니.

 

연극의 큰 특징은 방금 말했다시피 특별한 주제의식이나 서사가 인과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놉시스에 따르면 오래 전 이혼 절차를 밟았던 부부는 우연한 계기로 다시 만나 흘러간 시간동안 변하거나 변하지 않았던 그들의 감정적인 희로애락을 확인하게 된다. 재결합을 하거나, 아니면 또 다시 그 자리에서 오해와 갈등을 초래하며 평생 동안 서로의 기억 속에 인생의 오점으로 남아 있거나. 이런 점들은 연극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뒤에 올 이야기가 어떻게 될 지는 연극의 관심 바깥에 있다. 연극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오로지 감정의 표출, 언어의 나열, 언어의 범람. 이것들 밖에 없다. 구조가 매우 단순하다. 문제는 관객이 그 구조에 휩쓸릴 것인지 아닌지일 것이다.

 

문제라고 표현하니 상당히 거창해지는데 설명하자면 간단하다. 연극을 보는 내내 인물들의 발화에 완전히 몰입해 현실의 자기 자신을 그대로 내버려둘 것인지, 혹은 현실의 자기 자신과 함께 연극의 세계에 참여해 완전하게 객관화된 주관적 시선으로 인물들을 관망할 것인지. 나는 전자이기보다는 후자이고 싶다. 첫 번째로 그래야만 관람 후기를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인물들에게 끌려가지 않고 그들을 관망하는 위치에 있어야만 나의 자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철학적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실존을 뿌리 채 뒤흔드는 경험에 나를 내맡길 생각은, “가급적” 없다.

 

“헤어진 연인이 우연히 만나 미묘한 심리적 갈등과 사랑, 욕망을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로만 표현한” 뒤라스의 희곡. 하필 또 우연히 만났다. 예정에 없었던 만남과 발화들의 나열. 그래서 걱정이 된다. 언어의 범람에 휩쓸리고만 올까봐. 완전히 압도당한 나머지 연극이 끝난 후에 내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이 아무것도 없을까봐. 프리뷰를 일부러 늦게 올린 이유도 (현실에 치이고 치인 탓이 제일 크지만) 어쩌면 이 연극이 언어가 난무하는 세계임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각인시켜 무대 속의 세계에 매몰되지 않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금 큰일이 났다. “특별한 사건보다는 연극적 언어와 배우의 신체적 언어로만 인물의 내면 심리를 묘사하는” 본 연극은 “연극의 서사성, 일상성을 통해 관객의 철학적 각성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인간의 보편의 진리를 획득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바로 위에서 철학적인 경험은 지양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연극 안에 이미 서사성과 철학적 체험이라는 개념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철학적인 각성을 유도하는 어마 무시한 작품이라니. 이쯤 되면 부정하고 싶지만 나의 취향이 “비철학적인” 무언가와 동떨어져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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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휩쓸리든, 버티든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거창한 사건이나 배경이 아닌 누구나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한번쯤 겪고 고민해봤을 소재를 통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싶었다. 언어기반의 일상극을 통해 연극적 언어가 가진 힘과 배우의 표현 예술을 극대화한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 변혜훈 연출

 

 

언어의 홍수에 휩쓸리든, 휩쓸리지 않고 버티든 무대로부터 관객인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변혜훈 연출이 말했던 것처럼 어떠한 방식으로든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감정에 공감하는 순간일 테다. 인물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기 힘들더라도 무대 위의 인물이 체험하는 감정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우리의 일상에서 저 순간의 감정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를 떠올림으로써 연극으로부터 관객 자신만의 의미관계를 구축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뒤라스와 변혜훈 연출가가 <라 뮤지카>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지. 복잡한 생각이 들지만 어찌 되었든 연극을 보러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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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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