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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빠뜨롱 말고 들라크루아 나오라 그래! - 파리의 작은 미술관

파리의 골목을 펼쳐보다

by 이지연 에디터
2026.06.07 20:55

 

 

한 유튜버에게 파리 올림픽 일정이 잡히게 됐다. 제작진들은 파리에 가기 전에 프랑스에 대해 알아보자는 차원에서 인하대 불어불문학과 강사를 초대했다. 일반인이, 심지어 사실상 교수인 사람이 '특강'을 하러 왔다는 말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들시들했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생방송을 멈출 수는 없었다. 유튜버는 사정을 설명하며 '단기간 내에 프랑스어를 배울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강사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어차피 지금 배워도 프랑스어로 의사소통하기는 어려워요.' 그리고서는 실망하기도 전에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 '내 기분이 어떻다'를 전달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말이 안 통하면 우리말로 크게 소리를 지르세요.

"나 너랑 얘기 안 해. 니 빠뜨롱(사장) 나오라 그래."

 

 

2시간 가량의 생방송에서 일반적인 외국어 강의와는 거리가 먼 내용들이 이어졌다. 채팅창에는 'ㅋㅋㅋㅋ' 하는 웃음이 반복됐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던 '정일영' 강사는 그렇게 화제의 인물이 됐다. 15년 전에 수업을 들었던 제자가 그동안 바빠서 연락을 못 드렸다며 인사를 남겼을 정도였다. 참고로 연락을 받은 그는 이런 심정을 밝혔다. "15년 동안 바쁠 수가 있어요?"

 

*

 

다시 봐도 재밌는 강의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여행자들에겐 이만큼이나 유용한 강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지의 배경과 상황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대표'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그것이 '빠뜨롱'이 될 수도 있고, '루브르'나 '오르세'가 될 수도 있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미술 작품이나 고풍스러운 건물이 감탄을 자아낼 것이 분명하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사람들이 추천하는 핫플만 추려도 여행 일정을 꽉 채우기 충분하다. 편하고 합리적이다. 그런데...

 

묘하게 찾아오는 이 아쉬움은 뭘까? 어딜 가도 들려오는 한국어,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북적이는 박물관,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에 모인 여러 인종들. 분명 나쁜 것들은 아니지만 '잘 꾸며진 여행지'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때, '실패 없는 정석 여행 루트'보다는 '살아 숨 쉬는 현지의 느낌'을 추구하는 여행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예술에 관심이 있고, 화려한 도시보다는 작은 골목들을 알고 싶다면, '파리의 배경과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파리의 작은 미술관] 입체표지.jpg

 

  

 

도대체 우리는 왜?


  

저자 김정화는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장을 얻고 나서도 더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 그곳에서 배우고 싶었던 것은 문학과 미술사였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정해진 규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루브르 미술관으로 향했다.

 

「산드로 보티첼리, 프레스코, 15세기」. 그렇게 적힌 벽화 앞에 멈춰 선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감동의 눈물도 벅찬 카타르시스도 아닌 질문이었다.

 

'왜?'

 

왜 이 그림은 이탈리아의 어느 집에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우리는 왜 이 그림을 중요한 '작품'이라고 여기는가. 미술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귀하게 모셔두고 있을까. 미술관은 왜 있는 걸까. 우리는 미술관에 왜 오는 걸까. ······.

 

박사 과정 학위를 통과하고, 전시 기획자로 많은 일을 하고, 명지대 박물관학과 교수로 일을 하면서도 '왜?'라는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서울공예박물관 총감독에서 퇴직하고 여유가 생긴 그녀는 다시 파리로 찾아갔다. 이미 15년이나 살았고 이후에도 수도 없이 다녔던 도시였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학문적인 목적도, 그렇다고 해서 인생에 대단한 교훈을 찾으려는 목적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파리의 작은 골목들을 거닐었다. 유명한 미술관 대신에 골목의 작은 미술관들을 찾았다.


 

물론 파리에는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라는 대형 주요 미술관들이 있다. 그곳에서는 방대한 작품들에 둘러싸여서 시대를 뛰어넘는 큰 역사의 물줄기를 마주하게 된다. 거대하고 웅장하다. 볼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다.

 

그러나 한 작가, 한 작품과 내밀하게 대면하기는 힘들다. 미술관에서 백과사전을 훑어보듯 정신없이 보내고 싶지 않다면, 작은 미술관을 찾아 골목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8p)

 

 

300페이지가량 되는 해당 도서에는 그녀가 걸었던 골목이 그대로 담겨있다. 휴대전화로 직접 찍은 사진과, 전공자의 자연스러운 배경지식, 작은 미술관을 거닐며 들었던 생각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성공적인 '안내서'가 되었다. 인상주의를 혐오한 젊은 부자가 남긴 세계 최고의 인상주의 미술관, 상속세로 완성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피카소 컬렉션···.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구글맵에 북마크가 하나씩 늘어났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미술관은 아래와 같다.

 

 

 

들라크루아 나오라 그래!


 

들라크루아의 대작을 보고 싶다면 당연히 루브르 미술관에 가야 한다. 하지만 화가의 인간적인 숨결을 느끼고 싶다면 생제르맹데프레의 들라크루아 미술관으로 향하는 것이 맞다. 그곳은 들라크루아가 마지막 5~6년을 살면서 작업했던 공간으로, 전형적인 미술관보다는 가정집의 구조를 띈다. 크지 않은 2층 아파트의 침실과 응접실, 식당을 전시실로 개조하였기 때문이다.

 

작가가 사용하던 책상, 물감 전용 테이블과 팔레트, 모로코에서 가져온 그릇은 분명 루브르 같은 큰 미술관에서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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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흔적이 느껴지는 다른 공간들도 마찬가지다. 책의 48p에서 들라크루아가 직접 조성했던 작은 마당이 소개된다. 햇살의 온기와 맑은 공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평화로운 공간을 보고 있으면 '저곳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시끌벅적한 생제르맹데프레의 한복판에 이렇게 조용하고 비밀스러운 정원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녹색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게 된다. 이 고요의 순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조용히, 가만한 몇 분을 위해서라도 이 미술관은 꼭 들러야 한다. (49p)

 

 

사실 책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화가와 작품에 대한 소개도 충실하다는 부분이었다. 장소에 대한 설명을 기대하고 읽었는데 무료 도슨트까지 덤으로 들은 셈이다. 색채의 강렬함을 추구하는 들라크루아를 설명하고, 뒤를 이은 후배들이 탄생시킨 '인상주의'까지 가볍게 언급하여 미술사의 전체 맥락을 자연스럽게 습득시켰던 부분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뿐만 아니라 「민중을 이끄는 자유」나 「메두사호의 뗏목」과 같은 유명 작품들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당시의 배경과 작품이 갖는 의의에 대해서 추가적인 검색 없이 책 한 권으로 전부 이해할 수 있다.

 

 

 

파리의 골목을 펼쳐보다


 

빠뜨롱을 부르듯이 유명한 장소들을 구경하는 것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겠으나, 살아 숨 쉬는 예술가들의 흔적을 마주하고 싶다면 파리의 작은 골목을 찾아가야 한다.

 

「파리의 작은 미술관」은 그 여정에서 길잡이가 되어줄 책이다. 마치 글자로 된 지도 같다. 자연스럽게 배경이 눈앞에 그려지며 당장이라도 파리로 떠나고 싶게 만든다. 들라크루아 미술관,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로댕 미술관 등···. 예술가들의 영혼이 묻어있는 장소에서 천천히 걷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파리, 정적인 분위기, 예술, 삶.

 

이런 키워드에 관심이 있다면 당장 해당 도서를 손에 넣기를 추천한다.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당신도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티켓이 얼마 정도 되는지 궁금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은 여행서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해낸다고 볼 수 있다.

 

 

 

컬쳐리스트 이지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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