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간판사회에서 마주하는 낙선, 불합격, 차별 [도서]

장강명 르포르타주 『당선, 합격, 계급』
글 입력 2019.08.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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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면 뭐 먹고 살지?’

2학기 시간표를 짜다가 문득 든 생각이었다. 졸업 요건을 채우기 좋은 시간표를 만드는데 익숙해질 즈음, 나는 고학년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대학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점차 실감 났다. 1년 동안 휴학을 했던 나와 달리, 마지막 학기만을 남겨둔 채로 취업 준비에 매진하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질문에 대한 답을 정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에 서서히 짓눌리기 시작했다.

사실 졸업 이후의 삶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당최 모르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 앞에서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다. 여기에서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글 쓰는 삶을 사는 거라고 대답할 것이다. 좀 더 큰 포부를 말하자면 언젠가는 꼭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 꿈이라는 거 참 아름답고 좋지 않은가.

다만 모든 문제는 자신을 객관화할 때 발생했다. 당장 졸업한 뒤에 전업 작가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준비되어 있는가? 아니다. 남들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이 있는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재능은 딱히 없다. 그렇다면 습작을 써서 공모전에 내보는 건 어떤가? 그런 방법도 있긴 하다.

그런데 반드시 공모전을 통해서만 작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걸까? 질문이 끝없이 쏟아졌다. 나는 질문 앞에서 앞으로 쉽게 나아가지 못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서서히 듣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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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 길이 막연하고 불안했다. 채용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험처럼 정해진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회로를 찾아보기도 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글로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낸 직업은 무엇이든지 고고익선(高高益善)을 요구했다. 토익이며 자격증 고득점은 기본이고, 논술과 작문 같은 각종 시험, 그리고 면접까지 존재했다. 과연 덜 불안할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결정해도 될 일인지는 의문이었다.


한편으로는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나는 언제부터 뚜렷한 기준과 정답이 있는 삶을 ‘편하다’고 생각한 걸까? 그리고 다른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장편소설공모전이든, 공채 제도든, 대학 입시든 어떤 ‘관문’을 통과해야만 할까?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면 좁은 성문을 뚫어야만 할까? 이 모든 과정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설가 장강명의 르포르타주 『당선, 합격, 계급』은 앞서 나열했던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준 책이었다. ‘당선’과 ‘합격’이라는 제도가 사회적 신분으로 굳어지며 계급화되는 메커니즘을 이 책에서 밝혀내고 있다. 특히 작가는 2010년 이후 문학공모전 최대 수혜자인 동시에 기자 출신이자 대기업 공채에 합격한 바 있다. 자신의 화려한 ‘간판’을 이용해서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고발한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간판에 대한 집착


문학공모전과 공개채용 제도의 공통점 중 하나는 굉장히 한국적인 제도라는 점이다. 대규모 동시 시험을 치러서 인재를 뽑는 형태는 옛날 과거시험의 맥을 이어오는 듯하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뽑는 곳은 한국 말고는 별로 없다고 한다. 안정성이 높고 공정하며, 스페셜리스트보다 ‘제너럴리스트’를 뽑기에 최적의 시스템인 건 맞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역동성을 잃어 가는 건 상당 부분, 이 제도 때문이라는 저자의 지적에 깊이 공감한다.

문은 좁지만 들어가려는 사람은 많다 보니 준비 기간은 나날이 늘어간다. 시험에 합격하는 순간 신분 상승이라는 달콤한 보상을 받게 된다. 한 번 통과한 사람은 지망생들의 세계로 떨어지지 않는 경직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국가고시, 대기업 공채, 명문대 입시가 그렇다. 대다수의 사람은 시스템이 그럭저럭 제 기능을 한다고 여긴다. 어쨌거나 한국 사회에 너무나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경계 밖의 삶은 팍팍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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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시험을 통해 얻은 간판의 힘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당당하게 살려면 그 신비로운 권위인 ‘간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던가. 누군가는 이성을 보는 기준에 학력을 넣기도 하고, 예비 배우자 집안에서 인정받는 정도까지 달라진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부문에서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이 조금 더 낫겠지.’라는 정도로만 생각해도 배제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고백하자면 필자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속으로는 간판에 휘둘리기도 했다. 이런 생각들이 차별과 배제를 수없이 낳았을 생각을 하니 속이 울렁거렸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달고 있는 간판의 가치가 어느 정도 나가는지 따지는 일이 얼마나 기괴한지. 더는 속물적이고 음흉한 위선자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간판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세바시 943회 <공채시험으로 과연 인재를 뽑을 수 있을까요?>


‘대학 입시 고득점자=명문대 출신=일 잘할 것 같은 사람’

위와 같은 거친 등식은 우리 사회에서 널리 통한다. 저자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다른 평가 방법이 딱히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대학 졸업장은 마치 ‘품질보증 마크’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명문대 마크가 찍히는 순간, 노동시장에서 좋은 기회를 비교적 쉽게 얻는다. 그런 간판이 없다면 자기 실력을 제대로 증명하는데 한계가 있다.

섬뜩한 건 간판의 중요성이 높아질수록 인간의 가치를 상징하는 데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그때 ‘좋은 대학’을 가는 건 단순히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존재 증명을 위한 투쟁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간판에 집착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간판 이외의 길을 모르기 때문이다. 간판의 힘은 정보 부족으로부터 나온다.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서 모험을 떠날 수가 없다. 그렇게 발생하는 기회비용을 누구든 꺼릴 수밖에 없다.

독자나 출판사가 등단 작가를, 구직자가 대기업을, 기업이 명문대 졸업생을 선호하는 이유는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차원의 해결방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시스템에 굴복하지 않는 삶


인정하기 싫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때로는 삶의 기준을 타인에게 맞출 때도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잘 속일수록 엇나간 선택을 하게 되었다. 앞서 필자가 우회로를 찾았던 것처럼 말이다.

어른이 될수록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 하지만 정해진 틀에 맞추는 동시에 인정을 받으려는 건 너무 벅찬 일이다. 타인의 인정이 대체 무엇이길래 ‘간판’에 집착하고, 더 나은 신분을 얻으려고 애쓰는 건지. 잘못된 인식으로 누군가의 삶을 배제하려고 했던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사람의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환상인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어떤 시대가,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는데, 그때 필요한 능력을 어떻게 미리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시스템에 굴복하지 않는 건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구조의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고,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갈 힘을 얻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계속 글을 써봐야겠다. 어떤 길로 가든, 적어도 글을 써야만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타인까지 지켜낼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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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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