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프레이폴(Pray for)] 6. for Lover [영화]

'더 듀크 오브 버건디(The Duke of Burgundy, 2014)'
글 입력 2017.12.1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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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듀크 오브 버건디(The Duke of Burgundy, 2014)'
_피터 스트릭랜드 作


  나비는 애초에 애벌레였다. 퉁퉁하고 겉이 매끄러운, 작은 괴물체. 그것은 자기가 까고 나온 알을 먹어치우고 잎을 먹으며 몸집을 키운다. 이주 정도 성장을 거치면 표피를 벗어 번데기가 된다. 단단한 피부를 입고 나뭇잎 아래로 숨어든다. 그 안에서 애벌레는 스스로를 죽인다. 산성 액을 뿜어내 제 몸을 녹인다. 탄탄하게 여문 육신은 초록색 액체로 풀어진다. 견고한 껍데기 안에 고인 녹아내린 몸은 명백한 자살의 증거이다. 본연의 기억을 지닌 액체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비로 변한다. 날개 가득 새겨진 고혹적인 무늬는 어쩌면 나비가 긁어놓은 고통의 기억이리라. 자학을 견디며 몸부림쳤을 변태(變態)의 과정을 기록한 상흔이리라.

  고통의 산물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나비는 증명하고 있다. 미는 곧 쾌락을 좇는 인간 욕구가 만들어낸 일종의 기준이다. 고통과 쾌락의 일련성, 합일에 관련한 성질을 나비는 가진다. 프로이트는 이것이 인간관계에 적용된 것을 성도착증, 그 중에서도 가-피학증 혹은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 SM)이라고 명명한다. 이들에게 고통은 성적 흥분을 유도하는 최음제 역할을 한다. 욕설과 감금은 물론 구타까지 서슴지 않는다. 폭력을 통해 쾌락을 취득하는, 비상식적인 습성. 어떻게 이러한 행위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왜 타인의 고통을 즐기고, 타인으로부터 고통을 추구하는 관계가 불건전하지 않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 까닭이 있다면, 그것이 사랑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사도마조히즘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합성어이다. 타인에게 고통과 굴욕을 가하는 것에서 쾌락을 얻는 것을 사디즘, 그 반대의 성향을 마조히즘으로 일컫는다. 때리는 자와 맞는 자, 상극의 위치에 놓인 이 관계에는 필연적으로 권력 관계가 형성된다. 사디즘은 마조히즘을 무너뜨리고, 마조히즘은 그러한 굴복을 즐긴다. 물리적 힘으로 짜여진 상하적 권력 구조는 성적 행위와 일상생활까지 지배한다. 곤충연구학자 신시아와 비서 겸 가정부 에블린의 관계는 이 공식에 대응된다. 에블린은 하인이라도 된 양 신시아의 말에 복종하고,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에 벌을 받는다. 도망가지도, 저항하지도 않으며 에블린은 모든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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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이들에게 사랑은 합의된 폭력이다. 서로의 필요가 일치하기에 결합한, 일종의 계약에 가깝다. 부도덕한 변태 성욕으로 치부되지만 통상적인 사랑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동일한 감정이다. 오히려 이것은 인간의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감각에 근접해 있다. 정신의학계의 분석에 따르면, 사도마조히즘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변형이다. 본능에 관련한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정도의 성적 공격성을 잠재하고 있다. 즉 이들 학대와 학대 당함은 리비도의 이형태이자 호감의 모난 표출이다. 에블린의 대사는 정확히 이 지점을 설명하고 있다. “당신의 것일 때만 난 살아 있어요.” 그녀는 상대의 애정을 요구하는 동시에 소유의 대상으로 자체를 전락시키고 있다. 같은 사랑이지만 단순히 방식이 다를 뿐이다.

  위의 경우처럼 신시아와 에블린은 학대와 학대 당함을 주고받는 사도마조히즘의 관계이다. 물리적인 힘은 물론 사회적 권력까지 더해져 그들은 주종의 지배 구조 안에서 만난다. 강압과 복종, 폭력의 굴레에서 쾌락을 느끼고 사랑을 찾는다. 그러나 어딘가 이상하다. 에블린이 학대의 내용을 글로 작성해 주면 신시아는 그대로 이행한다. 문을 두드리면 오래 열어주지 말라는 지시문에 신시아는 물을 들이켜며 초조하게 시간을 보낸다. 구두를 닦다 딴생각을 하면 벌을 주겠다는 말에 에블린은 신시아가 보도록 주의를 끌고 일부러 딴청을 피운다. 한 편의 완성된 대본을 그들은 자꾸만 반복한다. 작가는 에블린이고, 연기자는 신시아다. 시켜야 하는 자가 시킴을 당하고, 시킴을 당해야 하는 자가 시키는 아이러니, 여기서 권력의 전복(顚覆)이 일어난다.

  즉 이들 간의 학대와 학대 당함은 지어낸 연극에 불과하다. 막이 더해갈수록 에블린의 마조히즘적 성향은 더 깊어진다. 인간 변기에 욕심을 내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종내에는 커다란 함에 갇히기를 원한다. 사랑하기에 에블린의 요구를 하나하나 들어주었던 신시아는 혼란스러운 기색을 보인다. 에블린이 사준 가죽 옷과 스타킹을 찢어버리고 펑퍼짐한 잠옷을 입고 다니며 사디즘적 행위를 기피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연극은 계속 되어야 하고 잠시 이탈했던 신시아도 속절없이 무대를 다시 밟아야 한다.

  영화는 이미지의 파편을 나열해 두 사람의 관계를 제시한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나비목 곤충을 박제한 장면이다. 수백 혹은 수천 마리의 곤충이 정돈되어 은침에 꽂혀 있다. 죽고 난 뒤에도 묻히거나 썩지 못하고 형체 그대로 묶여 있어야 하는 운명. 죽음을 껍데기 안에 보존한 채 묵묵히 침묵하고 있다. 이것은 영화의 파편 중 에블린의 해골 이미지와 병치된다. 사도마조히즘을 유발하는 강력한 요체 중 하나가 ‘죽음본능(Todestrieb)’이다.(참고 문헌 11p) 거대한 생명본능으로마저 억누르지 못하는 소멸에 대한 지향, 파괴에 대한 욕구가 발현되어 고통을 추구하고 그것에서 쾌락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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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수의 나방이 에블린을 둘러싸고 있는 장면도 흥미롭다. 나방은 본래 빛을 쫓는 습성이 있다. 밝은 곳이라면 어디든 날아가 빛을 만끽한다. 그곳이 설사 활활 타오르는 불이라 할지라도. 나방에게 빛은 곧 쾌락이고, 쾌락을 좇는 삶은 언젠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나방과 에블린의 연결은 에블린의 죽음 본능을 상기한다. 쾌락만을 추구하는 자기 학대의 연속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운명을 암시한다.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그녀에게 죽음은 쾌락으로의 환원이기에.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지만 사실 두 사람은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이 가능하다. 영화 결말부, 연극에 회의를 느끼고 울먹이며 대사를 이어가지 못하는 신시아를 에블린은 다독이며 말한다.


“이건 그냥 사치스러운 장난일 뿐이에요. 중요한 건 당신이에요.”

“아냐, 결국은 넌 날 원망하게 될 거야.”


“내가 어떻게 당신을 원망해요. 사랑해요.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죠.


  세상에는 무수한 갈래의 사랑이 있다.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한 번에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어린 아이를 사랑하는 롤리타신드롬과 동물과 관계를 가지는 수간(獸姦) 등을 포함하는 성적 도착증자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여러 성소수자들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으로 허용될 수 없는 행위들이 있지만 범법하지 않는 선에서 모든 사랑은 아름답고,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땅강아지를 왜 연구하냐는 에블린의 질문에 신시아는 답한다. “생긴 건 추해도, 아름답게 울잖아.

  이 땅 위, 모든 아름답게 우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 글을 바친다.





이미지 출처
Google, 네이버 영화

참고 문헌
「마조히스트의 유머와 정신분석학의 전복:마조히즘에 대한 들뢰즈의 탈정신분학적 이해」,
조현수, 철학 연구 103호, 철학연구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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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범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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