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인류세’에 대한 논의는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을까?
Q.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 지구적인 현상에 대한 공동의 의식은 얼마나 깊이 자리 잡고 있는가?
인간에 의해 환경이 변화한 시대라는 의미인 ‘인류세’는 산업화와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인류의 공통된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문명과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그리고 자원이 이동하는 무역을 통해서 세계화라는 연결망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동시에 이때 등장한 기술의 발전은 시공간의 초월을 꿈꾸며, 인류가 발을 딛고 있는 감각마저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땅에 두 발을 딛고 걷는 것이 전부였던 시대를 지나서, 넓은 바다를 건너고, 끝내 하늘의 대기를 가로지르며, 상상을 현실로 이룬 생명체는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시간'을 의미 있게 활용하는 것은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그러므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강력한 자원이 된다. 시간을 많이 가질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일, 이를테면 다른 생명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단일 경작과 지형의 특성에 맞지 않은 인프라 건설 등에 매몰되는 일이 발생했다. 시간이라는 자원을 더 많이 얻기 위해서 다양성이 고려되지 않은 획일성이 등장한 것이다.
Q. 인류의 터전인 지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Q. 함께 살아가는 인간과 인간 외 존재는 공생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까?
'인프라'는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온다. 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특히 이 과정에서는 인프라에 대한 관리가 필수적이다. 인프라는 생산과 생활 전반에 걸쳐서 인간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편리함과 효율성은 ‘인프라’와 맞닿아 있다. 흔히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편리한 동선을 효율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오늘날 인프라의 이미지는 좋아 보이고, 그곳에 속하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 낸다. 불확실성, 불편함, 불안 등의 부정적 요소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인프라의 혜택이 미치는 범위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교통의 요지, 직장과 학업의 안정성, 문화생활의 접근성, 주거의 경제적 이익에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계속해서 추가되었다. 정말 많은 것을 이루어냈지만, 인프라가 제공하는 편리한 일상 이외에 인류의 역사에서 늘 꿈꾸던 안온한 삶에 대한 물음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이유는 '우리'라는 범위를 너무 좁게 국한했기 때문은 아닐까?
역설적으로 인간 외 존재인 환경, 자연, 생태계로 불리는 생명과의 공생은 주변 인프라가 확장을 멈췄을 때 이루어졌다.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있거나 공공시설에 둘러싸여 있고, 때때로 경제적 이익이 상대적으로 낮을 때 보존된다. 생태계의 순환은 자연스러운 가치를 먼저 추구할 때 빛을 발한다. 생태계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것은 어렵다. 자연의 회복탄력성은 추측 및 기대의 입력값 그대로 추출할 수 있다는 확률에 근거할 수 없다. 아직 기회가 있다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장소를 그 자리에 남겨두는 것이 현대인의 최우선 과제인 이익의 창출에도 가장 적합한 방법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생태계의 이상 징후는 해를 거듭할수록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미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수많은 인류세 현상은 《패치 인류세》와 함께 포개 쌓고, 허물고 짓기를 반복한다.
시간을 아끼고 싶고, 자원을 얻고 싶은 욕망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의도적인 인식의 전환은 경험을 통해서 습득할 수 있는 산물이 된다. 인프라의 시스템 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오늘의 인류에게 익숙해진 환경을 달리 보는 것은 의식의 흐름을 바꿀 변화의 길을 제공한다.
![[크기변환]KakaoTalk_20261028_201135811_0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10/20261028203356_vkbiclbs.jpg)
《패치 인류세》를 읽다 보면 앞서 썼던 글과 같은 물음이, 또한 그 생각이 파생되어 머릿속에 펼쳐진다. 이는 책을 구성하는 패치와 파열, 역사, 그리고 인식론이라는 단어로 나뉜 각 부를 충실하게 읽으며, 때로는 그 경계가 흩어진 글 사이를 자유롭게 탐독하는 것을 즐긴 결과이다. 패치·이탈·집합·포개 쌓기·인프라·자연·생태·경관 등의 단어는 그 자체로도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지만, 7장의 다음과 같은 글은 《패치 인류세》를 읽고 난 후의 다음을 떠올려보는 문장으로 다가온다.
'인간과 인간 외 존재들의 역사를 함께 이야기할 때 인간 외 존재들을 인간의 욕망과 계획의 꼭두각시로 취급하지 않으려면 서로 다른 현상들이 어떻게 서로를 완전히 집어삼키지 않으면서 연결되는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회·문화 이론에서 이런 종류의 연구는 '접합 이론' 방식, 다시 말해 '필수적이지 않은 연결점'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애나 칭 「역사가 없는 타자들」 (p.197)
인간과 인간 너머의 인류세 현상은 인간과 인간 외 존재들이 함께할 때, 즉 현실과 패치성을 관찰하고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며 이루어진다. 인류학자, 과학자, 예술가들의 협업은 그렇게 발견된 '패치'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목격된 현상들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며, 인간 인프라가 영향을 미친 이탈 생물들을 찾는다. 구축되고 길 환경에서 벗어나 -이탈된 상태, 즉 야생화된 상태를 뜻하는 '페럴 (Feral)'은 프로젝트의 핵심 주제가 되었다.
달리 생각해 보는 것, 또한 익숙한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는 이들은 관찰하는 눈을 지녔다. 관찰의 대상은 일상의 총체이다. 일상은 인간이 살아가는 매일이며, 우리 모두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관찰자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인류세 현상은 관찰의 기록으로 남는다. 다양한 장소에서 발생하는 일이 인간의 시선 안으로 들어온다면, 기록의 양은 끝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해질 것이다.
가장 먼저 시도할 수 있는 관찰의 시작은 《패치 인류세》를 참고하여 시스템의 구조와 개인 및 공동체가 경험하는 인류세적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다. 도시의 상하수도 시설 및 수자원 관리, 항만 건설의 배경, 균의 침입과 이동 등의 중첩은 인간이 남긴 이동의 발자국만큼이나 자연환경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중요한 현장 보고서이다. 이 이야기가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닿는다면, 그리하여 각 지역의, 많은 장소의, 여러 현장에서 '페럴 아틀라스(Feral Atlas)'가 인류의 역사를 그려낸다면, 마지막 퍼즐 조각은 우리의 손으로 지켜낼 수 있다.
인간 인프라 프로젝트의 세계 구축, 아니 세계 파괴 활동을 식별하고 묘사하기 위해 '페럴 아틀라스'는 지구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단일한 시각으로 인류세 현상을 큐레이팅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독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보고서들을 포개 쌓았다. '페럴 아틀라스'는 이렇게 포개 쌓은 더미 속에서 독자가 스스로 찾아 둘러보고 병치, 대체, 축적이 자아내는 불편하고도 혼란스러운 인식 속에 머무르도록 독려하는 과정에서 실천적 이질성을 작동시킨다. '페럴 아틀라스'는 패치적 인식론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고, 구조적 단순함이나 '매끄러운 설명을 곁들인 서사'를 거부한다.
10장 「포개 쌓기」 (p.328-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