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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광고 기획서를 작성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술에 대해 ‘생각’을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술은 나에게 어떠한 생각도 요구한 적이
없었다. 많은 생각을 요구하는 현 사회에서 술이 의지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거다. 왜 이 상황의 내 앞에 술이 놓여 있고 내 식도를 적시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이라는 것은 그리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고작 생각이라고는 그
날 술을 마실까 말까 라는 선택 정도랄까. 나름 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은 의미 있었던 경험이었는데, 이렇게 역설적인 존재가 있을까 싶다.
술은 감정을 지니었다.
그 감정이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 상반된 감정들을
모두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에서의 묘사들을 보고 있자면 긍정과 부정으로 이분화 된 감정 뿐만이 아닌 민족 공통의
어떠한 감정 또한 지니었다. 그러면서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 타국의 사람임에도 통합시켜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참으로 신비하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술들을 내가 경험해보기는 어렵겠지만 저자의 뛰어난 묘사는 마치 내가 맛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는 한다.
그만큼 그의 묘사는 치밀하고 섬세하다. 단지 달고 쓰다로 술을 판단하는 나를 비웃는 듯이
말이다. 술 뿐일까. “안주가 없으면 술도 없다”라는 명언을 남긴 저자가 안주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을리는 없다. 내가
읽던 책을 슬쩍 보던 친구가 요리 관련 책이냐고 물어봤을 정도로 책을 보고 있자면 배고픔이 밀려온다(물론
썩은 청어가 들어있는 통조림은 별로 입맛을 다시게 하지는 않는다)

그는 술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듯했다. 사람이 서로 다른 매력과 특징을 지닌 것처럼 서로 다른 도수와 맛을 지닌 술을 존중하고는 했다. 어떻게 전 세계의 술이 맛있기만 할 수 있을까. 저자가 맛 본 술
중에는 40도가 훌쩍 넘는 독한 술도 많았지만 그는 술에 대해 비판한 적이 없었다. 벌레가 들어 있는 술이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사랑이
느껴진다.
그는 말그대로 술을 “사랑한다”
술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조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술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가 좋아서 찾는다고 했다. 술이 주체가 되어 사람들의 호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는데, 저자 니시카와 오사무는 달랐다. 나는 그의 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좋았다. 사진사임에도 불구하고 술을 위해 사진기을 팔았다는 것을 누가 비판할 수 있으랴. 나는 저자 같은 사람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