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새벽, 바다, 그 잔인한 고백 - 스위밍 레슨

그렇게 그녀는 바다로 돌아갔다
글 입력 2019.04.09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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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스위밍 레슨>
SWIMMING LESSONS
저자 클레어 풀러(Claire Fuller)



사랑에 취하는 경험은 강력하고 중독적이다. 특히 사랑과 연애에 서툴고 낯선 감정을 느낀다면, 더욱더 그렇다.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어떻게 행동하는 게 나에게 맞는 건지, 심지어 자신의 매 감정에조차 확신이 없어 유약한 상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사랑, 첫 연애는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둘 사이의 관계와 그 안의 나를 견줘보기 등 경험을 거듭해야 비로소 익숙해지는 많은 것들이 이미 혼란한 감정 탓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상처를 남긴 사랑은 다음 사랑을 앞둔 자신을 보호하려 하고, 나와 맞는 사람을 찾게 만든다.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을 통해 개인은 성장하고 자신을 깊숙하게 겪으며 알게 된다. 물론 다음, 그다음의 다양한 기회가 온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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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풀러(Claire Fuller)는 본인의 저서인 <스위밍 레슨>(Swimming Lessons)에서 그 기회를 얻지 못했던 한 여자에 대해 감각적 묘사와 짜임새 있는 전개로 소개한다. 마치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전경과 집 안을 비롯한 세밀한 공간묘사는 독자가 천천히 문장을 음미하게 만들며, 그 끝에 다다랐을 때 해당 장소로 데려가 준다. 작가의 묘사력은 배경에 그치지 않고 분위기와 상황, 인물의 감정과 감각을 표현하는 데에도 훌륭히 적용된다. 비단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더라도, 다채롭게 문장을 써 내려가며 결국 일련의 ‘느낌’을 성공적으로 전달한다. 이렇듯 작가는 살아있는 문장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지속해서 자극하며 생생한 영화를 재생시킨다.


우리의 몸은 잘 어울렸어요. 내 몸 구석구석에 닿는 공기와 물이 연인 같다고 생각한 기억이 나요. 새롭고 신선하고 차가운 연인.

- 본문 중에서


작가가 이야기를 엮은 방식 또한 탁월하다. 작품은 2004년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현재와 1976년에서 시작해 1992년 당시까지의 사건을 찬찬히 짚어가는 편지로 나뉜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기술한 현재와 다분히 개인적인 목소리로 호소하는 편지는 한 번씩 교대로 등장하는데, 마치 씨실과 날실이 교차 되듯 책을 완성한다. 해당 전개 방식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이를 활용해 내용을 발전시키는 기량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클레어 풀러는 기술(記述)에 사용한 모든 것을 풍부하게 이용해 작품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짧은 호흡으로 세월을 넘나드는 이 방식은 인물에 집중시킨 관심을 빌어 나이 듦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흡입력 있게 사건에 몰입시키다가도 과거와 현재의 전환과 동시에 독자를 순식간에 그 밖으로 빼낸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사건에 세월이 더해진 모습을 마주한 독자는 건너뛴 시간을 상상하며 나름의 이해로 그 공백을 메우게 된다. 또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연인, 부부, 부모와 자녀, 개인 등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반복적으로 상기시키며 인물과 사건을 다양하게 조명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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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작품은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특징을 살리고 있지만, 책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모두가 현재 사라진 여자이자 편지를 쓴 장본인인 잉그리드(Ingrid)를 말할 것이다. 이 책은 그녀의 이야기이다.

잉그리드는 줄곧 참으며 노력했고, 폭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도 그걸 감내하려고 했다. 나이가 두 배인 대학교수 길(Gil)과 사랑에 빠졌다가 몇 달 만에 임신해서 결혼한 이후, 당차게 독립적인 여성을 꿈꾸던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포기에 익숙해지는 법과 책임뿐이었다. 길과 그와의 관계 속에서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기르기도 전에 일이 터졌고, 그녀는 그저 낯설고 두려운 상황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길은 독이다.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의 성향은 결혼생활 안에서 사정없이 부딪히고, 상처받는 건 언제나 맞추는 쪽이다. 지친 그녀가 원했던 것은 남편인 길이 가정을 충실히 돌보는 것 하나였는데, 그는 그녀를 희망 고문으로 묶어둔 채,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그녀의 상처를 창의적이리만큼 짓누른다. 그렇게 그녀는 어렴풋이 꿈꾸던 미래를 한순간에 접은 이후 그것을 다시 그리워할 여유조차 없는 삶을 살며 몸과 마음을 쉴 새 없이 고통받는다.


당신은 날 이 집으로 데려와 자식까지 낳게 하고는 떠나버렸죠. 내가 성인이 되어 겪은 일들은 모두 당신 때문인데 당신은 나 혼자 헤쳐 나가라고 하네요.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혼자 버려진 어린 새 같아요.

- 본문 중에서


그런 잉그리드가 유일하게 위로받는 순간이 바다에 나가 수영을 할 때이다. 바다는 그녀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달라져도 항상 같은 모습으로 그곳에 있다. 온전하게 바다와 물살을 느끼는 그녀는 그 순간에야 자신으로서 숨을 쉰다. 견디기 힘든 상황과 외부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하염없이 헤엄치며 마치 태초로 돌아간 듯 자유로워진다. 마지막 편지에서조차 잉그리드는 남겨질 아이들과 떠나보낸 아이들을 걱정하다 “마지막 수영”을 하러 간다. 상처뿐인 몸과 마음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바다로, 처음으로, 자신으로 돌아간다.

책에 나온 논쟁을 빌어, 그녀가 남겨진 이들의 마음속에서 ‘희망’으로 살지, ‘슬픔’으로 죽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실종된 그녀가 다시 나타나 가족에게 돌아가길 바라는 이가 있을까? 그녀가 그로 인해 맥없이 고통받은 시간을 절절히 전달받았다. 자신과 상대방의 사랑 방식 및 성향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묶여버린 과거에 대해선 충분히 힘들었으니, 부디 끌어안은 책임은 파도에 흘려보내고 그녀가 어디서든 자신만을 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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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밍 레슨
- SWIMMING LESSONS -


지은이 : 클레어 풀러(Claire Fuller)

옮긴이 : 정지현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소설 / 외국소설 / 영미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372쪽

발행일
2019년 03월 18일

정가 : 13,800원



저역자 소개



클레어 풀러 Claire Fuller

1967년 영국 옥스퍼드셔주 출생. 윈체스터미술대학(Winchester School of Art)에서 조각을 전공했고, 40세에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윈체스터대학(University of Winchester)에서 창작과 비평(creative and critical writing)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첫 소설인 《Our Endless Numbered Days》(2015)로 데스몬드 엘리엇 상(Desmond Elliott Prize)을 받았고, 2014년 BBC 오프닝 라인 단편 공모전(BBC Opening Lines Short Story Competition), 2016년 로열 아카데미 & 핀 드롭 단편소설 상(Royal Academy & Pin Drop Short Story Award)을 수상했다. 두 번째 소설인 《스위밍 레슨(Swimming Lessons)》(2017)은 2018 왕립문학회 앙코르 상(Royal Society of Literature Encore Award) 단상에 올랐다. 최근 《비터 오렌지(Bitter Orange)》(2018)를 출간하면서 활발하게 집필하고 있다.


정지현

미국에 거주하며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소설과 아동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 《셰이프 오브 워터: The Shape of Water(공역)》 《에이번리의 앤: 빨간 머리 앤 두 번째 이야기》 《피터 팬》 《오페라의 유령》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호두까기 인형》 《비밀의 화원》 《하이디》 《핑크 리본: 세계적인 유방암퇴치재단 코멘 설립자의 감동 실화》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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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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