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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농인 유림의 평범한 일상 - 연극 '다시 쓰는 세계'

농인이라는 이유로 너무도 평범한 하루조차 평범하게 보내지 못한다.

by 김규리 에디터
2026.11.0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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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만 오는 다소 삭막함이 느껴지던 문래. 이제는 주말이 되면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도 북적이는 핫플레이스가 되어버렸다. 환한 조명이 길을 밝히는 골목을 지나, 문래예술공장에 도착했다. 웅성거리던 소음은 사라지고 차분한 공기가 감돈다.

       

      이곳에서 연극 '다시 쓰는 세계'를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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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다시 쓰는 세계'의 주인공은 농인 유림이다. 농인은 청각장애인을 말한다. 유림은 청인들과 함께 살아간다. 청인은 정상 청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유림의 엄마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빠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엄마의 죽음을 계기로 독립을 하게 된 유림. 옥탑방에 살며, 극단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 나간다. 연극은 그런 유림과 유림의 곁에 등장하는 인물들과의 사건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4편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주인공은 1명이기에 이야기 역시 떨어져 있는 듯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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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림의 주변에 등장하는 인물은 유림이 환영으로 보는 소년을 빼고 모두 청인이다. 유림은 어느 정도 구어가 가능한 농인으로 그들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여러 목소리가 한꺼번에 말을 하거나 빠르게 말하는 것은 알아듣기 어려워 소리를 문자로 변역해 주는 앱을 사용한다.

       

      유림은 일상적으로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고, 출근을 하면 동료들과 부대끼며 일을 한다. 너무나도 평범한 하루. 하지만 유림은 농인이기에, 농인이라는 이유로 너무도 평범한 하루조차 평범하게 보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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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림이 타고 가던 지하철이 도중에 발생한 앞차 사고로 잠시 멈추는 일이 발생한다. 안내 방송을 들은 청인들은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빠르게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지만, 유림은 이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주변 사람들에게 지금 어떤 상황인지 물어보는데, 유림이 잘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설명하기를 피한다. 그저 별일 아닐 것이라고, 괜찮다고 얼버무릴 뿐이다.

       

      어쩌면 이는 유림을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유림이 놀라지 않도록 배려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림은 이 같은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느낌.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여기는 느낌은 끝까지 유림에게 자신의 병을 숨겼던 엄마의 죽음을 상기시킨다.

       

      이 장면을 보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부러, 생각해서, 걱정할까 봐 하지 않은 행동이 오히려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알면서도 자꾸만 까먹게 되는 사실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극 '다시 쓰는 세계'는 이를 청인들의 잘못이라고만 꾸짖지 않는다. '그들은 잘못이 없잖아. 이건 다 자격지심이잖아'라는 대사를 통해 청인들의 입장을 헤아리는 아량을 베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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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터에서도 유림은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한다. 유림에게 의견을 구하러 온 동료들이 그녀가 자신들의 요구를 빠르게 이해하지 못하자 질문하는 것을 포기하는 등 병풍 취급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극은 이 상황을 주연 배우로 서지 못한 조연 배우들의 상황과 병치하여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장애인 차별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유림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웃으로 등장하는 명석이다. 명석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은 인물이다. 부모에게 버림 아닌 버림을 받고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던 그는 부모에 대한 원망을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하여 전과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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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과자라는 낙인으로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하던 그는 우연히 유림의 글에서 위로를 받고, 그녀와 이웃으로서 잘 지내보고 싶다는 말한다. 유림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어 하는 그의 태도에 경계심은 누그러지고, 명석과의 대화 과정에서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항상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농인이 청인에게 위로를 건네는 장면은 농인 역시 한 개인으로서 자립할 수 있는, 나아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장면을 통해 농인과 청인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우리는 그저 함께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일 뿐이다.

       

      연극 '다시 쓰는 세계'를 보며 농인의 평범한 일상에 대해서 생각했다. 불편함이 곧 일상인 그들에게 나 또한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준 적은 없었을지 떠올려 보았다. 도움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자리에서 씩씩하게 하루를 보내는 개인으로서 농인을 이해할 수 있는 에피소드로 인해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 같다.

       

      더불어 공연 전반에 농인들을 위한 장치가 심어져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공연 안내를 수어로 통역해 준다거나, 배우들의 대사가 자막으로 제시된다거나, 배우들이 공연을 마치고 수어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한다거나. 연극의 관객 중 반드시 농인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만든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어 괜시리 부끄러웠고 한편으론 마음이 뜨거워졌다.

       

      여러모로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도록 해준 공연이었다. 아쉽게도 11월 1일자로 막공을 올렸지만, 추후 재상연이 된다면 관람을 추천하고 싶은 공연이다. 화려한 문래의 밤보다 뜨거운 감각을 안겨준 연극이었다. 연극 '다시 쓰는 세계'를 볼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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