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뉴트럴, 그 어중간함에 대하여 [문화전반]

당신의 삶은 어떤 색인가요?
글 입력 2019.04.2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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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S/S 시즌 패션 트렌드로 자주 언급되는 뉴트럴은 패션계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게 해석된다. 단순하게 영어사전에서 찾아본 그 의미는 '중립적인', '감정을 자제하는', '중간색'이라는 뜻이다. 다른 업계에서는 이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패션 - 뉴트럴은 「중간의・회색의・무지의」 등의 뜻으로, 뉴트럴 톤은 일반적으로 무채색을 말한다.


자동차 - 일반적으로는 중립을 뜻하는 말이지만, 자동차 용어에서는 트랜스미션의 뉴트럴 위치를 나타내는 용어로 많이 쓰이고 있다. 미션 레버가 뉴트럴(N)의 위치에 있으면 엔진의 회전이 파워 트레인(power train, 동력 전달 계열)에 전달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와인 - 뉴트럴은 와인 용어로 특성은 없지만 어느 정도 보통의 와인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커피 - 뉴트럴은 커피의 무기질 성분이 당분과 결합할 때 약한 맛(Bland)이 변하여 커피의 2차적 맛으로 나타난다. 커피 첫 모금을 마실 때 혀에서 뚜렷한 맛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커피가 식으면 혀의 옆에서 드라이한 느낌을 준다. 무기질 성분이 산의 신맛을 중화하여 생기며 수세 가공한 우간다 로부스타(Robusta)의 특징적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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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뉴트럴의 의미를 차용하고 있다. 패션에서는 강렬한 색과 대비되는 무채색, 자동차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어의 중립 상태를 뜻하고 와인 중에서는 딱히 특징은 없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보통의 와인을 지칭하며 커피는 첫 모금에서 뚜렷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 원두의 특성이다.


이 설명만 들어도 대충 뉴트럴이 우리 주변에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본래 '중간'이 그리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은 단어라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 말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닐지라도 나는 살면서 수십 번 주변에서 그런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


어투에서 느껴지듯 여기서 언급하는 이 '중간'이라는 것이 좋은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버액션으로 주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하게 되는 말이므로 그냥 오버하는 것보단 중간이 낫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데 뉴트럴, 중간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게 된 것은 '핵인싸'의 출현 이후다. 아웃사이더라는 말에 반대되는 뜻인 인사이더는 친화력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넘어서 모든 사람과 사건에 핵심 인물이자 주인공 같은 인물이다. 그중 핵인싸란 그 핵심 인물 중에서도 가장 핵심인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핵인싸는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며 머릿속에 떠올리는 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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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일 때는 핵인싸가 세상의 주인공이라 믿었고 그들이 사는 방식은 그 누구보다 활기차고 열정적인 것처럼 보여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중간이 주는 느낌이 참 좋다. 핵인싸를 찬양하고 부러워하고 그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이제 들지 않는다.


다만, 우리 모두가 다른 리듬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관계를 이어가고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뿐이다. 인사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하고 피곤하지 않으니 계속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고 '아싸' 혹은 '그럴싸'(인싸와 아싸의 중간을 뜻하는 신조어라고 한다)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계속 살아온 대로 사는 것이다.


그럴싸인 나는 그래서 뉴트럴 톤이 좋다. 어느 곳에 꼭 속하지 않으면서 주변 색을 어우를 수 있으니까. 뉴트럴 톤이 지금 유행하게 된 것도 일종의 사회 현상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핵인싸를 찾는 세상에서 중립 색의 유행이란 모순적이면서 한편으로는 밸런스가 잘 맞는 구조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비등한 밸런스를 이루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각자 살아온 것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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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럴 톤의 옷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온화해지는 이유는 그냥 그런 색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그 색이 주는 느낌과 닮은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만의 고유한 색을 갖기란 그 어떤 것보다 성취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꼭 그 색이 나 혼자만 소유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더라도 그 색이 어떤 톤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소중히 찾아낸 나의 색이 애매한 것처럼 보여도 걱정하지 마라. 중간이라고 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핵인싸는 인싸대로 아싸는 아싸대로 그럴싸는 그 중간 어느 정도로 각자의 색을 만들어 살고 있는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뉴트럴의 유행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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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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