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로봇에게도 감정은 있다. [도서]

글 입력 2019.04.1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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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즈음, SNS 상에 떠돌던 책 홍보 영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줄거리의 일부만을 짤막하게 요약한 영상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은, 개인적으로 책의 매력을 가장 잘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결말을 제외한 모든 내용을 알아버린 독자들로 하여금 앎에 대한 욕구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게 하니까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추리소설 '브루투스의 심장'의 일부 내용을 보여주는 영상. 나도 이 홍보 영상에 마음을 빼앗겨 서점으로 향했다. 책 홍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영상은 그야말로 성공적이었다. 책을 읽으러 서점에 갔을 때는 다 팔리고 재고가 없어서, 다음날 좀 더 멀리 있는 다른 서점에 가서 읽어야 할 정도였으니까.



브루투스 심장.png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살인을 철저하게 계획했지만 도리어 죽임을 당하는 남자. 철저하게 계획된 살인을 제안받고 이로 인해 자신의 목적을 이룰 것을 기대했지만 어긋난 결과에 분노하는 남자. 살인 제안에 동참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남자.


이들의 살인 타깃이었던 한 여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조하는 사람들.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책의 결말을 알고 나니 손에 꽉 끼어버린 반지를 가까스로 막 뺀 것처럼 답답했던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책 속 인물들은 '로봇'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한다. 증오와 질투, 분노라는 인간의 감정이 투영된 로봇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즉 '인간의 감정이 시키는 대로' 조종된다. 그렇게 인간의 감정을 갖게 된 로봇이 결국에는 사람을 죽인다. 인간의 감정이 시키는 대로 로봇은 조종당했지만, 결국에는 로봇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인간. 로봇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었다. 꼭 로봇에 지배당하게 될 인간의 미래 같았다.


로봇이 사람을 죽였다.. 생각지 못한 결말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로봇에게도 감정이 있다니. 로봇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시킨 인간이나, 인간의 감정을 가진 것 마냥 행동하는 로봇이나, 어느 방향으로든 의문스러운 일이었으니까.
   

*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인생 책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주인공, 일본의 천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당장 일본행 티켓을 끊어 그가 사는 곳, 그의 일터, 그의 삶을 보고 싶을 정도로 그를 동경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브루투스의 심장'을 읽기 전까지 나는 그의 천재성을 동경했다. 모든 인물과 사건을 한 명도, 하나도 빠짐없이 연결하는 그를 천재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는 그의 감성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이 책이 머지않아 로봇에 지배당하게 될 인간의 미래를 여실히 그렸기 때문이 아니다. 10년도 더 전에 출간된 이 책이, 현재 우리의 모습, 로봇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고 난 뒤, 나는 세상을 믿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사람들이 그에게 무슨 잘못을 했길래, 집에 불을 지르고, 그 끔찍한 짓을 저질른 것일까.

 

글로는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의 감정이 인다. 사람에 대한 배신감까지 드는 요즘이다. '사랑'으로 가리려 했지만 미처 가려지지 않은 세상의 민낯을 드디어 맞닥뜨린 느낌이다.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에세이가 물밀듯 출간되어도, 사랑 노래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와도, '서로를 사랑하자'라고 아무리 백날 말해도, 점점 더 흉흉해져만 가는 세상에 배신감이 든다.


더 이상 의문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이해를 바라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로봇에 인간의 감정을 투영시키는 일도, 인간의 감정을 가진 것 마냥 행동하는 로봇도, 모두 가능한 이야기겠다. 나조차도 인간보다는 다른 것에 내 감정을 투영하는 일이 어쩌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주인공 다쿠야가 로봇에 의지했던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이 아닐까. 사람에게 이해를 바라지 못하는 세상과 맞닥뜨려 결국은 로봇에게 이해를 바랐던 것일 수도 있다.



11분3.JPG
 
 
언제부터 였을까, 감정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사람을 이해하고 좋아하고, 함께 살아갈 때 느낄 수 있는 그런 기본적인 감정들이 없어지고 또 없어져, 그 감정의 바닥이 곧 보일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남이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못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지금, 그 감정의 바닥을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 감정들이 바닥을 보이고, 결국 텅 비어버린 감정의 껍데기만을 마주했을 때, 그곳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수많은 책이, 수많은 노래가, 수많은 강의가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때때로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리곤 한다. 나의 글도 그런 쓸모없는 것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그 감정들을 붙잡기에 역부족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춘다면, 우리는 로봇에게도 있는 감정을 갖지 못한 '텅 빈' 인간이 되고 말겠지.


이해를 바라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해를 바라본다. 습관처럼 이해를 바라다보면, 그런 세상이 다시 올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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