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Summer Hill', 살아있는 것을 알기 위해 오르는 순간 [시각예술]

글 입력 2019.08.1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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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순간의 찰나를 포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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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갑작스럽게 마주하는 특성을 지닌 길의 한 형태다. 언덕길 앞에 여름을 붙여 단어의 어감만으로도 천천히 걸어야 할 것만 같은 '여름의 언덕 - Summer Hill' 전시다. 언덕길이 놓인 여름은 시각적으로 발산되는 자연환경의 싱그러움과 에너지가 공존하는 때다. 여름의 언덕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걷기 위해 조금은 시간을 들여야 하기에, 여름이 주는 밝은 힘을 얻을 수 있다.

우연한 마주함에서 밝은 에너지의 조합을 말하는 'Summer Hill' 전시는 김미영 작가의 개인전이다. 김미영 작가는 평소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찰나들을 추상적 표현기법으로 그려내고자 했다. 추상적 표현은 작가가 중요시하는 '우연성'을 나타내기에 알맞다.

계획적이고 정형화되어 있지 않아 더 많은 의미를 담아낼 여지를 만듦이 가능하다. 작가는 자유로움을 지닌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이 스스로 감상을 더 확장시키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 자유로움의 소재로 '여름날의 순간'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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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inter's Summer, Oil on Canvas, 45.5 X 3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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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inter's Garden, Oil on Canvas, 72.7 X 90.9cm


여름의 언덕과의 만남은 갤러리에 들어서서 바로 시작된다. 아트상품들이 진열된 선반들 중, 한 벽면에 <The Painter's Summer, 45.5 X 38cm> 작품이 걸려 있다. 인테리어와 생활에 필요한 상품들로 진열된 공간에 있는 작품은 생소한 곳에 놓여 있는 듯하다.

흰 벽면에 오롯이 걸려 있어야 할 미술작품이 여러 상품들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자리에 있는 이 작품은 자연스럽게 다른 상품들과 함께 하나의 공간 요소로 존재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위치하여 관람객들의 주의를 끄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아트상품 진열 공간에서 조금 들어가면 나오는 전시장을 가리키는 안내판 역할처럼 말이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작품이 가리키는 전시장 안에는 언덕길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수많은 작품들이 나온다. 그중, 아트상품 진열 공간과 같은 벽면을 사용하는 쪽의 작품은 그 경계선을 알리고 있다. <The Painter's Garden, 72.7 X 90.9cm> 작품이 위치한 곳에서 바로 앞을 보면 아트상품 진열 공간과 갤러리 입구가 한눈에 보인다.

언덕길에 올라서면 지니온 길이 보이듯이, 투명한 유리창 너머 갤러리 입구 밖은 갤러리에 도착하기까지의 길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첫 작품을 마주하며 느낀 첫인상으로 전시장에 들어서게 한 아트상품 진열 공간이 <The Painter's Garden, 72.7 X 90.9cm> 작품과 함께 한 시야에 담아진다. 실제 계절도 여름인 것을 고려하면, 전시 초입의 위 두 작품은 여름날의 에너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전시장 안으로 걸음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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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inter's Summer, Oil on Canvas, 72.7 X 60.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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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inter's Summer, Oil on Canvas, 91 X 117cm
  

여름날의 에너지에 스며든 작품들은 전시 명인 'Summer Hill- 여름의 언덕'을 구성한다. 작품들은 모두 여름날의 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The Painter's Summer, 72.7 X 60.6cm>은 바로 옆 유리 벽면에 작품이 빛에 반사된 형태를 보인다.

실제 작품은 전시장 안에 있지만, 반사된 작품은 전시장 밖 여름 풍경 속에 놓여 있다. 작품의 색감과 추상화된 표현은 밖의 여름 풍경과 조화를 이룬다. 여름 풍경의 생명력을 그대로 흡수하고 있는 풍경 속 작품은 전시장 내 작품으로 재등장한 느낌마저 준다.

마찬가지로, <The Painter's Summer, 91 X 117cm>의 양옆 투명한 벽면에 비치는 여름 풍경은 작품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생명력을 가진 계절인 여름의 특성답게, 캔버스는 물감을 덧대 바른 입체화된 형태들과 붓질들로 어디론가 향하는 역동성을 드러낸다. 그 방향은 모두 제각각이며, 조명에 의해 반짝이는 표면은 움직임의 찰나를 고정시켜 역동적 에너지를 캔버스에 압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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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Hill, Oil on Canvas, 190 X 17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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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inter's Garden, Oil on Canvas, 112 X 145cm


생명력 넘치는 여름의 에너지를 한 캔버스에 고정시킨 만큼, 작품의 추상적 표현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순간으로 나타난다. 이 에너지는 여름날에 경험한 특별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거나 연관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Summer Hill, 190 X 170cm>은 전시장 내에서 가장 큰 작품 크기로, 역동적인 에너지에 압도되는 기분을 들게 한다. 사람의 키보다 큰 작품은 어느 하나 정형화된 패턴이 없다.

<The Painter's Garden, 112 X 145cm> 또한 작품의 표현들이 어디론가 향하며, 각기 다른 색깔들이 서로의 영역을 파고들듯 소용돌이친다. 거대한 비정형성의 순간 앞에서는 현재의 여름과 과거의 여름, 미래의 여름 모두를 아우르는 일련의 경험들이 떠오른다.

형태의 비정형성은 그 여름들이 만들어낸 복잡한 이야기들을 엮어내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여러 색깔들의 형태는 경험을 통해 느낀 감정의 영역을 세밀하게 반영시킬 수 있다. 한 단어로 모든 경험과 감정의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추상적 표현으로 복잡하게 표현한 'Summer Hill' 작품들은 경험의 순간들을 편안히 떠오르도록 돕는다.

여름날의 생명력을 포착한 작품들이 관람객들의 여름날을 붙잡는다. 즉, 작품에 고정된 형태가 아닌 움직이는 형태를 표현하여 관람객들의 상상력이 개입되도록 여지를 남겼다. 캔버스 위에 물감이 마르기 전 덧대어 물감의 입체형태를 만들고, 화면의 배경을 칠한 붓 자국은 다른 색과 섞이어 또 다른 색을 나타낸다. 캔버스 위 재료들이 화면을 구성하기 위해 서로 관계를 맺어나가는 듯한 과정처럼 보인다.

이는 여름의 특별한 생동감이라는 에너지를 생각하도록 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천천히 하도록 이끈다. 마치 언덕길을 오르기 위해 천천히 시간을 들이는 것과 같다. 작품들이 주는 불완전한 형태에서 자신의 경험들을 순간들로 다시 마주하는 힘과 여유로움을 우연히 얻어 가도록 한다.

'Summer Hill' 전시는 이 순간을 선물하기 위해, 관람객들이 이 언덕으로 걸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순간들로 되돌아보며 누구보다 생명력 있는 살아있음을 확인하여 다시 순간으로 남기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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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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