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프라인 방탈출의 스토리텔링 [문화 전반]

오프라인 방탈출은 어떤 식으로 변화해왔을까?
글 입력 2019.06.1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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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탈 2.jpg



문화권에 상관없이 이야기를 말하는 장르의 변화 과정은 대체로 비슷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가 글과 그림이 되고, 탈춤, 판소리와 뮤지컬과 연극 등의 공연으로 옮겨지다 현대에 들어서는 게임과 영화 같은 영상으로, 그러다 4D와 VR에 도달했다. 꾸준히 상상의 세계에 관객이 이입할 수 있도록 현실감 넘치게 변해왔다. 그러나 의자가 흔들리고 주인공과 같이 비를 맞거나 눈 앞에 상상의 세계가 그대로 펼쳐진다 해도 4D와 VR은 영상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상을 기반에 두고 좀 더 현실감이 느껴지도록 기계장치를 추가했을 뿐이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스토리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직접 물건을 만지거나, 공간에 들어가 뛰어다니며 스토리를 즐기진 못한다.


그런데, 있다. 그런 장르가. 어떻게 보면 스토리텔링 장르를 즐기는 가장 신세대적인 방법이다. 직접 주인공이 되어 소도구를 만지며 스토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방식, 오프라인 방탈출이다.




오프라인 방탈출의 기원



방탈출은 컴퓨터, 핸드폰 게임에서 시작했다. 2000년 대에 유행했던 오직 글과 웹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미궁 게임 역시 어딘가에 갇혀 빠져나가는 형식을 취했고, 이후 플레시 게임에서 ‘눈을 떠보니 어느 방에 갇혀 있다. 문제를 해결해 이 방을 빠져 나가야한다’는 이야기를 가진 게임이 유행했다. 왜 갇혀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 같은 이유가 생략되어 마냥 문제를 해결해 방을 빠져나가는 게임도 존재했고, 방을 빠져나가며 왜 여기 갇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아나가는 게임도 있었다. 후자가 바로 오프라인 방탈출의 기반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신문에서 2017년 기사화한 “논리·직관의 경연장, 혹은 달달한 데이트 공간…방탈출카페”에 따르면 오프라인 방탈출 게임의 원조는 일본이다. 2007년 교토에서 타카오 카토가 리얼 탈출 게임을 창시했다. 이후 2011년 쥬르코비츠 어틸러가 파라파크라가 오프라인 탈출 게임 전문 회사를 설립해 전 세계적으로 오프라인 방탈출 카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방탈출 1.jpg

게임을 진행하며

왜 방에 갇혔는지 서서히 드러나

재미를 주는 방탈출 게임 검은 방.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오프라인 방탈출도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이 과정이 타 스토리텔링 장르의 변화 과정과 유사하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좀 더 이야기에 몰입하고 즐길 수 있는가.




문제 푸는 것에 집중한 초기 방탈출



초반의 오프라인 방탈출은 시간 안에 문제를 풀고 방을 빠져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방마다 스토리가 있긴 하지만 시작 전에 직원이 간단하게 설명해주고 이러이러하니 탈출하라, 혹은 방탈출 게임을 끝낸 손님에게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고 말하는 정도가 다였다. 모두가 잘 아는 영화의 줄거리를 차용해 방 안을 영화 속 풍경처럼 그대로 꾸민 오프라인 방탈출도 있었다. 방에 들어간 이유나 나가야하는 이유는 큰 비중이 없었다.


방탈출의 문제 역시 대부분 자물쇠로 서랍이나 문, 혹은 작은 상자가 잠가둔 정도였다. 가끔 비밀스런 방으로 통하는 문에만 기계 장치가 있을 정도로 기계를 이용한 장치가 적었다. 문제를 푸는 재미는 있었지만 소위 “기출문제”라고 불리는, 방탈출을 몇 번만 해보면 금방 응용이 가능해 식상해지는 문제가 많았다.




특별함이 필요해



처음에는 서울 중심부에도 몇 곳 없던 방탈출이 인기세를 타며 우후죽순 생겨났다. 사람들을 휘어잡을 특별함이 필요했다. 대부분 자물쇠로 이루어진 방의 문제에 과학이 들어섰다. 물건을 특정한 부분에 대면 닫혀있던 서랍이 열리거나, 문제가 나오거나, 소리가 나며 다음 문제로 이끌기도 했다. 기출문제를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사용해도 문제를 푸는 중간중간 테마에 맞는 스토리를 볼 수 있게 숨겨두었다. 방을 탈출해야하는 이유도 좀 더 명확해졌다.


방탈출을 하는 손님이 학교 전교 1등인 학생인 테마라면, 전교 2등이 기말고사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기 위해 창고에 가두었는데, 이 창고를 빠져나가 시험을 보아야한다는 시놉시스가 주어지고, 문제를 푸는 내내 여기저기서 쪽지가 나와 왜 전교 2등이 이곳에 가두었는지 자세한 속사정이 나오는 식이다. 알고 보니 전교 1등인 손님이 매번 전교 2등이 시험을 보지 못하게 징크스를 건드렸다거나, 전교 2등이 이번에 1등을 받지 못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차이게 된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문제를 풀어나갈 때마다 읽을 수 있게 배치 되어있다. 방 역시 처음에 도서관 창고였다면, 다음 방은 도서관이 나오고, 그 방을 빠져나가 복도를 지나면 교무실이 나와 전교 2등의 행태를 고발하고 문을 열면 시험을 보러 교실에 간 것이다, 처럼 기승전결이 분명해지고, 손님을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단순히 문제 푸는 것을 넘어 스토리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방탈출은 재미를 위해 스포일러를 발설하면 안 되는 놀이인만큼 위에 나온 예시는 자체적으로 생각해낸 것이다.)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문제를 제출하는 카페도 많이 늘었다. 정해진 시간 내에 탈출해야 하기 때문에 기계 장치가 낡아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시간을 잡아먹히고 재미도 훅훅 깎이는 단점은 있었으나 기계 장치가 자연스럽고 거대할수록 정말 어떤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거 같은 기분을 유도한다.




보다 더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오프라인 방탈출의 스토리는 또 다시 변화를 꾀한다. 기존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해도 ‘방에 갇혀 있고, 탈출해야한다’는 방식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야외에서 시작해 방탈출 카페를 찾아가는 것부터 방탈출의 시작이기도 하는 둥 ‘갇혀 있다’의 틀을 깨기도 하고 방을 빠져나가는 것은 그저 이야기의 끝일 뿐 ‘탈출한다’의 의미가 아닌 경우도 존재한다. 단순히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탈출하기 전 손님에게 결말을 선택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아까의 예시를 이용하자면 교무실에서 전교 2등의 행태를 고발하는 엔딩과, 고발하지 않는 엔딩이 갈린다고 볼 수 있다. 스토리 자체에 그치지 않고 주인공이 된 손님이 결말을 선택하게 만들어 자신이 스토리에 기여한다는 착각까지 주는 것이다.


스토리의 테마도 다채로워진다. 초반에는 ‘갇혀있다.’는 고정된 설정 때문에 비교적 어두운 분위기의 테마가 많았으나 ‘무언가를 가지고 나온다’,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 들어간다’ 혹은 ‘방 안에서 한 실수를 모두 되돌리고 들어올 사람을 기다린다’ 등 공간에 들어간 이유가 다양해지면서 들어간 이유에 맞게 코믹, 호러, 스릴러, 감성, 어드벤처 심지어 19금까지 장르가 무궁무진하다.


방의 장치역시 다양해졌다. 앞서 말한대로 자물쇠를 기계 장치로 대체해 흥미를 느끼게 한 것 이상으로, 방 안에 미끄럼틀을 설치하거나 정말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거나, 좁은 공간을 기어가게 하는 둥 활동성을 높이면서 흥미도 높인다. 가끔 두 명 이상이 필요한 장치와 구성을 만들면서 혼방(혼자서 방탈출을 하는 것)을 못하게 만든 것은 전략일까 실수일까.



방탈 3.jpg



이정도만 되어도 방탈출 테마마다 즐거움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테마를 지속적으로 해도 오프라인 방탈출 게임이 지겹지 않다. 그럼에도 방탈출은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변동한다.


이전에는 어떤 방탈출이든 문제를 풀다 막히면 방 내부에 고정되어있는 인터폰으로 직원에게 전화를 해 질문하거나 일반적이었다. 인터폰의 경우 말소리를 제대로 못 알아들으면 문제 해결이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사용해서 물어보는 방식도 있으나 역시 직원과 소통을 해야하기 때문에 직원이 답이 늦거나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 시간을 빼앗기고, 테마에 대한 몰입도 깨진다. 몇 방탈출은 아이패드 등의 기계에 숫자나 QR 코드를 입력하면 바로 힌트가 나오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몰입도를 크게 방해하지 않으면서 시간도 단축해 방탈출을 즐길 시간을 늘려준다. 또, 직원의 고통도 조금을 덜어졌을 것이다.




직원도 방탈출의 일부



앞으로의 방탈출은 어떻게 변화할까. 직접 물건을 만지고 움직이고 사용하고 문제를 풀며 주인공이 된 기분을 보다 적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놀이 방식인 만큼 계속해서 몰입도와 활동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움직일 것이다. 한 예로 오프라인 방탈출에서 파생된 방털기 카페에서는 직원이 배역을 맡아 손님과 대화하고 방 안에도 개입해 스토리를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한다. 힌트를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캐릭터가 되어 몰입감을 높인다.


영상에서는 결코 내가 주인공이 되지도, 스토리를 원하는 속도로 이해하며 나아가지도,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1인칭 게임에서 가장 유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나 직접 물건을 만지고 움직이는 것과 감정 이입의 차이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오프라인 방탈출 카페의 인기가 꾸준한 것이다.


이는 다른 스토리텔링 장르에서 변화할 방향을 알려준다. 4D에 익숙해진 사람은 통통 튕기거나 불쾌하게 공기와 물이 쏟아지는 의자가 차츰 지겨워질 것이다. 현장감 이상으로 능동적 몰입감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제 야외로 나가 좀비에게서 도망치는 좀비 영화 테마의 행사에 참여하거나 독립운동가로 변해 서울 주요 독립 운동 장소였던 공간을 돌아다니며 문제를 푸는 둥 본인이 주인공이 되어 스토리를 즐기고 있다. 물론 테마의 배경이 되는 공간과 소도구가 필요한 만큼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실내 스크린 스포츠장처럼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은 영상으로 대처하거나 기존에 있던 장소를 활용하는 방식을 사용한다면 제작자도, 관객도 만족스러운 스토리텔링 장르가 완성될 것이다.



참고자료 : 서울신문 "논리·직관의 경연장, 혹은 달달한 데이트 공간…방탈출카페"



[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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