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젠더 교육, 필요 없는 교육일까? [사람]

글 입력 2019.09.24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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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차별 문제는 "몰라서" 발생한다. 특히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문제의 경우, "왜"에 대한 생각조차 없이 여론을 따르는 무리가 생기기도 한다. 페미니즘 운동과 성소수자 인권 문제가 그중 하나이다. 잘 알아보려 하지 않고,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르거나 옳은 줄 아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단순히 그들의 무지를 탓할 수는 없다. 실제로 직접 노력해 찾아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 젠더가 뭔데? 대체 페미니즘이 뭔데? 궁금해도 인터넷의 방대한 정보 속에서 옳은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어디서 배워야 할까? 책을 읽어야 할까?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편중되지 않은 지식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늘 갈증을 느꼈다. 배우고 싶은데 학교에는 마땅한 강의가 개설돼있지 않았다. 타 대학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여성학 강의나, 사회학 강의조차 우리 학교에는 없었고,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듣는 것들이 고작 내가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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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이번 학기에 "젠더 사회학 (Sociology of Gender)" 이라는 새로운 강의가 개설되었다. 이번 신입생들부터는 필수 교양 과목이었고, 재학생들 사이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강의였다. 나는 1교시 수업이라는 최대 단점에도 불구하고 개설된 직후 수강 신청을 했다.


젠더 사회학은 전반적인 젠더 이슈를 다룬다. 젠더가 뭔지, 사회적으로 어떤 논란들이 있는지,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등을 다루는 수업으로, 강의 후 토론으로 진행된다. 신입생들에게 필수 수업이라서 대부분 신입생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강의는 친절했고, 많은 예시와 매체를 활용했으며, 부담스럽지 않았다. 나에게는 듣고 싶은 즐거운 강의 시간이었고, 수업이 끝난 후 남는 게 많은 수업이라 좋았다. 내가 가진 지식을 정리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다른 학생들과 나눌 수 있는 유익한 수업이었다.

동기 중에서는 이 수업을 듣는 학생이 없었다. 나는 혼자 수업을 들으러 갔고, 총 3번의 수업 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대체 젠더 교육은 어떻게 실행되어야 할까?



sex와 gender가 왜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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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란 무엇인가"에 관한 수업에서 섹스와 젠더의 차이점에 대한 강의가 진행되었다. 생물학적 성인 섹스와 사회적/심리적 성인 젠더. 놀랍게도, 거의 모든 학생이 두 차이를 알지 못했다.

토론을 위해 임의로 짜인 조 내에서 학생들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게 그럼 젠더에 해당하는 거죠? 섹스가 아니라..." 강의를 통해 처음으로 접하게 된 듯한 모습에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보를 쉽게 얻지 못하나에 대한 생각을 했다.


*

모른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은 슬펐다. 사회의 변화에 앞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다수가 알지 못하면 간극과 소외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기사와 이슈 속 "젠더 감수성"과 같은 단어를 봐도 대체 "젠더"가 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맥락을 따라가기 어렵다. 결국 다시 이 문제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사회 운동의 핵심인 단결은 이로 인해 확장되지 못한다.

젠더가 무엇인지 모르는 학생들과 다짜고짜 하나의 이슈를 두고 찬반 토론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강의는 친절했다. 필수 교양이라서 억지로 들은 학생들도 "어? 내가 알던 게 전부가 아니었구나." 하며 강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학생들과의 토론은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일까"라는 주제로 조별 토론을 한 후, 강의를 마무리하기 전에 발표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섹스와 젠더의 차이점조차 처음 들어본 사람들이 많았지만, 발표 결과는 다채로웠다. 갓 대학생이 된 신입생들이 "젠더"에 대해 사람들과 대화해볼 기회는 흔치 않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회와 정보의 부족으로 참여하지 못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더 사회학 수업이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생각과 대화를 한다는 점에서 이 강의는 이미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수라니 완전 주입식 교육 아냐?



젠더 사회학 강의의 개설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소수의 학생들은 기독교 정신에 반한다고 말하며 절대 듣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또한, 필수 교양으로 만든 점에서 반발이 많이 일어났다. 주입식으로 가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주입식 교육"이 과연 이 상황에 맞는 표현인가 생각해봤다.


주입식 교육: 학생의 흥미, 의욕, 능력, 이해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선정한 소정의 교육내용을 학생에게 주입시키는 교수법



젠더 사회학이 필수 교양이 된 것이 주입식 교육이라면 대체 필수 교양 중 주입식 교육이 아닌 강의는 무엇이 있을까? 강의를 들을 생각이 없는 이들은 그저 논란이 많은 주제라는 이유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젠더 사회학 강의는 절대 "이건 이래서 옳아. 네 사상은 틀려."라고 말하는 수업은 아니었다.

수업의 진행 방식이나 자료, 교수님의 이야기 역시 편협한 것들은 없었다. 그저 정보를 제공하고, 주제를 제시한 후, 학생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

앞서 이야기했듯, 이 수업이 필수 교양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앞으로도 젠더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 일이 없는 학생들이 분명 많이 있다. 관심이 없어서, 혹은 그저 불편해서. 하지만 필수 교양 수업이었기에 들을 생각을 했고, 새로운 사고를 해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필수 교양 과목에는 여러 과목이 있다. 필수 교양이 필수인 이유는 꼭 필요한, 도움이 되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젠더 사회학이 필수 교양이 된 것은 우리 대학교가 한 단계 발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잘 알지 못해서 여론의 의견을 따르게 되고 또 다른 차별을 낳는 상황은, 이 과목의 개설에 대한 반응에서 역시 느낄 수 있다. 커리큘럼이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수업이 진행되는지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거부감을 드러내고, 다른 학생들에게 듣지 말라고 하는 모습은 정말 안타까웠다.



젠더 교육, 필요 없는 교육일까?



작은 대학교 내의 젠더 사회학이라는 과목 하나에도 학생들은 다양한 반응을 한다. 현실엔 더 많은 의견 차이와 무관심이 있다. 대부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틀렸다고 말한다.

그럼 이대로 괜찮을까? 제대로 알 길 없이 그렇게 이대로 알려고 하는 사람들만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옳은 방향일까? 이끄는 사람이 있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소수의 입장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를 바른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 모두가 알아야 한다. 모두가 알아야 궁극적인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다. 주입식 사상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의견을 가질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 접근성이 조금 더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사회 내의 정보격차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정보의 격차는 소외를 낳게 된다. 따라서 적절한 교육과 기회 제공은 한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

젠더 교육이 필수가 된 후 수강한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영향과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생각을 정리하고 나눈 후 분명 전보다 자신의 주관을 갖고 사회 이슈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기계적인 중립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자신이 무언가 목소리를 내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마찰이 생기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 서로 의견을 나눠야만 해결방안과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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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교육은 필요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지는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가 학교에서 수학을 배우고 국어를 배우듯,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젠더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젠더뿐 아니라, 정치, 종교, 철학 등에 대한 바른 정보 제공이 이뤄져야 한다. 젠더 사회학을 수강한 후에 느꼈다. 이런 교육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꼭 제공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열려서 받아들이는 건 자신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권이 확실하게 본인에게 있는 사회가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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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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