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폭력] 09. 내겐 너무 불편한 학예회

글 입력 2019.11.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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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내겐 너무 불편한 학예회


 

이 자리를 빌려 수줍게 고백해본다. 나는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조금 잘 추는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할로윈을 맞아 반 전체가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반 친구들과 선생님이 지나가듯이 던진 칭찬 몇 마디도 나를 무대 위에서 춤추게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 좁은 교실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엔 춤 잘 추는 사람이 넘쳐났고 교실을 벗어나니 고작 흉내 내는 수준에 불과한 내가 대단한 춤꾼 취급을 받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그때만큼은 무대에 서 있는 내가, 춤으로 인정받은 내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하이힐을 신기전까지는 말이다.

 

열일곱의 나는 하이힐을 신고도 격한 안무를 소화하는 걸그룹을 보며 당연하게 언니의 구두를 무대로 가져갔다. 결과는 대참사였다. 연습할 땐 운동화만 신었던지라 하이힐이 얼마나 불편한 구두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무대 내내 넘어질까 봐 어느 동작 하나 자신 있게 펼칠 수 없었고 결국 무대를 완전히 망쳤다. 아무렇지 않아 보였던 그들도 발에 테이프를 칭칭 감고서 춤을 췄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그로부터 몇 년이나 지난 뒤였다.

 

그날 이후로 절대 구두를 신고 춤추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다시 춤을 추게 될 때, 구두를 신지 않겠다는 다짐은 지켜졌다. 대신에 다른 방식으로 TV 속 그들을 따라 하게 됐다.

 

‘반드시 허리를 드러내야 할 것’

 

공연을 앞두고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임원진의 한 마디였다. 한국도 아닌 교환국에서 들은 말이었다. 남자부원이 ‘나도 그래야 하냐’고 농담 섞인 질문을 던지자 모두 웃음으로 대답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자부원에게만 해당된 말이었던 것이다. 며칠 뒤 나는 다른 여자부원들처럼 허리가 드러나는 무대 의상을 구입했다. 내 인생에 나타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던 크롭티였다. 살면서 언제 또 한겨울에 배를 드러내 볼까. 생각보다 훨씬 춥고 불편했다. 거기에 다른 부원들과 나를 비교하며 허리가 가늘어 보이지 않을까 봐 그날 식사를 거르기도 했다.

 

여전히 춤 자체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안무 영상도 자주 찾아본다. 난생처음으로 ‘크롭티’란 걸 입어본 이후 가는 허리를 드러내고 높은 구두를 신고 춤추는 그녀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불편할까. 얼마나 힘들까. 1년 365일 내내 사람들이 요구하는 모습을 유지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전엔 어떤 옷을 입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건 그때의 내가 그녀들을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닌 인형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당시에는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었다.

 

미디어 속 춤추는 여성은 왜 모두 노출 의상을 입을까. 왜 불편한 구두를 신을까.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자 모든 게 다 이상해 보였다. 그 이상함은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정점을 찍었다.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영상 속 그녀들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어른들이 만들어낸 ‘섹시 웨이브’를 하고 있었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댓글 창이었다. 예쁘다, 귀엽다, 어른 같다, 섹시하다는 반응만이 가득했다. 이상하게 보는 건 오직 나뿐이었다.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던 그때, 거울에 비친 내가 낯설기만 했다. 화장에, 구두에, 치마에… 필사적으로 성인 여성을 따라 한 내 모습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 모습은 어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아이는 아이다울 때가 예쁘다는 말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의 나보다 더 어린아아이들이 TV에서 노출 의상과 진한 화장을 하고 있고, 그보다 더 어린아이들이 그 모습을 따라 하고 있는 게 지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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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춤추는 여성의 모습을 학습할 기회는 걸그룹 밖에는 없다. 걸그룹이 아닌 사람의 댄스 영상에도 날씬한 몸매와 크롭티는 빠지지 않는다. 더 심각한 건 이제 아이들은 무대 밖에서도 그 모습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아이들도 좋아서 꾸미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걸 좋아하게 한 것에 미디어의 영향은 조금도 없는 걸까. 모든 아이가 수학 문제의 정답처럼 똑같은 모습만을 추구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말 그 모든 게 다 스스로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을까.

 

누군가는 예쁘기만 한데 뭐가 문제냐고 말한다. 귀여운 아이들을 너무 삐딱하게 바라본다고 말한다. 그렇다. 그들이 말한 대로 아이들은 예쁘기만 하다. 하지만 4살짜리 아이에게 ‘섹시한 골반 돌리기’ 따위의 말을 붙이며 소비하는 태도와 그렇게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어른들의 의도는 추악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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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 배스킨라빈스의 아역모델 ‘엘라그로스’를 둘러싼 성적대상화가 논란으로 떠올랐을 때도 광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에게 다 큰 여성들이 어린아이를 질투해서 그런 것이라는 황당한 댓글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고작 열두 살 아이를 성인 여성이 질투할 만한 대상으로 본다는 자체가 문제라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진한 화장과 노출 의상을 어른이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한 동영상에서 아주 인상적인 말을 들었다. 어른이 된다고 입술이 갑자기 붉어지거나 허리가 가늘어지거나 아이라인이 생기는 게 아니라고. 결국 아이들이 따라 하는 건 그냥 성인 여성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성인 여성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댄스 영상을 본다. 한겨울에도 배꼽을 드러내고 짧은 치마를 입고 높은 구두를 신는 걸그룹들은 반짝반짝 빛난다. 그 영상 바로 아래 그들의 모습을 똑같이 따라 한 어린 학생들의 무대 영상이 떠오른다. 몸매를 드러낸 아이들에게 달린 섹시하다는 댓글과 영상 제목이 되는 중학교의 이름은 너무나 이질적이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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