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단 책을 가방에 넣자 [도서]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대해보자
글 입력 2019.07.30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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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부상이다. 이는 많은 짐을 이고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상인을 일컫는 말이지만, 요즘은 보부상 마냥 많은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외출할 때마다 거의 여행 가방급의 짐을 가지고 나가는 내가 처음 친구에게서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건 나의 ‘혹시 몰라 병’ 과 관련되어 있기도 한데, 그 예시로 ‘혹시 몰라 나갔는데 비가 올지도!’, ‘혹시 몰라 오늘 먹을 저녁이 너무 맛있어서 과식하게 될지도!’등을 들 수 있다.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 날씨에도 나 홀로 우산을 들고나가거나, 가방에 소화제, 타이레놀 등의 비상 상비약을 넣고 다닐 때가 많다. 보부상의 좋은 점이라면, 갑자기 어떤 상황이 일어나도 필요한 물건들이 항상 가방에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한 가지 있다. 가방이 매우 무겁다. 가방에 든 물건만 스무 가지가 넘어가니, 에코백을 매고 나가는 날은 어깨가 기운다 싶을 정도로 무거운 무게가 된다.

 

올해 들어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 가는 일이 많이 생겼다. 나는 어디서 출발해도 서울까지 한 시간 반이 걸린다는 경기도에 살고 있는데, 오고 가며 생기는 세 시간 동안 책을 읽자 다짐하고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한 달 정도,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다 보니 아주 큰 단점을 알게 되었다. 가방이 더 무거워진다. 나는 당황했다. 가방의 무게를 줄이고자 다른 물건들을 두고 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나 나름의 해결책을 찾았다. 가벼운 책을 가지고 다니자.

 

지금부터 내가 가지고 다니며 읽은 가볍고 작은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도서출판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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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작고 가벼워서 언제 어디서나 편히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듭니다.' 라는 내용의 출판사 소개 글이 쓰여있다. 정말 그 글 그대로다. 유유의 책은 작고 가볍다. B6의 판형인데, 책의 세로를 손으로 재어 보았을 때 내 손 한 뼘보다 조금 더 컸다. 무게도 보통 200g 정도로 몹시 가벼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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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진열된 무수히 많은 책 가운데, 유난히 독특한 표지가 눈에 띄어서 처음 유유의 책을 사게 되었다. 표지가 대게 간결하면서도 직관적인 편인데, 책의 아이덴티티를 잘 살리는 표지의 디자인이 유유만의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낸다.

 

또한 유유는 독자의 공부를 돕는 교양서를 만드는데 주력하는 출판사이다. 공부, 고전, 중국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자칫 어렵게 느낄 수 있는 주제를 담담하면서도 쉬운 문체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독특한 표지와 솔직한 제목에 반해 책을 한 장 두 장 읽다 보면, 앉은 자리에서 책을 완독할 수도 있다.

 

<어휘 늘리는 법> 의 경우, 내가 이미 나의 어휘력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몰입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은 제목과 달리 어휘 늘리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여러 예시를 통해 어휘의 가치와 중요성을 피력한다. 이런 구절이 있다.

 

 

 

 

별생각 없이 무의식중에
쓰고 있는 말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말은 인식을 반영하는 매개체 이므로

끊임없이 자신의

인식 체계를 들여다보고

바르고 정확한 뜻이 담긴 말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휴대폰에 네이버 사전 어플을 설치했다.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어서 단어를 검색하기 위해 설치한 이유도 있지만, 국어사전도 큰 이유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거나, 대화 중에 사용한 미심쩍은 어휘를 검색해 보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처음에는 확인의 목적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의미가 맞는지, 혹시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유의어를 본다. 비슷한 뜻을 가진 말 중에는 내가 아는 말도, 모르는 말도 있다. 이렇게 내가 사용하는 어휘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어휘가 확장되고 있음을 느낀다.

 

유유의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개인적으로 <어휘 늘리는 법> 이 유유가 지향하는 목적에 가장 가까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고 단단하게, 재미있게 - 유유의 책에는 200g, 그 이상의 단단함과 재미가 담겨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장의 주인이 문장을 쓰는 내가 아니라 문장 안의 주어와 술어라는 사실이다. 문장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고 쓰면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넘어가게 되거나(왜냐하면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문장의 기준점을 문장 안에 두지 않고 내가 위치한 지점에 두게 되어 자연스러운 문장을 쓰기가 어려워진다.


<어휘 늘리는 법> - 언어가 사유를 이끌어 가는 측면이 있다면, 어휘량이 많은 사람이 더 풍부하고 깊이 있는 사유를 할 수 있으리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어휘를 익힌다는 것은 교양을 넓히는 일일 뿐 아니라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기르는 일이 된다.


<리뷰 쓰는 법> - 가치를 전달하려면 자극이 필요합니다. 아무 맛도 없는 수프는 누구도 먹지 않습니다. 독자가 ‘어?’ 하고 생각하게 하는 의외성 또는 ‘어, 정말 그럴까?’ 하고 놀라게 하는 정보의 수준 등 글에 대한 궁리 없이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독자들이 글쓴이인 ‘나’를 투명하게 지나치지 않아야 합니다. 지식, 경험, 착안점 등 어딘가에 ‘나’ 만의 특징이 드러나도록 의식해 봅시다. 누구나 아는 것, 누구나 경험해 본 것을 누구나 느낄 법하게 쓴다면 자극은 불가능합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글을 쓰는 의미가 없습니다.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컨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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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집니다> 표지 제목 아래에 항상 쓰여있는 이 문구는 컨셉진의 슬로건이자 모토이다. 컨셉진은 이 모토를 전제로, 일상을 다루는 월간지이다. 설렘, 휴식, 낭만, 운동 등…  매달 잡지의 주제는 다르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같다. 이 주제가 독자의 일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가? 이 질문에서 Yes의 대답을 얻은 주제만이 컨셉진의 컨텐츠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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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진은 유유의 책보다 훨씬 작다. A6의 사이즈인데 쉽게 말해 손바닥만 하다. 독자의 일상 가까이에서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느 가방에나 쏙 들어가서 언제 어디서나 꺼내볼 수 있도록 미니멀한 크기로 만들었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주제의 호수 만을 골라 읽다가, 최근 컨셉진을 정기구독하게 되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으면, 어느 날 선물처럼 컨셉진이 도착한다. 컨셉진이 도착하면 그 달의 주제를 확인하고 책상 위에 올려둔다. 읽지 않고 고이고이 모셔 두다가 외출을 하는 날 가지고 나간다. 보통 어떤 목적지에 가는 동안에 다 읽는 편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꺼내서 좋았던 내용을 또 읽는다.

 

정기구독을 하면 좋아하는 주제만 골라서 읽을 때와는 달리, 잡지가 내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주제를 알 수 없다. 그래서 가끔 그 달의 주제가 흥미롭지 않을 때도 있지만 분명 좋은 점이 있다. 6월의 주제는 청소였다. 평소 청소와는 담을 쌓고 살던 나는 잡지에 실린 청소 커리큘럼을 읽고 난 후 ‘청소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소박하게나마 내 방 책상 위를 정리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관심 두지 않았던 일상이 컨셉진을 통해 새로운 가치로 느껴지니 신기하다.



<conceptzine vol.70 당신은 행복한 소비를 하고 있나요?> - 새로운 물건을 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항상 짜릿하다. 이때 조금 더 행복한 소비를 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는데, 당장 쓸 일이 없는 물건을 사는 일이다. 가령 햇빛이 쨍쨍한 날에 색이 고운 샛노란 우산을 사는 거다. 그러면 이 우산을 쓸 날이 기다려지고, 그 날까지 설레는 마음을 품고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 이런 사소한 기대감이 무료하고 잔잔한 일상에 작은 원동력이 되곤 한다. - 이현지


<conceptzine vol.42 당신은 아침을 어떻게 보내나요?> - 그녀의 말처럼 우리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듯, 저마다 정의할 수 있는 아침이 있다. 내일도 미화원 아저씨들은 힘 있는 비질로 새벽을 깨우고, 학생들은 엄마에게 등짝을 맞고 일어나 겨우 지각을 면하고, 나는 늦게까지 글을 쓰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아침을 보내면 된다. 어느 대학 교수는 지각을 한 학생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있듯이 일어나지 못하는 아침이 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아침을 지키고 있으면 되는것이다. 윤진이 매일 아침을 기록하는 것처럼.


<conceptzine vol.44 당신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요?> - ‘And so it is…’ 노래의 첫 가사가 바람에 부서져 마음에 쏟아진 날을 기억한다. 원하던 대학의 낙방 소식을 듣고는 하굣길에 자전거를 타고 안양천을 따라 한강에 갔다. 멍하니 물결을 보다 노을 질 무렵에 집으로 페달을 밟았다. 그때 MP3에서 Damien Rice의 ‘The Blower’s Daughter’가 흘렀다. 그의 목소리는 노을빛과 닮아있었다. 노래가 절정을 향해 갈 무렵, 잠시 한 손을 갈대 무리에 대었더니 갈대들이 말없이 하이파이브를 건네는 것만 같았다. 너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는 이 슬픈 이별 노래의 후렴구는 내게 낙심 때문에 인생에서 손을 뗄 순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슬픔이 또 다른 슬픔과 닿을 때 아픔은 조금 덤덤해졌다. 언젠가 위로도 뚫어낼 수 없는 시간이 온다면, 나는 이 곡을 가까이 두고 바람처럼 시간을 달릴 것이다. - 장현수



 


마치며



애초에 책 표지를 넘기는 것 자체를 도전으로 느끼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 책의 표지를 넘기면 마치 이 책을 다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작고 가벼운 책은 진입 장벽이 낮다. 엄청난 두께가 주는 공포도 없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펼칠 수 있다. 책도 사람과 같이 덮어두고 멀리하면 다시 가까워지기 어려울 것이다. 가까이 두고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보자.



 

[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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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이현지
    • 앗 컨셉진 이야기가 나와서 집중해서 봤더니 제가 보냈던 사연이 실려 있네요!ㅎㅎㅎ이렇게 같은 사이트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니 신기해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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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03 16: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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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지우왕ㅋㅋㅋ 신기해요! 저두 샛노란 오리우산을 산 뒤로 비오는 날이 기다려지더라구요! 되게 공감되는 사연이라서 발췌했는데 이런 우연이 있네용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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