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SF는 스타워즈만 있는 게 아니었다 上 [공연예술]

SF 초보가 깜짝 놀란 SF물, 산책하는 침략자
글 입력 2019.08.2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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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접한 SF 물은 스타워즈였다.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관련 물품, 오마주, 패러디 등을 자연스럽게 접해 광선검, 아임 유어 파더, 요다, 우주 전쟁 등의 대략적인 포인트는 알고 있다. 이후에는 스타트렉 같은 것이 SF 물의 인상이 되었다. 우주에서 외계 생명체를 탐구하는 건 SF 물의 주요한 숙명처럼 느껴졌다.


SF가 과학적 사실을 더한 상상물을 뜻한다는 걸 안 후에도 내게 SF 물은 우주가 배경이거나 외계인이 나오는 종류의 이야기로 느껴졌다. 과학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늘 그랬다. 초등학교 과학 상상화 대회에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 사람의 일을 대신 해주는 로봇이 꼭 필요했고 금전 감각이 없던 나이였음에도 무시무시한 돈이 들어가는 게 과학이며 그 돈을 투자해야 나오는 이야기가 SF 물이라고 믿었다.


살다 보면 어릴 땐 극도로 싫어하던 마늘이나 깻잎을 어른이 되어선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믿음이 바뀌는 일이 생긴다. 이번에는 이 SF를 향한 비뚤어진 믿음이 깨진 일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처음은 2018년 겨울,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를 보았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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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물 연극. 거대한 UFO가 날아와서 광선 빔을 쏘는 걸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하더라도 관객과 배우가 우주라 약속한 무대에서 외계인이라 약속한 배우가 LED 검을 휘두르지 않을까 기대했다. 특히 '산책하는 침략자’처럼 어느 날 사라진 남편이 알고 보니 외계인이었다는, 어느 영화에서 본 거 같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SF 물은 더욱 더 화려하고 비싼 무대장치를 기대하게 된다.


관객석 기준 무대 왼쪽 앞은 건널목과 점자블록이 있고 뒤에는 다다미가 깔린 네모난 방이 있었다. 무대의 앞과 뒤는 도로를 묘사하듯 기다란 블록으로 이어졌다. SF 물이라기엔 지나치게 일상적인 무대였다. 평범한 무대는 실망보다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일상을 배경으로 어떤 SF가 나올까. 어떤 외계인이 연극적 상상 안에서 무섭게 침략을 해올지 궁금해질 때, 조명이 꺼졌다.


개념이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사과가 뭐냐고 묻는다면 누군가는 사과가 무엇인지 말하기 전에 우선 생각한다. 모양, 빛깔 같은 생김새부터 어떻게 재배하는지 어떻게 먹는지, 사과라는 단어에는 수만 개의 지식이 같이 포함되어있다. 단어 안에 이러한 개념을 포함해 사과를 깎다, 사과 농사가 풍작이다 등의 문장이 완성된다. 이때 사과, 라는 단어를 기표(記表)라고 하고 사과, 했을 때 떠오르는 성질과 모양 등 모든 개념을 기의(記意)라고 한다. 간단하게 기호를 표시하는 방식을 기표라고 하고, 기호에 내재하여 있는 의미를 기의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표를 말한다고 기의를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니다. 사랑, 질투, 공허 등의 추상적인 개념은 단어의 뜻을 안다고 의미가 바로 와닿지 않는다. 이유자돈, 우제류 등의 전문 용어나 이전에 알지 못하는 단어의 뜻 역시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 의미를 알 수 없다. 기표와 기의는 다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단어의 의미를 설명해주다 차라리 머릿속을 건네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 공연에서 외계인의 침략은 무시무시한 총으로도, 광선검으로도 아니다. 비폭력적이지만 인간에게 매우 해로운 방식이다. 우리가 모두 한 번쯤 해봤던 상상에서 시작한다.


외계인은 기표, 단어를 말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개념, 기표를 그대로 빼앗는다. 말 그대로 머릿속에 있는 추상적인 느낌, 개념, 의미를 모두 잘라서 가져간다. 개념을 빼앗긴 사람은 단어의 의미를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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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단어를 잊는다면 다른 단어로 대체할 수 있지만 개념 전체를 잊는다면 대체할 수도 없다.


회사라는 개념을 잊는다고 가정해보자. 개개인이 모인 거대한 상업적 이익 집단이 무엇인지 잊는 것뿐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어딜 가야 하는지, 물건을 만드는 곳은 어디인지 등등 모든 것을 잊게 된다. 회사의 개념을 모르니 돈을 벌 수도 없고, 회사 상사가 전화가 와 왜 무단결근을 했느냐고 물어도 이해를 하지 못한다. 매일 9시부터 6시까지 회사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사정이 있으면 미리 말해 연차를 써야 한다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집에서 쉬었을 뿐인데 누군가가 전화를 해 화를 내거나 타이르는 불쾌한 경험을 겪은 듯이 느낀다.
 

극 중에 가족이라는 개념을 빼앗긴 아스미는 제부인 신지가 그의 집에서 신문을 읽거나 질문을 하는 행위, 동생 나루미가 제부를 맡기는 일을 불쾌해한다. 이전과 달리 가족의 개념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친하기는 해도 타인이 된 나루미가 자꾸 남편을 맡아달라고 부탁하거나, 제부가 매일 집에 찾아와 이상한 질문을 하고 신문만 보는 걸 민폐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계인이 '-의' 소유격에 대해 물어보는 바람에 소유라는 개념을 모두 빼앗긴 마루오는 전쟁 반대 운동을 벌이게 된다. 내 것, 네 것이라는 소유가 없어지니 더 소유하기 위한 전쟁도 부질없다. 소유는 결국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이기 때문에 마루오는 소유를 잊고 모든 것에 자유로워진다.


공연 자체도 굉장히 재미있지만 내내 감탄한 부분은 언어의 활용에 관한 거였다. 언어란 단순히 말의 의미 이상을 지니고 있다.


괜찮다는 단어를 살펴보자. 괜찮아, 별로 안 좋아해. 그거 먹어도 괜찮아. 상황에 따라 사양의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좋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모두가 자주 사용해서 의식하지 못할 뿐, 언어는 굉장히 세심하고 예민하다. 예민한 언어를 사실적으로 사용하는 SF는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SF와 언어가 같이 엮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껏 존재한 중 가장 무서운 외계인이다. 대화를 주고받을 때 서로가 가진 개념이 완전히 다르면, 둘은 절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산책하는 침략자'의 외계인은 침략하기 전에 사전 조사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하지만, 침략할 때에 중요한 몇 가지 개념을 빼앗는다면 인간은 서로를 죽이고 증오하고 원망하다 죽을 것이다. 수많은 과거에 그랬듯이.


외계인이 서로 다른 개념을 빼앗아 인간끼리 서로 이해하지 못하다 마침내 파멸하게끔 시도하지 않은 것은, 개념을 빼앗는 행위에 거대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소유라는 개념을 잃은 마루오가 전쟁을 반대할 때 후배 하세베는 당신은 무엇에 반대하는지도 모르고 반대하고 있다고 일침 가한다.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도 모르면서 전쟁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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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불안, 걱정 등의 감정은 개념을 가져간다고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감정은 설명으로 전달해주기 힘든 단어다. 오로지 몸으로 겪어야만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기표는 기의를 정의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자주 쓰는 특정한 단어를 모아 사전이 만들어지고, 말할 때 자주 사용하는 특정한 규칙을 모아 문법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언제나 기의가 먼저고 그 뒤에 기표가 생긴다. 즉, 기표, 어떠한 단어를 모르더라도 기의를 알 수 있다.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도 끔찍한 상황을 겪었을 때 소름이 돋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날 수는 있는 것처럼.


다만 그런 감정을 뭐라고 지칭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묘사하지도 느낌을 표현하지도 못하다가, 기표를 알게 되면 그제야 심장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나고 손이 떨리는 일련의 행위가 모두 두려움이라는 것이구나, 알게 된다.
 

외계인인 카세 신지는 카세 나루미에게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빼앗는다. 이별의 순간이 왔는데도 나루미는 울지도 이별을 슬퍼하지도 않지만 신지는 오열한다.


신지는 사랑이라는 개념을 알기 전부터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고 있었다. 심장이 뛰거나 마음이 아프고, 너를 좋아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사랑은 좋아한다 이상의 감정을 동반한다. 상대가 잘못될까 걱정되고 날 좋아하지 않을까 불안하다. 상대에서 소중한 것을 빼앗는다면 슬프고 고통스럽다.


신지는 사랑이라는 개념을 빼앗아 이해하고 나서야 자신의 감정이 사랑임을 인지한다. 동시에 나루미가 그동안 신지에게 해준 모든 행동이 그를 사랑해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신지는 침략해야 하는 지구의 공기, 꽃, 나무, 건물, 사람들을 모두 사랑하는 걸 알아차린다. 단어를 알기 전에는 허공에 떠돌아다니던 감정이 단어를 찾자마자 피부로 와닿는다.


외계인이 서로 다른 인간에게서 개념을 빼앗아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면, 외계인이 그 개념을 가져야 한다. 때로는 신지처럼 처절하게 아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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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외계인이나 인외의 종족이 지구에 도착하면서 인간적으로 변하는 내용의 이야기는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이렇게 가슴 아프고 처절하며 '외계인다운' 이야기는 드물다. 차츰 사람들에게 적응하며 감정이라는 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기의는 존재했으나 기표가 없어 설명하지 못하던 개념을 비로소 이해했기 때문에 감정을 터뜨린다.


헬렌 켈러가 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간 기표와 기의를 연결하지 못하다 어느 날 풍선이 터지듯 물, 하고 기표와 기의를 연결한 것처럼, 신지도 사랑을 알고는 있으나 연결 짓지 못하다 감정을 빼앗으면서 기표와 기의를 연결한다. 개념을 빼앗는 외계인이기에 가능한 변화다.


공연을 보고 나니 SF 물의 정의가 변했다. 화려하지 않고 돈이 들지 않아도 된다. 꼭 야광봉을 휘두르거나 레이저건을 쏘아댈 필요가 없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독창적이고 정석적인 SF 물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 외계인의 출현, 인간의 위험, 전쟁, 사랑까지. '산책하는 침략자'는 SF 물을 즐기지 않는 내게 SF 물을 새롭게 볼 시선을 주었다.


2018년에 본 후 한참 다시 볼 날을 기다렸는데, 마침 8월 30일부터 다시 공연한다고 한다. 이전에는 SF 물에 대한 개념을 더욱 탄탄하게 바꾸어주었는데, 이번에는 어떤 개념을 늘릴 수 있게 될까. 꼭 신지가 된 기분이다. 그 기억, 내가 가져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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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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