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의 세 가지 모양, 한낮의 피크닉 [영화]

2019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옴니버스 영화 '한낮의 피크닉'
글 입력 2019.07.13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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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낮의 피크닉은 세 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된다. 영화를 연출하신 세 감독님과 배우분들, 이동진 평론가님과 대화를 할 수 있는 GV(Guest Visit)로 예매해서 보고 왔다. 내가 보고 듣고 감상을 나눈 것의 기억을 더듬어 작성했다.




1. 돌아오는 길엔 (강동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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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길엔 포스터와 스틸컷



딸이 유학에서 돌아온 기념으로 캠핑을 떠나는 가족은 가는 길부터 티격태격한다. 캠핑장을 가서 텐트를 치며 네가 맞네 내가 맞네 싸우는 모습은 어쩐지 익숙해서 웃음이 나왔다. 애써 친 텐트는 성인이 된 아이들과 부모 넷이 나란히 눕기 어색하다.


갓난아기와 함께 캠핑장에 놀러 온 온몸에 타투를 한 젊은 부부를 보며 엄마는 딸에게 너는 저런 거 없지?라며 묻고 딸은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나 딸은 부모에게 들킬까 젓가락으로 담배를 피우고, 자는 동안 말려 올라간 티셔츠 밖으로는 타투가 보인다.


바람을 피우는 듯한 아빠를 추궁하는 엄마와 항상 그래왔듯 자리를 벗어나는 아빠. 아들이 다가가지만 회피해버리는 아빠와 우는 엄마를 위로하는 딸.


그러다가 텐트에 불이 붙는다. 조금 전까지 싸우던 가족들은 불 앞에서 하나가 되어 불을 끈다. 진실된 소통은 어렵지만, 위기에서는 하나가 되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애써 친 텐트가 무색하게 좁은 차 안에서 잔다.


여행의 끝자락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다들 말이 없다. 내가 떠난 여행의 끝에 그랬듯 각자 여행을 곱씹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진심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통찰한다. 그들은 서로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관계를 지키고 싶기 때문에 서로에게 진실을 숨긴다. 누구보다 가깝지만 때로는 누구보다 먼 사이, 그럼에도 이어지는 ‘가족’이라는 관계성에 대해 불이라는 위기 앞에서 하나가 되는 가족을 보며 공감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엄마가 젊은 새댁과 이야기를 나눈 후 차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던 순간이다. 이때 차창에 비친 엄마는 묘한 표정이었는데, 그 장면이 궁금했던 내 친구가 강동완 감독님께 질문을 했다. 그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나요? 차창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으로 지나간 세월을 보고 있다는 대답을 받았다. 그 말은 이렇게 들렸다. 지나간 세월을 볼 수 있는 방법이 고작 차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뿐이라고.


보면서 우리 엄마 생각이 났다. 나는 엄마의 애정을 끊임 없이 갈구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더 이상 그 만큼의 애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나의 삶을 사느라 무지 바쁘게 되었다. 반 평생 자식들을 위해 돈과 시간과 애정을 쓴 우리 엄마는 올해 50살이다. 요즘 엄마는 내가 추천해 준 책을 열심히 읽고 유튜브를 보고 가방을, 모자를 만든다. 이제야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안쓰럽기도 하고 기분이 몽글몽글하다. 앞으로 엄마가 보낼 시간들을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영화 속 엄마를 비롯한 많은 엄마들을 응원한다.



 

2. 대풍감 (김한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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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풍감 포스터와 스틸컷


대풍감은 울릉도에 있는 절벽이다. 10년 전 헤어진 아버지를 찾으러 울릉도에 온 재민을 뒤따라 온 연우와 찬희. 그 덕에 얼떨결에 여행이 된다.


영화 속에서 민박집 주인은 세 청년에게 말한다. 대풍감의 절벽 끝에 줄을 매달아 놓은 배는 바람을 기다린다고. 바람이 불어주기만 하면 한 번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암에 걸린 어머니에게 10년 전 헤어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야 하는 재민, 배우 지망생인 찬희,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괴롭지만 친구들의 고민에 비하면 고민도 아니라며 무시당하는 연우. 세 친구는 대롱대롱 대풍감 절벽 끝의 줄에 매달린 배들과 같다. 제 나름의 고통을 안고 울릉도로 여행을 온 세 친구는 감성에 젖어 밤새 술을 마시고, 나란히 토한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누가 더 힘들어 죽겠는지 대결하는 ‘죽겠다’ 게임을 하는 세 친구가 술 기운을 빌려 각자의 고통을 말하는 장면과 머리 위에 친구들이 얹어준 전구를 얹고 달려가다가 엎어진 경수가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엎어져 우는 장면이다. 아름다워 보이는 청춘들은 사실 모두 죽겠는 마음이라는 것 그리고 넘어져서야, 넘어진 김에야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는 경수가 마음에 깊이 남는다.


어떤 가느다란 보이지 않는 실같은 희망을 믿고 벼랑 끝에 줄을 잡고 매달린 배가 나 같아서, 또 같이 영화를 보러 가 내 옆에 앉은 내 친구 같아서, 우리 모두 같이 흔들리는구나 하고 위로가 됐다. 그럼에도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함에 고마웠다. 세 친구들에게 바람이 불기를, 우리의 배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애틋한 마음으로 바랐다.



 

3.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임오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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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포스터와 스틸컷



상담을 하러 간 우희가 상담가로 보이는 사람에게 자꾸 헤매는 것들이 자신을 찾아온다고 털어놓는다. 심지어는…이라고 말하며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트를 다녀온 우희 앞에 친구 영신이 1년 만에 연락도 없이 나타난다. 얼떨결에 집에 들이닥친 영신은 이혼할 거라며 줄곧 남편 욕을 쏟아낸다. 우희는 영신과 함께 달리기를 해주고, 술을 마셔주고 자신의 공간을 내주며 성심성의를 다해 맞장구를 쳐준다.


영신은 우희의 집에 머문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던 영신은 우희 집 창문 너머로 옥상에 방치되어 목줄을 하고 있는 개를 본다. 개는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아 달라는 듯이 하루 종일 낑낑댄다. 영신은 우희와 함께 앞 집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한다. 당신을 찾는 개를 봐 달라고.


우희와 영신은 오랜만에 만나 즐겁게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우희가 영신의 남편을 욕하자 어느새 화난마음이 가라앉은 영신은 그래도 “네가 내 남편을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라며 태도를 바꾼다. 참아왔던 설움이 폭발하고 우희는 영신에게 처음으로 화를 내며 감정을 드러낸다. 영신은 다시 자신의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언제든 자신이 필요하면 전화하라는 말을 남긴다.


다시 상담을 하는 장면. 감정을 드러내면 자신은 주체할 수없이 힘들어 질거라며 감정을 감독해왔다는 우희에게 상담가 선생님은 말한다. 감정을 드러내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자꾸 깨달아야 한다고.


우희는 영신에게 전화한다. 나 지금 네가 필요해. 우리집으로 와. 메시지를 남긴다. 그리고 개를 구하러 간다. 우희를 찾아온 영신의 밝은 목소리가 들리며 영화가 끝난다.


개는 의미한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 필요에 의해 관계가 유지된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일방적인 필요가 아닌 서로의 필요에 의한 관계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가 한 방향이 되면 한 쪽은 방치되기 마련이다. 옥상의 개처럼. 우희처럼.


우희가 감정을 드러내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 또 더 친밀해질 수 있다는 것을 영신이 깨닫게 해주기를, 그렇게 서로를 계속해서 필요로 하기를. 더 많은 관계들이 이 영화를 보고 느꼈으면 하고 바란다.



피크닉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세 영화 모두 각자의 의미로 나에게 짧은 피서를 갔다 온 것 같은 행복감을 줬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엔 같이 갔어도 느끼는 게 다 다르고, 친구들과의 치기 어린 여행은 청춘의 증거이며, 나를 찾아가는 여행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세 영화를 보며 느꼈다.


한낮의 피크닉이라는 제목의 한낮은 해가 쨍쨍해 날이 밝은 의미도 있지만 뜨겁고 견디기 힘든 여름의 한낮도 있다고 GV담당자는 말했다. 고통스러운 한낮을 피크닉이 견디게 한다. 여행은 인생에서 없어선 안되는 것임을 또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음을 한낮의 피크닉을 보며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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