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말을 세 번 반복해서 듣는 일 [사람]

팟캐스트 방송 10회를 맞이하며
글 입력 2019.07.22 01:2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뭔가를 하려 할 때마다 나를 소개하라는 흰 종이를 받아든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나를 소개하기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이 일에 내가 적합한 사람인지 증명해 보이는시험지에 가까웠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 또한 불가능에 가깝지만, 시험을 보는 자세로 나 자신을 소개하는 일은 꽤 곤혹스럽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나도, 주변 친구들도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켜졌다. 각자 취업 혹은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면서 어딘가 허전해지는 마음을 채우고자 함께 해볼 만한 일을 도모했다. 그렇게 올봄,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공이나 관심 분야가 다른 세 명이 모여 인문학, 문화예술, 사회학 등 여러 가지 분야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플랫폼에 올렸다.


초반에는 어려운 점들도 꽤 있었다. 각자의 일과 병행하는 것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 다시 녹음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특히 청취자들이 이 방송을 듣는 게 시간 낭비가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매주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누는 일이 즐거웠기에 꾸준히 지속해나갈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응원의 말들, 그리고 셋이서 함께 책임지며 만들어가는 콘텐츠라는 생각이 심적인 부담을 덜어주었다.



[포맷변환][크기변환]제목 없는 그림.jpg

20대 여성들이 주로 듣는다는 통계 결과가 나왔다



우리 팟캐스트는 수입이 없는데, 다행히 지출도 거의 없다. 일단 Y의 자취방에서 녹음을 진행하므로 따로 장소 대여비가 들지 않는다.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Y 방의 모든 전자 제품들(대표적으로 냉장고)을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할 때 마음이 불편한 것 빼고는 만족스러운 환경이다.


썸네일 이미지는 파워포인트로 약 5분 만에 만들었고, 홍보는 각자 주변 사람들에게 방송이 개설되었음을 알리기만 했다. 편집은 매주 돌아가면서 맡고 있는데, 잡음이 들어갔거나 실수한 부분만 자르고 말한 것 대부분은 그대로 살리는 편이다. 이렇듯 전체적으로 자급자족 시스템에 의해, 서로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느슨하게 돌아가고 있다.




함께 읽은 책에 대해 논하는 시간


 

[크기변환]DKJ96gzVoAAcxo7.jpg
 

지금까지 했던 주제들을 되돌아보면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다룬 7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읽으면서 밑줄 그었던 구절들을 서로 나누고 이 책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나'의 일이자, '나'의 고민이었던 것이 곧 '우리'의 것이 되어감을 느꼈다.

단순히 머릿속으로 떠올리기만 했던 것들이 말 되었을 때 생기는 그 힘은 생각보다 더 컸다. 어떤 말은 울분이 되기도, 또 어떤 말은 다짐이 되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페미니즘에 대해 비슷한 의견을 가졌을 것이라 여겼던 우리도 서로 조금씩 다르게 보는 지점들이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새로운 자극이 되어 또 다른 논의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나의 말을 세 번 듣는 일



녹음을 하다 보면 매주 나에 대한 것들, 내가 앞으로 해나가고자 하는 것,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게 될 때가 많았다. 그것을 내가 말함과 동시에 듣고, 편집하면서 한 번, 마지막으로 완성본이 업로드되고 또 한 번 들었다. 적으면 두 번, 많으면 세 번 이상을 듣게 되는 셈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내가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감이 쌓여갔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나의 지향점이 팟캐스트 방송 안에서 구체화되고 확인되었다. 나아가 그것을 어떤 형태로든 실행해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매회 즐거운 마음으로 나눈 이야기들이 내 안에 중요한 일부가 되어감을 느꼈다.



[크기변환]KakaoTalk_20190722_024137960.jpg
 


이미 오랜 시간 함께해온 사람들과 뭔가를 해나간다는 것 자체가 마음을 풍족하게 해주었다.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여기저기 흠집 난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를 내보이면서 그 자체를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함께하는 이들의 애정 어린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고, 서로에 기대어 마음속 빈 곳을 채워나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팟캐스트를 시작한 지 어느덧 서너 달이 지나 10회째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도 방송을 만들고 듣는 이들 모두의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김주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