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내일은 다르고, 모레는 또 달라!

연극 '영지' 리뷰
글 입력 2019.06.06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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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포스터]영지_190523-190615.jpg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예전에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주제로 한 전시를 홍보하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가구나 대중교통 등 세상 대부분의 것들이 성인에게 맞춰져 있기에, 아이들에게는 일상을 포함해 어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어려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이런 아이들이 무사히 성인이 될 때까지 돌봐주는 사람이 보호자다.

하지만 보호자라고 해서 아이들을 어른의 입맛에 맞게 통제하고 억압할 권리는 없다. 아이들에게는 아이 맞춤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많은 보호자들은 잊는다. 그리고 그들의 공간과 시간을 빼앗는 게 그들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특히 한국처럼 어려서부터 경쟁에 내몰리는 특수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자들의 노력은 눈물이 날 정도로 치열하다.

연극 '영지'의 병목안 마을은 겉으로는 평화롭고 깨끗한, 아이를 '키우기'에 완벽한 장소다. 하지만 아이들이 '살기'에도 좋은 곳인지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병목안 마을에 정작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통제 아래 학교에 있거나 부모가 등록해 준 학원에 있어야 한다. 시간도 그들의 것이 아니다. 놀다가도 때가 되면 어김 없이 다음 학원에 가야 할 시간을 알리는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이 억압은 '보호자'들에 의해 다 너를 위한 거라며 웃는 얼굴로 이루어진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공간과 시간을 빼앗긴 아이들은 점점 자신의 생각이 없는 '좀비'가 되어간다.



영지, 넌 어디서 왔니?


[국립극단]영지_홍보사진_07_영지役(김수빈).JPG
 

"안녕, 나는 영지여."

그렇게 좀비 양성소가 되어가는 병목안 마을에 등장한 영지는 외양부터 눈에 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주문을 외는 영지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아이, 아니 종잡을 수 없는 존재다. 수업 시간에는 자기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고, 매일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부모의 존재도 영지에게는 없다.

외계인, 바다에서 올라온 물고기, 수천 개로 쪼개진 인간, 작은 악마, 전염병 보균자, 질서 파괴자, 마녀...영지에게 따라붙은 말들은 수없이 많다. 영지의 캐릭터성은 이 연극의 백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영지의 모습은 병목안의 모습과 대비되며 마을에는 위기감을, 관객에게는 웃음을 준다. 60분 동안 이어지는 연극의 즐거움이 영지의 언행을 지켜보는 데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영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정체성은 '변화'다.

"나는 영지야. 새의 머리에 인간의 몸통에 개구리의 다리를 가졌어. 날개도 있고 꼬리도 있지. 내일은 다르고 모레는 또 달라!"

영지가 매번 반복하는 대사다. '변화'야말로 영지의 정체성이다. 즉, 변하지 않으면 영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앞서 이야기한 수많은 단어는 모두 영지답다. 끝없이 증폭하던 영지는 한 가지 존재로 수렴된다. 바로 나열한 단어들과 비교하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11살짜리 아이'다. 11살짜리 아이야말로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기상천외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녀도, 외계인도, 11살은 다 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지는 병목안 마을의 아이들 중 가장 11살답기 때문에 11살의 아이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마녀 정도로 취급된다.



넘치는 이야기, 그러나 부족한 서사


[국립극단]영지_홍보사진_05_왼쪽부터 소희役(전선우), 영지役(김수빈), 효정役(박소연).JPG
 

영지는 이야기꾼이다. 영지가 늘어놓는 이야기들이 연극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다. 그 이야기에는 어른들에게 통제받으며 어른의 생각이 주입된 아이들이 등장한다. 영지가 하는 이야기는 병목안 마을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오늘날 아이들의 모습이다.

그만큼 이야기가 직접적이고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 분명해서 흥미가 떨어질 수 있는데, 이야기마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오브제가 사용되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주로 장난감으로 이루어진 소품들이 연극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영지가 하는 이야기에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연극 전체를 가로지르는 서사는 다소 약하다. 영지가 병목안 마을에 등장해 일어나는 일상적인 소동을 좀 더 보고 싶었는데 이 부분이 영지의 이야기로 대체된다. 영지의 캐릭터성이 강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서사가 캐릭터에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때문에 다소 산만한 느낌을 받았다.

영지가 마을에 나타나고 아이들과 만나서 친해지고, 어른들에게 마녀로 몰려 '모두 환생'을 외치며 떠나갈 때까지 빈 구석을 채우는 건 관객의 몫이다. 능동적인 참여가 즐겁기도 했지만 좀 더 친절하게 빈 구석을 메워 주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모두, 환생!


[국립극단]영지_홍보사진_03_왼쪽부터 소희役(전선우), 영지役(김수빈), 효정役(박소연).jpg
 

이상한 아이로 찍힌 영지에게 어른들은 반상회 때 부모님을 모셔 오라고 요구한다. 영지가 아이들 사이에서는 전지전능하다 할지라도 어른들에게는 한 명의 특이한 아이일 뿐이기에, 어른들과 대면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어른이 필요하다. 그러나 보호자가 없는 영지가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가며 어떤 결말을 맞을지 연극을 보는 내내 궁금했다. 영지의 신기한 능력은 어른들에게도 통할까? 결국 영지에게도 다른 어른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우려와 달리 영지는 아이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어른들 앞에 선다. 오히려 우스꽝스럽고 '아이' 같이 행동하는 건 어른들이다. 서로 말하겠다고 밀쳐대고, 이상한 논리를 펼치며 영지를 마녀로 몰기도 한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 사이에서 그 어느 순간보다 어른스러워 보이는 영지는 이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모두 환생!' 이라고 외친다.

'모두 환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다시 태어나는 것 정도가 아니면 병목안을 바꿀 수 없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어느덧 영지보다 다른 어른들의 나이에 가까워진 나에게 당신 역시 병목안 마을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지적하는 것 같았다. 한편, 환생은 변화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영지는 앞서 이야기했듯 매 순간 변하는 존재다.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매일 변하는 건 자라나는 아이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무언가로 규정되기에 아이들은 너무 이르다. 특히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드는 11살은 혼란스러운 시기이지만 그렇기에 모든 것을 단숨에 뒤바꿀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지의 '모두 환생!'은 조각 조각 흩어진 자기 자신을 찾아 헤매는 모든 이들에게, 혼란스러워도 스스로를 믿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고 전하는 메시지로 느껴지기도 했다.

영지 역을 맡은 배우는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무대에서 사라진 뒤 커튼콜에도 등장하지 않아 더 여운을 남겼다. 영지가 누군가가 연기한 가상인물이 아니라 실제 어느 세상에서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나의 영지는 언제 다녀갔는지, 함께 연극을 감상한 어린이 관객들에게는 지금 영지가 곁에 와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군분투할 수많은 영지를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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