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공연예술]

글 입력 2019.06.2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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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포스터]고도를 기다리며_1905059-190602.jpg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지난 달, 명동예술극장에서 재상연된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하게 되었다. 극장에 들어섰을 때 한 그루의 나무만이 황량한 무대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 텅 빈 공간을 가득 메우던 공허함과 쓸쓸함은 작품에 대한 첫인상이 되었고, 연극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들었던 마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나누는 대화, 왜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고도를 기다리는 두 광대. 그렇게 무한히 반복되는 순환의 고리를 끊고 나오는 인물 하나 없이 극은 진행되었다. 연극을 보고 나서 다음과 같은 시가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 기형도,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잎 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사, 1994)


고도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고도가 오면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다림이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다림이라는 희망이 그들의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건 아닐지, 그렇기에 길 위에서 중얼거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건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금 꺼내 본다.

[크기변환]y.JPG
 


전후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며>는 전통적 극작법에서 벗어나 연극 고유의 수법으로 인간존재에 접근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작가 사무엘 베케트는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1969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떨쳤고, 대종을 이룬 사실주의 연극이나 자연주의 연극에 반기를 들고 내면의 생각과 사상의 초자아를 다룬 이른바 앙티테아트르(anti-théâtre)라 불리는 부조리극의 개척자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남프랑스의 보클루즈에서 숨어 살면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자신의 상황을 인간의 삶 속에 내재된 보편적인 기다림으로 그린 작품이 바로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배우들의 무의미한 대화들, 우스꽝스러운 몸짓, 무대 설정으로 주목받았다. 극 중에서 등장인물이 시간과 공간의 현실성을 잃고, 언어의 전달 능력을 상실하는 등 행위의 의미를 해체하는 부조리성을 연기했다. 이런 연극 기법을 통해 관객들에게 ‘인간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목적 없이 표류하는 존재’임을 암시했다.

고도의 전갈은 현재에 나타날 수 없지만 미래에는 나타날 것이라는 소식이기에 기다림의 상황은 필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자’고 외치치만 움직이지 않는 것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 사이 고도가 나타날까 봐 떠나지 못하는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다. 극에서 묘사하는 인간은 나약하다. 인간은 신의 존재를 부인하면서도 자신들을 구원해 줄 절대자를 기다린다. 즉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린다. 언제 올지 모르고, 무엇인지 몰라도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들의 삶은 고도를 기다리는 한 계속되고 고도를 기다림으로 인해 존재함이 입증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삶과 실존은 닮아가는 것이다. 그들에게 고도는 무엇이었을까. 지루하고 무의미한 삶으로부터 구원해 줄 절대자일까, 아니면 그들을 살아가게 만드는 희망일까?


각자의 고도를 통해 현재를 되돌아보다


나무 한 그루뿐인 어느 시골길에서 50년간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그들은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와 시간이 맞는지, 정말로 오긴 오는지 모른다.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고 하염없이 대화할 뿐이다. 우리도 각자의 고도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꿈이 됐든, 성공이 됐든, 취업이 됐든 간에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고, 기억조차 하지 못할 그저 그런 이야기들로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각자의 고도를 기다리는 삶 속에서 내가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일지 떠올려본다. 사실 나는 이 작품을 알기 전까지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건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인생을 버려가며 기다리는 존재의 이름이라도 알고 있지 않던가. 그래도 이 작품을 통해 기다림이라는 상황을 인지했다는 것만으로도 예술이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친 거라고 생각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 상황을 무대 위로 옮겨 표현한다. 이로 인해 관객들은 자신들이 처한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현실을 바라보게 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이 갖는 가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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