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HGW XX/7 에게 쓰는 편지 - 영화 "타인의 삶" [영화]

글 입력 2019.09.24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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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GW XX/7, 안녕하신가요.


오늘은 얼마나 많은 우편을 배달하셨나요? 하루가 고되진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당신이 관객이 되어 그들을 관찰하는 모습을 지켜본 또 다른 관객입니다. 한때 당신은 같은 아파트의 꼬맹이도 알 정도로 너무나 유명한 ('악명 높은' 이 조금 더 어울리겠군요) 비밀경찰 슈타지 소속이었지요. 누가 알았겠습니까,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눈물도 흘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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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참 외로웠겠습니다. 보아하니 사랑하는 이도 없이 슈타지에만 모든 걸 바치느라, 성적 욕구마저 매춘부에게 돈을 지불하고 푸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정해져 있었죠.


드라이만의 새로운 혁명과 사상을 향한 열정 그리고 예술적 재능이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 것인지 아니면 크리스타의 아름다움과 한결같은 드라이만을 향한 사랑이 부러워서 시작된 움직임인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극악무도한 비밀경찰 따위는 사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며 잘못된 사회가 만든 눈속임이자 환상 같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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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학교 동기이자 상사가 되어 그 둘을 도청하라고 지시했던 그루비츠를 마주하고 앉은 당신의 기분은 어땠나요.


체취를 수집하기 위한 헝겊이 덧대어져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 도청이 더 이상 작전 수행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취미가 되어버린 것이 들킬까 봐 두려움이 먼저 앞섰나요? 저는 어쩐지 꼭두각시로 살지 않겠노라 조용히 다짐한 듯한 당신의 비장함이 먼저 보였습니다.


더불어, 조국이라고 부르는 집단이 해치려고 드는 두 비밀 친구들을 지키고 말겠다는 굳건함과 애처로움도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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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n, das ist für mich."

아뇨, 저를 위한 것입니다.



당신과 친구들을 붙들고 있던 꼭두각시 줄은 아쉽게도 당신의 손으로 잘라내지는 못했으나, 다른 이들이 '통일'이라는 가위로 끊어내주었지요.


그 과정 속에서 참담하게 조종 당하는 삶을 사는 대신 죽음만을 유일한 희망으로 택한 이들이 있었기에 마음이 씁쓸하더군요. 더 애석한 것은 '선'을 택한 당신은 이전의 삶과 비교하면 너무나 단순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가뜨린 악마 브루노는 여전히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옛날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며 '잘'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허나 HGW XX/7, 당신과 같은 올바른 선택을 한 사람들 덕분에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스스로를 위해 사는 온전한 삶을 살게 되었으니 그루비츠의 당신을 좌절 시킬 작전은 제대로 실패한 것으로 결론 지으렵니다.

계속 그렇게 선하고 올바르게 살아주십시오.

결코 당의 부흥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주십시오.

나 또한 그리 살아보렵니다.

그럼 이만,

Achtungsvoll.


* Achtungsvoll

:a. 형용사

1.

공손한;경의를 표하며(편지 끝에 쓰는 말)




학창시절 즐겁고 행복하게 들었던 교양 '영화와 문학' 교수님께서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추천해주신 영화 중 한 편이었다. 왓챠플레이어 보고싶어요 리스트에 바로 추가하기는 했으나, 다른 영화들을 보느라 재생될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며칠전 블로그 이웃님의 엔딩이 인상 깊은 영화들 중 하나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도대체 어떤 엔딩인가 싶어 궁금증이 급격히 상승되었었다. 왜 조금 더 일찍 보지 않았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영화 캐릭터들이 단순히 나쁘고 착한 영화를 매우 싫어하는데, '타인의 삶'은 모든 캐릭터들이 입체적이어서 정말 인상 깊었다. 그래서 더욱 몰입이 되었고 이웃님의 평처럼 영화가 끝나고도 여운이 짙디 짙었다. 나는 여운이 깊은 영화들을 보면 일상 속에서 문득 그 캐릭터의 안부가 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


분명 가상의 인물들임을 알고 있는데도, 마음 한 켠에 남아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못한다. 비즐러를 연기한 올리쉬 뮤흐의 뛰어난 연기력과 눈빛 덕분에 스크린 속에서 캐릭터가 더욱 생생히 살아 숨쉴 수 있었던 것 같다. 타인의 삶이 그의 유작으로 되어 더 이상 그의 연기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유감이지만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올리쉬 뮤흐라는 배우를 알게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등장 인물에게 편지를 쓰는 형태로 영화 감상을 남기는 것은 앞으로도 종종 할 것 같다. 이렇게 하고 나니 뿌연 형태로 생각 속을 부유하던 여러 감상들이 더 또렷이 남고 정리가 된다.

참 좋은 영화를 만나게 되어 기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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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드라마 독일 137분

2013.01.17 재개봉 / 2007.03.22 개봉

[국내] 15세 관람가 [해외] R





[김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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