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피해자들의 목소리, ‘7번국도’ [공연]

글 입력 2019.05.02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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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에 배우보다 먼저 올라와있던 것은 자동차에서 해부된 부품들이었다. 열을 맞추어 잘 정돈해놓았지만, 바로 옆에 텅 비어 보이는 차체가 이와 대비를 이루며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극에서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런 무대를 연출해 놓았을지 상상하는 동안 불이 꺼지며 7번국도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Synopsis.




강원도 속초, 7번국도 위. 동훈의 택시에 군복을 입은 주영이 오른다.  그는 얼마 전 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초등학교 동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 동창의 죽음을 두고, 주영은 안 좋은 소리만 늘어놓는다. 이 낯선 군인 아저씨의 말을 듣고 있는 동훈은 바로 그 죽은 초등학교 동창의 엄마다.

 

동훈은 오늘도 경기도 수원의 공장 앞 1인 시위를 위해 집을 나선다. 하지만 남편인 민재는 동훈을 막아서고, 시위에 함께했던 용선은 피켓을 내려놓는다.

 

주영이 동훈의 택시에 다시 오른다. 이 낯선 택시 기사님은 주영에게 말한다. 이제 시위 나가는 것을 그만뒀다고. 때가 됐나 보다고.

 

 

극에는 5명의 배우가 등장하여 각각 피해자 지영의 부모, 또 다른 피해자의 누나, 군인과 그 여자 친구를 연기한다. 피해자는 세 명이지만 말과 몸짓으로 연기를 하는 인물은 군인 한 명뿐이다.


이는 피해 사실과 피해자 본인의 심경이나 감정선을 이야기의 주요 갈래로 설정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본인보다는 피해자의 가족이나 가까운 인물을 통해 사건 이후 피해자 주변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추어 이야기를 보여준다.

 

 

 

남겨진 이들이 해야 할 일



공장에 나가 일하던 딸 지영을 잃은 부모의 행동은 대비를 이룬다. 어머니인 동훈은 공장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아버지인 민재는 그녀를 극구 말린다. 이미 죽은 딸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살아있을 때 옆이나 더 지키지 그랬냐며 갈등이 한 차례 빚어진다.


피해를 입은 동생을 위해 1인 시위를 하던 용선은 자신의 모든 것을 치료비에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병원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 시위를 그만둔다. 첫 장면에서 택시에 올랐던 군인 주영은 군에서의 집단 폭행과 구타로 목숨을 잃었다. 그의 애인인 기주가 과거를 후회하며 주영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무대에서 병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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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1인 시위에 나가 더 이상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목소리를 내고,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에 합류하여 도움을 보태지 않고 오히려 목소리 내기를 말리는 인물도 있었으며, 중간에 그만두는 용선과 같은 유형의 인물도 등장했다.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을 잃은 뒤 남겨진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하나의 대응방식에 모두가 동의하지 않고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거부하거나 후회하는 이들을 보며, 나는 그간 간접적으로나마 마주했었던 사회적 참사와 사건들이 떠올라 마음이 답답했다.

 

피해자의 희생이 영웅화되고 나면, 남겨진 이들의 행동이나 목소리에 대중은 오랫동안 박수치지 않는다. 공감 빠르게 사라지고, 쏟아지는 이슈에 휩쓸려 대중의 호기심은 다른 곳을 향한다. 다만, 피해자들의 슬픈 표정이나 억울하고 힘없는 이미지만 기억하고서 가끔 다시 돌아와 왜 내가 생각하던 모습이 아니냐며 궁금해한다.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 하나로 이들을 전혀 다른 사람인 양 간주하고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기대하며 바라는 것은 또다시 이들을 피해자로 만들어 프레임을 씌우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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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구분 짓기



극을 보고 나서 떠올릴 때마다 괴로웠던 대사가 하나 있었다. 군인 주영의 말이었다.

 


“그럼 나도 공장에서 일했어야 했나. 외지로 학교를 가지 않았어야 했나. 내가 공부를 잘하지 않아서 공장을 갔다면 어땠을지 모르는 일인데.”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피해 상황에서 물러나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지 잘 보여준 말이었다. 피해자들을 위로하지도, 공감하지도 않으며 선을 하나 그어놓고 허공에 외치는, 해봤자 달라질 것 없는 말 한 마디. 이어서 나도 한번쯤 그러지 않았나 하며 반성과 후회를 하게 되었다.


피해자들과 나를 다르게 규정하고 ‘피해자다움’에 대해 정의내린 적이 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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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기보다 각자의 앞을 더 많이 바라보고 외치는 배우들의 절규에 가까운 발성에서는 감정을 최대한 절제했음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호소보다 더 공허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극의 막바지에 달해서는 조금씩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그 울림이 관객들에게 어떠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라 추측해보며 길을 나서는데, 마음이 불편하고 착잡했다.


두 개의 사건을 다룬 극에서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다른 사건이나 기억에서 비롯된 감정을 투영하여 무대를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피해자와 나 사이의 빗장을 조심스럽게 하나 풀어낼 수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생각은 더 복잡해졌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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