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쉼에 대하여 [문화 전반]

갑작스레 휴학하게 된 성과기계의 쉼에 대한 고찰
글 입력 2019.10.1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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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어려서부터 줄곧 무언가를 해왔고, 하는 것이 진정 즐겁고 행복한 삶이라 여겼다. 주변 사람들도 모두 무언가를 해내기에 바빴다. 이를테면 시험준비를 위한 공부라거나, 스펙을 위한 대외활동이라거나, 하다못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싫다며 버킷리스트를 적고 이를 실천한다거나. 그러한 것이 당연했기에 나는 온전히 쉬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하루하루 부산한 초점으로 살아왔고, 그 부산한 초점들을 일기장에 정리하며 뿌듯해했다.

 

그러다 문득 성과기계가 된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별다른 저항 없이 다시 바쁜 일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곤 했다. 그런 생각을 할 심적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사정이 생겨 갑작스럽게 휴학을 하게 되었다. 쉬는 법을 모르는 성과기계인 나는 매일 불안한 밤을 삼켜내며 해야 하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러다 과거에 스쳤던 '나는 왜 온전히 쉬지 못하지?' 라는 고민이 떠올라 책상에 앉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정지, 심심함, 쉬어감 따위의 것들을 견디지 못하는가.

 

  

 

첫 번째 생각, 하나의 기업이 되어버린 인간



'나를 브랜딩 하라!'

 

번듯한 직장을 가진 '성공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본인을 끊임없이 경영해야 한다. 차별화된 나만의 스펙을 찾아 헤매고,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일, 나아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한다. 과거 절대 권력자의 강력한 규율, 통제된 삶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성과를 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성과사회의 울타리 속에서 우리는 나 자신의 기업가로서, 성과를 내야만 하는 주체로서 살아야 하는 의무를 지고 살아간다.

 

기업은 성공적인 경제적 이익 수치를 달성하기 위해 하나의 유망한 시장에 뛰어들고, 그 안에서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현대의 인간 또한 성공한 사회인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특정 유망 직종 혹은 기업에 뛰어들고, 그 안에서 차별화된 스펙으로 본인을 어필하기 위해 처절히 노력한다. 이렇듯 기업 경영과 인간의 삶은 참으로 닮아있다. 현대 인간의 삶은 과거와는 달리 경제원리에 전복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성공한 사회인'의 범주에 들기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삶, 과정은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매우 획일화되어있는 것으로 보이나,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개별화, 개성화라는 무기를 들고(즉 기업에서 말하는 브랜딩) 성공적 미래를 향해 끝없이 질주해야만 한다.

 

 

 

두 번째 생각, 존재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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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영원한 이익을 보장하는 상품이 없듯, 경제원리에 전복된 인간의 삶 속에서 지속과 불변을 약속하는 것은 없다. 이러한 존재의 결핍 앞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불안과 초조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존재의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서 인간은 노동하며 성과를 낸다. 성과사회의 어쩔 수 없는 성과기계로서 끊임없이 본인을 착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을 통해 결핍을 해소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감을 느끼지는 못한다. 노동을 통해 성취감을 느낄 수는 있으나, 밀려오는 노동의 의무는 피로감을 더 크게 낳는다. 결핍과 노동, 피로의 굴레는 성과 사회 내에서 인간이 평생 버텨야 하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자기착취에 익숙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쉼의 의무보다는 활동의 의무를 만들어내는 데에 특화되어있다. 반대로 쉼, 심심함의 경우에는 불안과 초조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기 때문에 쉼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게 된다.

 

'열정 부자, 유노윤호'라는 캐릭터는 최근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인들의 피로한 상황을 반영한다. 유노윤호는 노동의 의무에 휩쓸린 성과기계들이 느꼈던 불안과 피로를 느끼지 않으며(어쩌면 느끼지 않는 척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유노윤호에게 본인의 상황을 반대로 투영함으로써 자조적인 유머는 완성되었고, 이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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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부른 바 있다. 현대에는 깊은 심심함을 스스로 절제하며 오직 '성과'를 위한 분주한 활동에 빠르게 초점을 맞추며 살아간다. 창조적 잠재력이 있는 꿈의 새는 성과사회에 물든 성과기계들의 자기착취를 통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인간의 모든 문화, 철학적 업적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깊은 사색에 의해 발전한 것임에도.

 

그리고 나는 지금, 쉬어야 함에도 또다시 떠오르는 이런저런 의무들로 결코 쉬지 못하고 있다.

 

이제 진짜 쉬러 가야하는데.

 

 

<참고문헌>

한병철, 「피로사회」, 문학과지성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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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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