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의 범주에서 타인의 사생활이란

제16회 2인극 페스티벌, 컬렉티드 스토리즈
글 입력 2016.11.25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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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티드 스토리즈
제 16회 2인극 페스티벌
극단 기일계


  <컬렉티드 스토리즈>는 유명 작가이자 선생님인 루스와 그녀를 동경하는 차기 유망주 작가인 제자 리사의 이야기를 매개로 ‘두 세대의 공존’을 이야기 하는 연극이다. 작품을 하며 어디까지 내 의견을 지키고, 조언을 수렴해야 할지 한창 혼란스럽던 중이라 색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극장에 앉았다. 그리고 <레드>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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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


<레드>는 추상표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와 조수 켄의 대화로 구성된 2인극으로, 두 세대의 예술과 인생에 대한 논쟁을 담은 연극이다. 그리고 논쟁의 중심에는 기존의 당연시 되어오던 것이 새로운 것의 등장으로 휘저어지고, 세대의 순환이 있다. 제자와 스승, 조수와 작가 비슷한 포지션을 이루고 시작한 두 연극이지만, <레드>는 이해와 화합 <컬렉티드 스토리즈>는 파탄이라는 정 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또한 관객에게 선보이는 등장인물의 캐릭터성도 달랐다. <레드>는 켄에게도 마크 로스코에게도 이입할 수 있는 정당한 여지가 있어 갈등 지점을 두고두고 고찰 할 수 있었던 반면 <컬렉티드 스토리즈>는 루스의 논리에 매료 돼 연극 막바지에는 리사가 눈꼴사나울 지경 이였다. 무엇보다 리사 입에서 “모르겠어요.”라는 대사가 나올 때 마다 한숨이 터져, 속된 말로 고구마 몇 십개를 집어먹은 기분 이였다. 일단 루스에 비해 리사의 논리는 너무나 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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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대사들 자체는 좋았다. 루스가 입을 열 때마다 명언이 터져 나오니 스토리를 음미하랴 인생을 배우랴 너무 바빴다. 잠깐 그 명언들을 찬양하고 가자면 “글이 밖으로 나왔을 때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그건 작가가 가지고 가야 할 부담이니 머뭇거리지 말고 적어라.” “사진을 찍었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등 노트와 펜이 있다면 적느라 정신없었을 말들이지만, 루스 선생님께서 또 “적을 필요 없어, 잊어버렸다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잊어버린 거겠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자제했다. 그리고 멋들어진 이 말들은 후반부 갈등 최고조에 큰 기여를 한다.

시간이 지나 리사의 성공이 끊임없이 쾌거를 이루던 와중, 갑자기 루스의 최신작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젊은 시간과 오래된 시간에 대한 소설 속에서 루스와 리사는 엄마와 딸로 비유되고 있었고, 난 이 장면에서 루스가 안쓰러웠다. 특히 <블랙스완>의 제일 좋아하는 장면인 니나가 백조의 호수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 무대에서 떨어지는 장면과 오버랩 되어 니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투영해 진정한 작가의 대열에 오른 루스의 “건배하자.”대사가 가여워서 어쩔 줄 몰랐다. 또한 이 장면의 묘미는 선생과 제자? 동경 받는 작가와 소질 있는 후배? 미묘한 라이벌? 어디로 분류해야 할지 헷갈리던 관계가 “모녀”로 정의되는 따스한 순간 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따스함이 바로 다음의 배신감을 두 배로 증폭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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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영화 <블랙스완>


프레임 속에서 빛나는 리사는 한참을 걸려 어렵게 완성한 장편을 읽으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숨기질 못한다. 반면 조명하나 없이 아주 느릿한 움직임으로 소파에 앉아 리사의 장편을 읽는 루스의 모습이 외각에 위치한다. 두 시간대의 공존을 표현했을 연출이지만, 이미 루스에 매료된 나에겐 '가짜는 진짜를 이기지 못 한다.'는 말처럼 네가 아무리 화려하게 빛을 뿜어도 사람들은 그림자 같은 루스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단다- 라며 조소를 날리게 만드는 상황으로 다가왔다. 물론 세상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고, 리사는 논리보다 감정에 더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감정 표현을 포함해 어떤 것으로도 날 설득 시키지 못했다. 무엇보다 리사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하고 있었다. ‘선물’이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상대방이 바라지 않는 것을 주고 기뻐하길 바라거나나, 대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 리사는 루스가 바라지도 않았을, 심지어 스스로 느끼기에도 걱정스러워 한동안 루스를 피할 만한 행동을 하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느껴주길 바라는 행동은 모순 투성이였다.
 낭독 회를 끝내고 돌아온 리사는 팬에 대해 “날 쫓던 그 아이, 사실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더라고요.”라 말한다. 리사 역시 루스를 만나 팬심을 숨김없이 드러냈지만, 결국 항상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는 둘의 관계를 다른 세대지만, 시간이 다를 뿐 결국 같은 행보를 겪는 서로의 거울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고 언젠가 리사 역시 루스와 같은 감정을 느낄 날이 올 거라 느꼈다. 

불편한 좌석탓에 엉덩이가 약간 신경 쓰일 뿐 날카로운 대화들에 치여 빠르게 지나간 2시간 이였고 꽤 영양가 있는 연극 이였지만, 영양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연극 자체를 음미하기도 바쁜데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던져진다. 가십, 숭고한 마음, 사랑, 예술가의 성공부터 페르소나까지. 분명 서로 결부되어 있는 소재기는 하지만, 너무 심했다. 그래도 즐거웠던 만큼 소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김경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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