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쟁의 목격자', 마거리트 히긴스 [도서]

한국전쟁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전기
글 입력 2019.09.3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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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리트는 한국전쟁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인천상륙작전을 함께 했던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자이다.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낀 마거리트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끈기 있고 강인한 사람이다. 권모술수를 쓴다라고 한다면 그렇다라고도 할 수 있고, 목표의식이 투철하다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마거리트 같은 경우에는 끈기와 용기, 모험가 다운 성질, 아름다운 외모 등)을 100% 유용하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물론 최고가 되기 위해 본인도 끊임없이 노력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온 세상에 통틀어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마거리트 역시 완벽한 사람은 분명 아니다. 비난 받아 마땅할 점도 있을 것이고 도덕윤리관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마거리트는 수십 명의 남자 기자들 가운데 당당히 여성 기자로서, 그것도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 통 속에서 종군기자로서 발군의 기지를 발휘했다는 점이다. 나는 같은 여성으로서 책을 읽는 내내 마거리트가 매우 자랑스러웠다.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내 보인 마거리트는 존재 자체로 이미 상징적인 존재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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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목격자'는 생전에 마거리트에 대해 잘 알았거나 이웃이었거나 그녀의 어린 시절 혹은 성인이 되어 사귀었던 친구였던 사람들을 인터뷰한 것들을 바탕으로 엮은 책이다. 특히 이 책에는 다른 전쟁들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지만, 마거리트 히긴스를 일약 슈퍼스타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룬다. 마거리트는 6.25전쟁을 목격하고 취재한 신문 기자들 300여 명 중, 유일하게 홀로 여성 기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마거리트의 직장이었던 '트리뷴'은 여성 기자였던 마거리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여 일본 도쿄 지부로 보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거리트는 역경을 무릅쓰고 자신이 꿈에도 그리던 전쟁터 한가운데로 용감하게 뛰어들어 맥아더 총사령관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을 포착하고 그 모습을 전 세계에 보도하여 이후 그 공로를 인정받아 기자로서의 최대 영광을 누린다.


이 책, '전쟁의 목격자'는 내가 할머니로부터 듣던 6.25전쟁 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할머니로부터 6.25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전쟁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것인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때문에 처음 마거리트 히긴스의 일생을 다룬 책 제목이 '전쟁의 목격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참 이런 우연이 있나 싶었다. 또 다른 전쟁의 목격자가 우리 집에 계신다. 바로 우리 할머니다.


6.25 전쟁 당시 할머니께서는 대략 7-8살쯤으로 어린아이셨다.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무엇 때문에 그 사단이 벌어진 것인지, 왜 꼭꼭 숨어있어야 하는지 혹은 피난을 가야 하는지, 심지어 전쟁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하셨다. 자주 듣고 들어 외우기까지 한 할머니의 6.25전쟁 이야기는 항상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선생님, 산에 있는 나무들이 걸어 다녀요!' 산에 있는 나무들이 걸어 다닌다?


국민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창밖을 바라보며 외친 한 아이의 이상한 말은 곧 같은 반 동급생들과 수업을 하던 선생님까지 우르르 창가 쪽으로 이끌었다. 그러자 정말로, 산속에서 변함없이 꿋꿋하게 서있어야 할 수많은 나무들이 대거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사실 그 움직이는 나무들은 나뭇가지와 잎들로 위장한 북한 군인들이었다. 그제서야 학교의 선생님들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아이들을 각자의 집으로 서둘러 돌려보냈다. (시간이 흘러 그 국민학교는 전쟁 중 다친 군인들을 돌보고 간호하는 임시 병원으로 변했다) 이것이 바로 할머니께서 직접 겪었던 한국 전쟁, 즉 6.25전쟁 기억의 서막이었다.



마거리트는 병원 열차 창문으로 앰뷸런스들이 줄줄이 싣고 온 부상병들을 쏟아 내는 것을 바라보았다. 말수 없고 음침한 얼굴을 한 부상병들이 직접 걷거나 들것에 실려 옮겨졌다. 치료를 받지 못한 괴사된 상처에서 풍기는 악취가 앰뷸런스 자체에서 나는 변소 같은 냄새와 금세 뒤섞였다.


- 본문 中, 234p



할머니의 오빠께서는 해병대 출신이셨다. (대한민국 해병대를 상징하는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말도 히긴스가 한국 해병대 1개 중대가 북한군 대대 병력을 궤멸시킨 통영상륙작전을 보도하면서 남긴 “그들은 귀신도 잡을 수 있겠다 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라고 쓴 기사에서 유래했다) 할머니께서는 종종 그가 어떻게 그 혼란스러운 전쟁통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말씀하시곤 하셨다. 말그대로 오로지 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다고 한다.


적군의 눈을 속이기 위해 이미 죽어 차가워진 다른 군인들의 시체를 당신의 몸 위에 덮고 죽은 척했던 일이나, 오랫동안 허기에 시달리다가 겨우 얻은 식량인 통조림을 정신없이 먹던 중 뭔가 이상한 식감이 들어 뱉어보니 그 통조림 안에서 사람의 잘린 손가락이 나왔던 일이나(허구인지 진실인지는 불분명하다), 바로 몇 초전까지만 해도 같이 꼭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사담을 나누었던 동료가 총에 맞아 죽는 일, 발에 챌 정도로 많은 군인들의 시체를 등에 땀이 흐를 정도로 넘고 넘어야만 했던 기억 등등.. 그는 오로지 살아남겠다는 의지 하나로 고되지만 멀쩡한 몸을 이끌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거리트는 가스실을 둘러보았고, 간수들이 희생자들을 억지로 그곳에 밀어 넣는 것을 실제로 본 생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마지막 며칠 동안 살해당한 수천 명에 이르는 재소자들의 딱딱하게 굳은 시체들도 보았다. 마거리트는 이렇게 기록했다.


“시체들이 트럭과 카트에서 쏟아져 나왔다. 또 다른 시체들이 모퉁이마다 혹은 건물에 기대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들은 죽음에 이를 때 겪었던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자세를 가릴 만한 옷가지도 없이 내팽개쳐졌다. 그 공포를 강조하기라도 하듯, 봄밤에 내린 서리가 두들겨 맞거나 그게 아니면 죽을 때까지 고문당한 희생자들의 눈과 코에서 흘러내린 피와 노란 점액 방울까지 섬뜩한 종유석 모양으로 얼려 버렸다.”


- 본문 中, 126쪽



이 책에서 위의 대목을 읽으니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라 끔찍함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이야기만 들어도, 이렇게 텍스트만 읽어도 꿈에 나올까 악몽에 시달릴까 벌써부터 몸서리쳐지는데 마거리트는 정말로 강심장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수많은 공포영화, 전쟁영화들을 보며 볼 때마다 '저 시체들은 허구야, 고무로 만들어 진거야'라고 자기최면을 걸며 끝까지 보았다.


그러나 마거리트와 같은 상황에서 실제 전쟁터를 보았다면, 나는 아무리 특종을 찾아야만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있더라도 전쟁의 참혹함에 그 자리에서 바로 기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안락함, 편안함을 뿌리치고 혼돈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맞서 싸우고 경쟁하던 마거리트. 앞으로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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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책을 읽던 중, 생전의 마거리트를 기억하는 어떤 사람의 묘사를 그대로 옮기며 이 글을 마친다.



그녀가 나를 비롯한 정말 많은 남자들의 의식을 성장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매기의 용기가 아니었더라면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을 보지 못했을 테고 그런게 당연하다고 여겼을 겁니다. 남자들 모두가 스스로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에요. 여자 앞에서 겁먹고 바보 같아 보일까 봐 두려워하죠. 그렇게 쾌활하고 자신만만한 마거리트의 모습을 보면서 평생 남자랍시고 거들먹거렸던 자기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어요. 그건 정말 기존의 사고방식을 깨부수게 한 좋은 경험이었어요. (중략) 그녀는 내가 가진 가장 귀한 추억들 중 하나고, 그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내게 정말 이롭다고 느낍니다 - 내 영혼이 먼지구덩이에서 머물지 않게 해 준다고 할까요.


- 본문 中, 2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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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아네트 메이 지음│손희경 옮김

145*225mm│436쪽

2019년 9월 25일 발행

16,000원│역사

ISBN 979-11-85585-75-8 (03900)






■ 지은이 앙투아네트 메이Antoinette May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42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였던 실비아 브라운의 전기 <영매의 모험 Adventures of a Psychic>의 공동 저자다. 메리 셸리와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결연한 마음Determined Heart>, 성경 속 인물을 모티프로 한 소설 <빌라도의 아내Pilate’s Wife> 등을 썼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며 <코스모폴리탄>, <컨트리 리빙>, <셀프>, <샌디에이고 유니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산호세 머큐리 뉴스>등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글을 썼다.



■ 옮긴이 손희경


편집자·번역가. 옮긴 책으로 <호기심 미술 수업>, <모던 라이프>, <뜻밖의 미술>, <미술관 100% 활용법>이 있고, 함께 옮긴 책으로 <아주 사적인 현대미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노트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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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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